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의 명함 박도
그의 명함 뒷면에는 노트에 쓴 육필 글씨를 새겼는데, 그것도 미야자와 켄지의 친필 유작시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찔했다. 작은 섬나라 일본이 자기네보다 수십 배나 큰 청나라와 러시아를 차례로 꺾고, 마침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후, 이어 만주를 삼키고 중국조차 수중에 넣으려 했던 그 무서운 힘이 무력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문화 애호도 그 바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시절, '국어학개론’을 수강하면서 걸핏하면 오쿠라진페이(小倉進平) 교수의 <朝鮮の 方言>이란 책을 들먹일 때, 우리 방언을 일본인이 처음으로 연구해서 저서를 남겼다는 데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낀 바 있었다.
우리나라 어느 지방 공무원이 자기 고장 출신 작가의 작품 속에 나오는 배경을 명함에 새겼는가? 춘천시 공무원이 김유정의 <동백꽃>에 감동해서 명함에다 동백꽃을 새겼는가? 평창군 공무원이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에 매료된 나머지 메밀꽃을 명함에 새겼는가? 나는 여태껏 그런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안동에 갔을 때, 마구 팽개쳐진 육사의 생가를 보고 얼마나 분노했던가. 오히려 중국 연변 용정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 생가보다 자칭 유림의, 양반의, 문화의 고장이라고 한 안동이 더 관리가 되지 않는 걸 보고 얼마나 통탄했던가.
그후,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량이 동남아나 아프리카 수준에 맴돌고 있다는 한 신문의 보도가 오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빈 머리에 권력만 잡으면 됐지 몰래 돈까지 움켜 쥐다가 나중에 탄로가 나서 대통령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눈물을 질금 흘리는 한심한 나라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문화 후진국이 아닌지?
14: 50, 바다가 보였다. 오가반도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아키타현의 오가반도는 우리나라 동해쪽으로 불쑥 혹처럼 돌출된 반도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뤘다.
지형을 봐도 지도를 봐도 외로움에 지친 섬나라가 대륙을 그리워하던 나머지 불쑥 튀어나온 혹처럼 우리나라 동해를 향하고 있다. 해안선이 리아스식으로 굴곡이 심하고 저녁 노을에 비친 경치가 일품이라고 한다.
15: 30, 오가반도에 있는 오가신잔전승관(男鹿眞山傳承館)에 닿았다. 이곳은 ‘나마하게’라는 이 지방 전래의 도깨비 모형을 전해 두고, 대형 스크린으로 나마하게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설경(1) 박도

▲설경(2) 박도

▲오가의 삼나무 숲 박도

▲세도마쓰리 축제를 알리는 등 행렬 박도

▲오가진산전승관에 전시된 나마하게 박도

▲나마하게 무리 모형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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