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저리뉴스'가 9시뉴스 제쳤다고?

[현장] 진짜 아나운서들도 부러워하는 김지선-장웅씨

등록 2003.07.31 23:34수정 2003.08.03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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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언저리뉴스'의 두 진행자 장웅, 김지선씨.
개그콘서트 '언저리뉴스'의 두 진행자 장웅, 김지선씨.오마이티비 김이연심


# 난센스 퀴즈 하나.

국내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뉴스는 MBC 뉴스데스크일까, KBS 9시 뉴스일까?

정답은 KBS 2TV 개그콘서트(PD 김영식)의 '9시 언저리뉴스(진행 김지선, 장웅)'.

KBS 개그콘서트는 현재 전체 방송사 프로그램 가운데 1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언저리뉴스'가 MBC 뉴스데스크나 KBS 9시 뉴스보다 더 사랑 받는 뉴스라는 우스개 소리는 이 때문에 나온 얘기다.

최근 들어 방송사 오락 프로그램 사이에는 뉴스를 패러디한 코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KBS 2TV는 최근 '뮤직쇼, HI 5!'를 신설하며 '박정아의 진저리 뉴스' 코너를 만들었고 MBC '코미디 하우스'의 '역사 뉴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MBC '생방송 화제집중'은 '전유성의 한발 늦은 뉴스'를 신설하기도 했다.

'뉴스패러디'가 이처럼 속속 등장하게 된 것은 단연 '언저리 뉴스'의 성공 때문. 정치인들의 뻔한 이야기 등 딱딱하고 재미없는 뉴스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재미있는 웃음을 선사하는 '언저리 뉴스'의 성공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방송 뉴스든 라디오 뉴스든 언제든지 뉴스를 보고 듣죠"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극적 반전이 아주 중요하죠."


'언저리 뉴스'에서 여자 앵커 역할을 맡은 개그우먼 김지선(31)씨는 뉴스의 결말에 웃음의 묘미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30일 오후 1시30분 KBS 방송문화연구원 4동 401호. 10여평 남짓한 회의실 한쪽 구석 테이블에서는 '언저리 뉴스' 두 앵커의 뉴스진행 연습이 한창이었다.

"실제 뉴스처럼 가다가 마지막에 황당한 소식을 전하죠. 그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거예요. 원래 뉴스란게 딱딱하고 권위적인 사실에 입각해야잖아요? 그런데 언저리 뉴스의 결론은 그게 아니니까."

연습 도중에도 '보다 더 황당한' 소식을 끌어내려는 두 진행자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를테면 '아무개씨가 낚시를 갔다가 보기 드문 월척을 낚았다. 길이 ○m, 무게 ○kg에 이르는… 폐타이어였다'라는 식.

개그맨 장웅(29)씨는 선배 김지선씨에게 핀잔을 들으면서도 카드고지서를 뜯고 왼다리를 꼬고 앉는 등 산만하기 그지없지만 "폐타이어는 둥글어서 ○m가 되지 않는다"는 쓸만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월척을 '폐타이어'로 할지 '장화'로 할지를 두고 잠시 고민에 빠진 두 사람. 김지선씨는 또 즉석에서 "월척의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작가에게 부탁했다. 아무리 '개그'지만 뉴스는 뉴스. 사실에 기초한 소재를 찾아 방송하는게 두 개그맨의 일이다.

"어떤 뉴스든지 방송 뉴스는 항상 보죠. 차를 타고 갈때도 5분 가량의 3시, 4시 라디오 뉴스를 꼭 들어요. 솔직히 뉴스를 보고 듣는다고 해도 아이디어가 확확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개그에 쓸만한 힌트를 얻을 때가 많죠."

뉴스에서 힌트를 얻은 '언저리 뉴스'의 기사의 핵심 포인트는 이것이다.

'사실+황당한 결말'

"요즘 시중에 가짜 명품의류가 유통되고 있어 일제 단속에 들어갔습니다"라든가 "비 피해로 인한 사고가 속출하고 있습니다"라는 소식은 시의성에 맞게 일반 뉴스에서 뽑아낸 팩트들.

그러나 "가양동에 사는 불법 의류 제조업자 김모씨는 단속반이 들이닥친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다과를 준비했다"거나 "충남 아산에 사는 70대 최모 노인이 깊이 2미터 가량의 진흙탕에 빠져 머드팩했다"는 결론은 기존 뉴스의 상식을 깨는 결론들이다.

방송문화연구원 한 회의실에서 뉴스진행(?) 연습 중인 김씨와 장씨.  "방송, 라디오뉴스는 빼놓지 않고 보고 들어야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방송문화연구원 한 회의실에서 뉴스진행(?) 연습 중인 김씨와 장씨. "방송, 라디오뉴스는 빼놓지 않고 보고 들어야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오마이티비 김이연심
하지만 항상 '사실'을 소재로 대사를 맞추기란 어려운 일. 김씨와 장씨는 때에 따라 '없는 사실'도 그럴 듯 하게 꾸며서 대사를 만든다. 정작 황당한 것은 이같이 만들어진 대사를 진짜로 믿고 종종 문의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

"한 번은 '3마리 밖에 남지 않아 세계적으로 희귀한 흰 코끼리 한 마리가 한국에 온다'는 대사를 했는데, 시청자에게 문의 전화가 온 거예요. 언제, 어디로 흰코끼리가 들어오냐고.(웃음)"

또 언저리 뉴스의 '보도'들에 항의하는 시청자도 있단다. 신림동에 사는 한 시청자는 "왜 자꾸 안 좋은 내용을 말하면서 신림동을 언급하느냐"는 항의 전화를 해 오기도 했다.

"사실 '신림동'이 우리가 발음하기 제일 좋거든요. 그래서 신림동을 대사에 많이 집어넣는데, 그걸 보고 한 시청자가 항의를 한 거예요. 왜 신림동, 신림동 하느냐고."

"자∼아이스맨이 주는 아이스크림을!"
시끌벅적 자유분방한 개그콘서트 연습실

30일 오후 찾아간 개그콘서트 출연진들의 연습실은 '개그맨들의 모임'답게 시끌벅적 했다. 한쪽에서는 아이디어 회의가 열리고, 다른 쪽에서는 잡담들. 그 사이사이로 TV를 통해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의자를 마주보고 둘러앉아 '형제의 우애(?)'를 과시하는 '갈갈이 삼형제'는 아이디어를 논의 중. 세바스찬 역을 맡은 임혁필(31)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잠시 밖에 나갔던 '옥동자' 정종철(27)씨가 양손에 하나씩 무거운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난다. "자∼아이스맨이 주는 아이스크림이에요. 아주 시원해요. 아이스맨이 주는 아이스크림!". 실제 아이스크림은 최근 개그콘서트에서 아이스맨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이덕재(35)씨가 내놓은 것.

회의실 한쪽에서는 강영원 CP와 김영식 PD, 작가 정덕균씨 등이 출연진들의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 CP는 "내가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더 부담스러워 한다"며 일찍 자리를 비웠다. 그러나 출연진들과 담소하며 아이스크림을 함께 나눠먹는 강 CP의 모습에서는 부담없는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개그콘서트팀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개그맨들의 '개그'가 순전히 순발력과 '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의 개그를 만들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익히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언저리 뉴스'의 작가 이지창씨는 "한 주 동안 방송·신문·인터넷신문에서 아이템을 뽑는다"며 일주일 동안 문서로 정리한 두터운 문서를 내놨다. 문서에는 각종 매체에서 뽑은 뉴스들이 가득했다. 이씨는 이 중 뽑아온 다수의 아이템에서 방송에 내보낼 4개의 아이템을 추리기 위해 출연 개그맨들과 화·수·목은 이렇게 모여 고심한다고 설명했다.

사무실 한쪽 게시판에는 씌여 있는 문구도 새 코너 개발에 언제나 고심해야 하는 개그맨들의 고충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게시판에는 "새로운 코너가 반응이 좋아 6회 연속으로 방송될 경우 100만원 상금"이라고 적혀 있었다. / 박형아 기자

'언저리 뉴스'가 세대통합 이룬다?

문의를 하든, 항의를 하든, 일단은 '언저리 뉴스'의 보도 내용들이 사실과 개그를 혼동할 정도로 그럴 듯 하다는 얘기다.

"'언저리 뉴스'는 개그콘서트에서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코너예요. 집중하지 않으면 못 알아들으니까. 그래서 이 코너는 아이들이 웃고 즐기는 내용이 아니죠. 주로 대학생이나 지식층들이 좋아하는 개그예요. 어떤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개그 코너가 '언저리 뉴스'라고 하던데….(웃음) 우리도 그런 점에 애착이 가죠."

애초 언저리 뉴스를 기획한 정덕균 작가는 이 때문에 개그콘서트가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몸으로 하는 다른 코너들은 아이들이 보고 즐거워하고, 어른들은 '언저리 뉴스'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고. "언저리 뉴스가 안방극장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그럴듯한 '세대통합론'이다.

김씨와 장씨는 또 '언저리 뉴스'의 명성이 높아지다 보니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자랑이다. 동료 연예인들이 "나도 언저리 뉴스 진행 한 번 해보자"고 심각하게 제안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기존 뉴스 아나운서들까지 두 사람을 부러워한다고.

"언저리 뉴스가 잘 되다 보니 동료 연예인들이 지원하기도 해요. 나도 한 번 해보자고…. 세븐, 류승범, 황보, 전진범 등등 제가 제안 받은 사람만 해도 많아요. 저희 자리를 노리는 아나운서들도 많죠.(웃음)"

"노트북 소품만 해도 얼마 전 삼성전자가 협찬해 줬죠. 그 동안 소품실에 있던 청테이프 붙여진 낡은 노트북을 썼는데, 언저리 뉴스가 잘 되니까 삼성전자에서 그냥 노트북을 준 거예요. 그런데…, 사실 시청자들은 노트북 화면에 우리 대사가 떠있는 줄 아는데 그냥 대본을 붙여놓고 써요.(웃음) 아직 액정화면의 비닐도 안 뗐어요."

개그콘서트 출연진이 함께 연습하는 연습실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최근 영화배우로 외연을 넓힌 '갈갈이 삼형제'
개그콘서트 출연진이 함께 연습하는 연습실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최근 영화배우로 외연을 넓힌 '갈갈이 삼형제'오마이티비 김이연심
장씨에게 특히 지금과 같은 '언저리 뉴스'의 히트는 남다르다. 장씨는 개그맨이 된 지 10년간 무명 생활을 해 왔던 것.

"이전에는 제 핸드폰 액정화면에 '성공하고야 만다'라고 적혀 있었죠. 그런데 요즘은 바꿨어요. '성공은 아직 멀었다'로. 더 성실하고 겸손하게 시청자들에게 보답해야죠."

'노력하겠다'는 장씨처럼 김지선씨도 소박한(?) 꿈이 있다. '앵커 개그우먼', '뉴스 진행자로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여자연예인 1위'로 불리는 김씨는 '진짜 뉴스'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떤다.

"솔직히 9시 뉴스는 좀 부담스럽고, 7시 뉴스나 8시 뉴스 같은 것 한 번 해보고 싶어요.(웃음)"

'언저리 뉴스'는 개그 역사상 가장 짧은 유행어를 남겼단다. 황당한 소식을 전한 뒤 김씨와 장씨가 서로 마주보고 내뱉는 말. "아∼예∼". 유행어는 짧지만, 성인들이 웃을 만한 몇 안 되는 개그 코너 '언저리 뉴스'는 "쭈욱" 계속된다는게 두 진행자의 말.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날까지 언저리 뉴스는 계속될 겁니다. 시청자 여러분, 지켜봐 주세요."

"언저리 뉴스가 '안방극장' 문화 복원에 도움"
[미니인터뷰] '언저리 뉴스' 코너 만든 장덕균 작가

▲ 장덕균 작가
ⓒ오마이티비
- '언저리 뉴스'를 처음 만들 때의 의도는.
"일단 이름을 '언저리 뉴스'라고 한 것은 9시 뉴스와 비슷한 시간대에 하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이름을 생각하다가, 9시 뉴스 언저리에 하기 때문에 '언저리 뉴스'라고 불렀다.(웃음) 언저리 뉴스란게 기존 기사에서 끝부분만 바꿔 어떻게 비트느냐에 따라 웃음을 주는 것 아닌가. 기존의 의미 없고 가벼운 개그에 풍자적 요소를 가미시켜 '가벼움'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 작가가 생각하는 '언저리 뉴스'의 경쟁력과 장점은.
"요즘 끔찍한 뉴스들이 많지 않나. 그런데 '언저리 뉴스'를 보면 그런 사실조차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뉴스의 거부감을 없애는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또 예전에는 한 가족이 TV 앞에 둘러앉아 다 같이 TV를 봤지만, 지금은 기호에 따라 보는 프로그램이 달라졌다. 가족들이 다 찢어진 것이다. 언저리 뉴스는 그런 점에서 함께 TV를 보며 웃을 수 있는 안방극장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개그의 가벼움 때문에 일정 부분 놓쳤던 세대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고 본다."

- 특별히 장웅, 김지선 콤비를 발탁한 이유가 있나.
"둘 다 10년 이상의 연기자이기 때문에 택했다. 일반 개그에서는 실수를 해도 애드립이 가능하고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이 있지만 언저리 뉴스 같은 개그의 경우 하나만 실수해도 금방 표가 난다. 상당한 긴장을 요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 다 아주 잘하고 있다."

- 풍자성을 더 강화할 생각은 없나.
"물론 언저리 뉴스가 사회에 대한 풍자를 하도록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개그 프로그램이 너무 무겁게 가면 시청자들이 떠난다. 어느 정도 고르게 느낄 수 있는 수준이면 된다. 지금 잘 가고 있다고 본다. 그나마 개그콘서트에 이런 코너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김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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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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