기도와 정성의 결정체 돌탑이 숲을 이룬 곳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9)-마이산 탑사

등록 2003.07.23 07:23수정 2003.07.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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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 넘어 휴∼하는 안도의 숨이 발등으로 떨어질 즈음 동네 입구에 있는 성황당이나 커다란 당산나무 근처엔 영락없이 돌탑들이 있다. 제법 커다랗게 쌓여진 돌탑도 있고 서너 개가 포개진 듯 층을 이루고 있는 그런 돌탑도 있다.

탑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돌 하나 하나에는 그 돌을 얹어놓은 사람의 기도와 정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영락없을 듯하다. 돌탑은 그냥 돌이 쌓여진 것이 아니라 기도와 염원이 탑을 이룬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거다.


여행을 하다 아니면 어딘가를 가다 돌탑 무더기를 만나게 되면 주변서 돌 하나 주워 탑 꼭대기에 얹어놓는다.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꼭대기에 돌 하나 얹어 놓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a 말의 귀처럼 생겨서 마이산(馬耳山)이라고 한단다. 보이는 왼쪽 산이 숫마이산이고 오른쪽 산이 암마이산이다.

말의 귀처럼 생겨서 마이산(馬耳山)이라고 한단다. 보이는 왼쪽 산이 숫마이산이고 오른쪽 산이 암마이산이다. ⓒ 임윤수

돌을 얹다 탑이 무너지면 많은 사람들의 기원이 재앙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도 하지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금방 무너질 듯 위태위태함을 느끼면서도 기어이 돌 하나쯤은 얹어 놓게 된다.

대개의 사람들이 돌을 얹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얹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를 생각하고 염원하며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얹어진 하나 하나의 돌이 돌탑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돌탑은 기도와 기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쌓여진 정성의 결정체인 신념의 탑이다. 기도에는 별 별 기도가 다 있었을 거다. 아들을 점지해 달라는 득손의 기도, 병을 빨리 낳게 해 달라는 간병의 기도, 어느 시험에 척 붙게 해 달라는 성취의 기도, 요즘은 1등으로 로또 복권에 당첨되게 해 달라는 기도도 있을지 모른다.

장난이 심하고 심술궂은 사람도 여간해서 일부러 돌탑을 무너트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대부분 착한 심성을 가졌다는 반증이며 그 돌탑에 담겨 있는 정성과 기도에 알게 모르게 동감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된다.

a 북부 주차장에서 마이산을 오르는 길은 전형적인 데이트코스다. 목재로 만들어진 계단은 오손도손 이야기하기에 잘 어울린다.

북부 주차장에서 마이산을 오르는 길은 전형적인 데이트코스다. 목재로 만들어진 계단은 오손도손 이야기하기에 잘 어울린다. ⓒ 임윤수

묻고 물어 가다 보니 멀찌감치 두 귀 세운 말인 듯 그 형상이 또렷한 마이산이 나타난다. 이런 형상 저런 형상 많이 보아왔지만 저것은 분명 살아 있는 말의 두 귀임에 틀림이 없다. 금방 나풀거리며 주변에서 윙윙거리고 있을 쇠파리라도 쫓을 듯하다.


마이산을 찾아가는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마이산의 남쪽으로 갈 수도 있고 북쪽으로도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기자는 북부 주차장에서 마이산을 오르게 되었다.

북부주차장에 차를 놓고 마이산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마이산을 오르는 길은 전형적인 데이트 코스다. 길 옆에 드리운 울창한 숲길도 숲길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목재로 정비된 계단형태의 길은 도란도란 이야길 주고받으며 걷기에 딱 좋을 듯하다.


a 숫마이봉 중턱에 있는 화암굴 약수터에서 바라다 본 암마이봉이다. 일년 사시사철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이 약수를 마시고 정성을 다하여 지성을 드리면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 한다.

숫마이봉 중턱에 있는 화암굴 약수터에서 바라다 본 암마이봉이다. 일년 사시사철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이 약수를 마시고 정성을 다하여 지성을 드리면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 한다. ⓒ 임윤수

아이들이 있거나 조금 심심하다면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계단을 오르는 그런 게임을 하기에도 적당하다.

산책하듯 그렇게 오르다 보면 어느새 고갯마루에 오르게 되니 이 부분이 말의 두 귀 중앙에 해당하는 정수리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계단을 오르느라 가빠진 숨 헐떡이며 좌우를 살피다 보면 양쪽으로 절벽처럼 떡 버티고 있는 두 개의 산이 있다. 바로 이 두 개의 산이 숫마이산과 암마이산이다. 북부 주차장에서 올라와 말머리 정수리 부분에 서게되었을 때 좌측이 숫마이산이며 오른쪽이 암마이산이 되는 것이다.

암마이산은 계속해서 오를 수 있는 산행코스가 있지만 숫마이산은 더 이상 오르기가 곤란한 상태로 가파르다.

a 천지탑 아래로 대웅전이 있다. 천지탑은 탑사 제일 윗 부분에 쌓여진 탑이다.

천지탑 아래로 대웅전이 있다. 천지탑은 탑사 제일 윗 부분에 쌓여진 탑이다. ⓒ 임윤수

고개를 넘듯 반대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화암굴 약수를 마실 수 있다. 숫마이봉 중턱에 있는 이 약수터에서는 사시사철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이 약수를 마시고 정성을 다하여 지성을 드리면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한다.

석간수로 갈증을 달래고 아래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은수사가 있고 이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그곳에 탑사가 있다.

탑사! 말 그대로 탑으로 이루어진 절이다. 여느 절들의 탑에 다듬고 쪼아낸 석공의 땀과 정성이 담겨 있다면 이곳의 돌탑에선 다른 정성과 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여느 절들의 탑들이 커다란 뭉치로 큼직큼직 그 높이를 더해 갔다면 탑사의 돌탑들은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그 높이를 더하느라 더 많은 땀과 정성을 들였음이 느껴진다.

a 탑의 둘레가 수십 m나 되는 탑이 100여 년 풍상의 세월을 버텨왔다고 한다.

탑의 둘레가 수십 m나 되는 탑이 100여 년 풍상의 세월을 버텨왔다고 한다. ⓒ 임윤수

무지기수의 탑을 이루고 있는 무지기수의 돌 하나 하나에 실려 있을 기도와 쌓은 이의 정성을 생각하니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성인 머리 크기의 돌덩이에서부터 밤톨만한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돌에 돌을 포개 얹어 쌓은 80여 개의 크고 작은 석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 마이산 탑사(馬耳山塔寺).

탑들은 1860년 3월 25일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효령대군 16대 손으로 태어난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 호 석정)에 의하여 축조되었다고 한다. 수행을 위해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하던 중 이갑용 처사는.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게 된다고 한다.

a 외줄로 쌓아진 탑이 마음을 조아리게 한다. 그러나 어떤 센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어왔다. 가운데 있는 중앙탑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멎는 신비함을 연출하기도 한단다.

외줄로 쌓아진 탑이 마음을 조아리게 한다. 그러나 어떤 센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어왔다. 가운데 있는 중앙탑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멎는 신비함을 연출하기도 한단다. ⓒ 임윤수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동학혁명을 진두지휘하던 녹두장군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이갑용 처사는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에 기도로 밤을 지새우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한다.

탑을 쌓기 위해 30여 년 동안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탑의 기초 부를 쌓았고, 각처 명산에서 축지법을 이용하여 날라 온 돌들로 탑 상부를 쌓았다고 한다. 돌들은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 부분은 기공법(氣功琺)을 이용하여 쌓았다 한다.

탑사 경내에 즐비한 많은 탑들이 제멋대로 인 듯하지만 위치와 모양이 제각기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소우주를 형성하고, 우주의 순행원리를 담고 있다고 한다. 외줄탑 가운데 있는 중앙탑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멎는 신비함을 연출하기도 한단다.

a 탑사의 대웅전은 돌탑 숲에 자리하고 있다. 하나 하나에 기도와 염원이 실린 탑 돌들이 대웅전을 향해 기도하는 듯 하다.

탑사의 대웅전은 돌탑 숲에 자리하고 있다. 하나 하나에 기도와 염원이 실린 탑 돌들이 대웅전을 향해 기도하는 듯 하다. ⓒ 임윤수

믿어지지 않지만 돌에도 암수가 있어 음양의 조화를 이뤄, 궁합을 잘 맞추어 쌓은 것이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이라 한다. 돌에도 암수가 있다고 한다. 무지한 눈에야 돌들의 암수가 보일 리 없지만 혼을 다한 정성이 있으면 암수를 구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수많은 탑을 쌓은 이갑용 처사는 암돌과 숫돌을 구분할 수 있는 경지에 달한 혜안을 가졌음이 틀림없다.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五方塔)의 호위를 받고 있는 돌탑의 우두머리 천지탑(天地塔)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한 쌍의 탑이다.

탑사의 탑을 쌓는 데는 2가지 방식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다름 아닌 피라밋 방식과 일자형 탑 쌓기인데 피라밋 형식의 탑은 팔진도법에 의해 타원형으로 돌아 올라가며 밖으로 돌을 쌓고 안으로 자갈을 채우며 그 가운데 비문을 넣고 올라가며 쌓는다고 한다. 맨 꼭대기 마지막 돌을 올릴 때는 100일간 정성의 기도를 올리고 피라밋 상단 부분에 잔돌로 자리를 만들고 그곳에 우물정(井)자로 나무를 고정시킨 후 그 위에 올라서 음양돌을 올렸다 한다.
 
a 돌탑을 쌓았다는 이갑용 처사의 좌상이다.

돌탑을 쌓았다는 이갑용 처사의 좌상이다. ⓒ 임윤수

탑사에는 참배객들이 올려놓아 서너 개로 만들어진 작은 돌탑도 있지만 높이 15m, 둘레 20여m의 거대한 돌탑도 즐비하다.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홈을 파서 서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니니 기이할 수밖에 없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이 기이함을 어찌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백여 년이 넘는 장고한 시간의 풍상 속에 태풍과 회오리바람에도 끄덕 없이 견고하게 버티고 서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성능 좋다는 접착제를 사용하고 견고하다는 시멘트를 사용하였어도 세월 가고 거센 바람 불면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이 통상인데 보이지 않게 조화이룬 돌들의 음양이 끄덕 없이 풍상의 세월을 이겨내고 있음에 기이함마저 든다.

a 암마이산은 유순한 여인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포만감을 주고있다. 어찌 보면 코끼리 두상 같기도 하다.

암마이산은 유순한 여인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포만감을 주고있다. 어찌 보면 코끼리 두상 같기도 하다. ⓒ 임윤수

탑사는 탑의 불가사의에 더하여 또 하나의 신비가 더 있다고 한다. 겨울철 추녀 밑이나 계곡에서 볼 수 있던 고드름은 위에서 아래로 자란다. 그런데 마이산 탑사에서 한 겨울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면 정한수 그릇에서 고드름이 위로 뻗쳐오른다. 고드름이 위로 자라는 역고드름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정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릇 속에는 이갑용 처사가 쓴 신서가 새겨진다고 한다. 이 신서는 신의 계시를 받을 때마다 이갑용 처사가 그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형태도 있으며 30여권의 책으로 전해 내려온다 한다. 사적비에는 언젠가 이 글을 해독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없다고 한다.

a 절벽에 움푹 패인현상을 타포니니 뭐니 하지만 마냥 경이로울 뿐이다.

절벽에 움푹 패인현상을 타포니니 뭐니 하지만 마냥 경이로울 뿐이다. ⓒ 임윤수

마이산의 석질은 흡사 자갈을 많이 넣은 콘크리트가 폭우와 폭풍에 씻긴 듯하다. 군데군데 파여진 현상들을 타포니다 뭐다 하면서 학술적으로 설명하지만 주변과 어우러진 돌탑들이 경이롭기만 할 뿐이다.

요즘 굿모닝시티에 관한 이런 저런 기사들이 매일 아침을 굿모닝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뒤숭숭하다. 정치판이 어지럽고 경제가 어렵다고들 아우성이다. 게다가 사회가 질서와 인심조차 혼미한 듯하다. 이럴 때 내가 아닌 남을 위하여 돌탑에 돌 하나 얹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준다면 좀더 넉넉한 현실이 될 듯싶다. 바람에 구름 가듯 그렇게 다녀가는 마이산 탑사지만 오래오래 가슴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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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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