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⑫-칠갑산장곡사

국내 유일하게 두 개의 대웅전이 있지만 솟은 탑 하나 없는 절

등록 2003.08.11 13:20수정 2003.08.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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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쉰 살이 되는 여 조카가 있다. 나이가 훨씬 많지만 촌수 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삼촌 삼촌 하면서 숙제도 대신해 주고 가끔은 업어 주기도 하며 이것저것을 잘도 챙겨주던 그런 조카다. 그 조카가 결혼을 하고 친정어머니 되는 형수님 환갑 잔치서 노래를 하다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거린 적이 있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벼 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사연 그리 많아….”로 시작하는 대중가요로 잘 알려진 <칠갑산>이 그 노래다. 일찍 청상이 되어 어렵게 남매를 키워온 어머니의 일생이며 이야기가 곧 노랫말이니 눈물을 펑펑 흘릴 법도 하다.


그 노래의 배경이 되는 칠갑산 깊숙한 곳에 장곡사란 절이 있다. 충남 청양군에 있는 칠갑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해발 561m밖에 안 되는 유순한 형태의 산세를 가지고 있는 차령산맥의 한 자락이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칠갑산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청아한 산색과 맑은 물 그리고 신선한 공기로 다른 어떤 명산에 비해 모자람 없이 좋은 산으로 기억할 듯 하다.

a 돌로 만들어진 이정표가 장곡사 입구임을 말해 준다.

돌로 만들어진 이정표가 장곡사 입구임을 말해 준다. ⓒ 임윤수

장곡사는 우리 나라에서 대웅전을 두 개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절이다. 그리고 절마다 한 두 개쯤은 솟아 있는 탑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하겠다. 다녀 보았던 수백 곳의 절 중 하나의 절에 두 개의 대웅전을 가지고 있는 곳은 유일하게 장곡사 뿐이다.

장곡사(長谷寺)는 이름이 말해주듯 긴 계곡(사람들은 흔히 '아흔 아홉 계곡'이라 부른다)에 자리하고 있는 절이며, 공주에 있는 마곡사와 예산의 안곡사 그리고 청양의 운곡사와 함께 '사곡사(四谷寺)'의 하나라고도 한다.

절에 있는 전각들은 모시고 있는 부처님에 따라 그 명칭이 정해진다. 대웅전이란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셔놓은 전각을 일컫는 명칭이었지만 요즘은 그 절의 주불을 모셔놓은 전각에 보편적으로 대웅전이란 편액을 붙여 놓으니 딱히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전각만을 대웅전이라고 고집하기에는 옹색함이 없지 않다.

그러기에 모셔진 부처님이 석가모니불이 아니더라도 절의 주불을 모신 전각이라면 대웅전이라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셔놓은 주불이야 어떻든 한 절에 대웅전 하나는 공식이며 통률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장곡사는 아주 특이하게 하나의 절에 두 개의 대웅전이 있다.


a 오래된 괴목은 장곡리 마을의 수호목이기에 그대로 존치 시킨 듯하다. 장곡사를 가기 위해서는 이 나무그늘을 지나야 한다.

오래된 괴목은 장곡리 마을의 수호목이기에 그대로 존치 시킨 듯하다. 장곡사를 가기 위해서는 이 나무그늘을 지나야 한다. ⓒ 임윤수

두 개의 대웅전이 동남향과 서남향으로 좌향을 달리하여 거의 일직선상으로 경사진 비탈의 위와 아래에 있는데 그 위치에 따라 각각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이라 불린다. 전해지는 사적기가 없어 언제, 어떤 이유로 두 개의 대웅전이 들어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고 여러 가지 설화와 추측만 있을 뿐이라 한다.

전해지는 설화 중 하나는 칠갑산 남동쪽 자락에 있던 도림사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남아 있던 대웅전을 장곡사로 옮겼으리라는 추측이다. 장곡사는 약사여래도량이다. 약사여래도량이란 병든 사람에게 희망과 꿈을 줄 수 있는 도량을 말한다. 한마디로 장곡사는 기도 발이 잘 받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지고 명성을 쫓아 찾아 드는 사람들이 무지기수로 늘어남에 따라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하나의 대웅전을 증축하게 되어 두 개의 대웅전이 되었다는 설화도 있다 한다. 상대웅전에서는 주로 스님들이, 하대웅전에서는 일반 신도들과 신병기도를 위해 장곡사를 찾은 스님들이 기도를 올리던 곳이 아닌가 추측하는 설화다.

36번 국도를 따라 대치터널을 지나 칠갑산을 동서로 가르고 나와서 다시 남쪽 골짜기로 난 도로를 따라 장곡사를 찾아 들어간다. 칠갑산을 넘으며 주변을 둘레둘레 살폈다. 혹시 콩밭을 메고 있는 아낙이라도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말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콩밭을 매는 아낙은 보이지 않고 띄엄띄엄 등산객 무리만 보일 뿐이다.

a 장곡사 경내로 들어서는 일주문이다. 이 문을 지나게 되면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장곡사 경내로 들어서는 일주문이다. 이 문을 지나게 되면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 임윤수

칠갑산이란 산 이름은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는 땅과 불 그리고 물과 바람 등 일곱 가지 요소를 일컫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의 숫자 '칠(七)'과 천체운행의 원리가 되는 육십갑자의 첫 번째인 '갑(甲)'자를 써서 그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칠갑산은 만물생성의 근원과 천체운행의 으뜸이 되는 산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한편 금강 상류인 지천을 굽어보는 일곱 장수가 나올 갑(甲)자형의 일곱자리 명당이 있어 칠갑산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칠갑산은 신라 유리왕 때 만들어진 도솔가에 '칠악'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백제 사비성(지금의 부여)의 정북방 진산으로 오래 전부터 신성하게 여겨오던 산이라고 한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칠갑산의 오묘한 명성을 오늘날에는 장곡사가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칠갑산 산세가 그렇듯 장곡사 역시 그리 큰 사찰은 아니다.

국도 36번 도로에서 시작되는 645번 지방도로를 따라 장곡사 쪽으로 가는 길 양쪽에 나란한 벚꽃 나무가 봄의 화려함을 연상케 한다. 벗 나무 가로수 사이로 이십 리쯤 달리면 길옆 장승과 함께 <新羅古刹 長谷寺>라 쓰여진 돌 이정표가 나온다.

a 하대웅전이며 좌측이 설선당 드리고 위쪽으로 점화실이 보인다.

하대웅전이며 좌측이 설선당 드리고 위쪽으로 점화실이 보인다. ⓒ 임윤수

장곡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동네 입구에는 거대한 두 그루 고목이 길 한가운데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장곡사를 찾는 사람들은 그 밑으로 통과하든 조금 비켜 지나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길을 만들고 포장을 하면서도 괴목은 장곡리 마을의 수호목이기에 그대로 존치한 듯하다.

괴목 아래를 지나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좌측으로 장승공원이 있다. 이런저런 표정으로 해학적 웃음을 띄게 하는 장승들이 넓은 마당에 줄지어 서 있다. 장승공원을 지나 조금만 더 들어가면 장곡사 경내로 들어섬을 알리는, <七甲山長谷寺>란 편액이 걸려있는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더 올라가면 넓은 주차장과 높은 차이를 두고 우뚝한 범종각과 운학루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치우쳐 만들어진 비탈길을 조금 오르면 네 갈래 갈림길이 나온다.

이미 이쯤이면 고색창연한 장곡사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왼쪽으로 몇 걸음을 옮기면 오랜 세월이 묻어 있음직한 설선당이 정면으로 보인다. 뭐라고 할까?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깔끔하게 손질된 삼베옷을 입고 계신 그런 모습이라고 할까? 하여튼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그런 분위기다.

a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깔끔하게 손질된 삼베옷을 입고 계신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설선당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깔끔하게 손질된 삼베옷을 입고 계신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설선당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 임윤수

입구의 좌측엔, 주차장에서 보아 <雲鶴樓>란 편액이 붙어있는 건물에 종무소가 있으며 산비탈 쪽 우측에 보물 181호인 하대웅전이 있다. 하대웅전엔 장곡사의 역사와 유래를 증명하듯 병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병고로부터 구원해 준다는 보물 337호인 금동약사여래 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장곡사에 있는 대다수의 전각들은 맞배지붕 형식으로 건축되어 있다. 다른 절들은 대개 맞배지붕과 팔작지붕 형태로 전각들이 축수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장곡사는 불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금당을 뺀 나머지 전각은 모두 맞배지붕 형태를 하고 있다.

하대웅전 우측에 있는 지장전과 편액이 걸려 있지 않은 전각 그리고 운학루와 설선당은 전체적으로 口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하대웅전 좌측으로 있는 70여 돌계단을 오르면 좌우로 전각이 나온다. 좌측은 스님이 참선을 하고 계실 듯한 점화실이며 우측의 전각이 상대웅전이다.

하대웅전이 서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음에 비하여 상대웅전은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상대웅전은 보물 16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로자나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그리고 협시불로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a 보물 162호인 상대웅전으로 안에는 국보와 보물이 있는 보고이다.

보물 162호인 상대웅전으로 안에는 국보와 보물이 있는 보고이다. ⓒ 임윤수

상대웅전 자체가 보물이지만 상대웅전에는 국보 58호로 지정된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연화대좌와 보물 174호인 철조비로자나좌상 부석조대좌가 있다. 장곡사 상대웅전은 말 그대로 보고인 셈이다.

화엄사 각황전,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등과 같이 장곡사 상대웅전의 바닥에도 나무가 아닌 벽돌이 깔려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경우에는 아미타여래가 사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유리바닥 대신 돌을 깔았다고 하는데, 장곡사의 경우는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상대웅전 바로 옆에 약수터가 있어서 수맥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만 하고 있을 뿐이라 한다.

상대웅전 앞에는 수령이 850년쯤 되었다는 오래 된 느티나무가 있어 고찰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상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장곡사의 전각들이 연기 모락모락 피어나는 촌락을 연상케 하여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오밀조밀 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회색의 기와지붕이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게 하고 여유를 만들어 준다.

a 금당에서 내려다 본 장곡사 경내의 일부이다. 골을 이루고 있는 회색 기와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금당에서 내려다 본 장곡사 경내의 일부이다. 골을 이루고 있는 회색 기와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 임윤수

상대웅전 우측엔 응진전이 있다. 모셔진 나한들은 하나같이 투박하면서도 못생긴 형상이지만 친근한 표정을 하고 있어 또 다른 볼 맛을 준다. 가끔은 근엄한 부처님보다는 이렇게 투박하고 친근감 있는 표정의 나한님들이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줄 듯하다.

응진전 우측으로 난 비탈길을 내려와 다시 산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산신, 독성, 칠성을 모셔놓은 삼성각이 있다. 오르던 길 다시 내려오면 좌측으로 금당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되지 않았고 단청이 되지 않아 드러난 나무 결과 색이 깔끔하다는 느낌을 준다. 장곡사에서 숙박을 하며 기도를 하게되면 바로 이 금당에서 기거하게 된다고 한다.

돌로 포장된 비탈길을 내려오면 장곡사로 들어서며 맞게 되었던 작은 네 갈래 길에 다시 서게된다. 네 갈래 길 좌측엔 약수가 흐르고 있다. 넓지 않은 장곡사지만 이 전각 저 전각에 참배하고 이곳엘 도착할 즈음엔 갈증을 느낄 만도 하다. 흐르는 물 한 바가지 떠 벌컥 벌컥 마시면 그 물이 곧 감로수며 청량수다.

a 짱구형태에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다.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법고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못을 뽑아 가는 것을 삼가 달라는 안내글이 적혀있다.

짱구형태에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다.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법고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못을 뽑아 가는 것을 삼가 달라는 안내글이 적혀있다. ⓒ 임윤수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운학루와 설선당 사이로 나가게 되면 사물인 범종과 법고 그리고 운판과 목어가 걸려있는 루가 나온다. 눈을 부릅뜬 목어도 그렇지만 짱구형태, 일그러진 원목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법고는 가히 볼거리 중의 볼거리라 하겠다.

다른 절들도 부엌에 모시고 있는지 모르지만 장곡사 설선당에 있는 부엌엔 조왕신이 모셔져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더불어 살며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지켜주는 지킴이들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 지킴이들을 예우하고있다. 많은 지킴이 중에 부엌 아궁이의 불을 지켜주는 지킴이가 바로 조왕신으로 부뚜막에 물 한 대접을 떠서 바치는 것으로 그 모심을 대신하였다.

a 장곡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구유로 길이 7m, 폭1m의 크기로 만들어졌다. 밥통으로 활용되었을 구유의 크기로 보아 옛날에는 절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장곡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구유로 길이 7m, 폭1m의 크기로 만들어졌다. 밥통으로 활용되었을 구유의 크기로 보아 옛날에는 절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 임윤수

장곡사에서 큰 법회(행사)가 있을 때는 설선당 부엌에서 밥을 짖게되고 여기서 지은 밥은 부처님 마지로도 공양된다고 한다. 토속신앙의 하나라고 생각해도 좋은 조왕신에 대하여 미신이니 뭐니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불이 흔하지 않던 옛날에 조왕신은 불씨를 귀히 여기고 보존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정성이며 간곡함의 다른 표현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 하다.

이 외에도 장곡사에는 국보 300호로 지정된 미륵괘불탱화도 있지만 야단법석에서나 볼 수 있기에 보지 못한 아쉬움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장곡사의 현재 규모는 우리나라 대다수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비해 턱없이 작다. 단지 한때 스님들이 밥통으로 사용했다는, 운학루 뒤편에 놓여져 있는 커다란 '구유'만이 장곡사의 옛 규모를 짐작케 할 따름이다.

a 설선당 부엌엔 조왕신이 모셔져 있다. 조왕신은 옛날에 불씨를 귀히 여기고 보존하고자 하던 조상들의 정성이며 간곡함의 다른 표현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 하다.

설선당 부엌엔 조왕신이 모셔져 있다. 조왕신은 옛날에 불씨를 귀히 여기고 보존하고자 하던 조상들의 정성이며 간곡함의 다른 표현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 하다. ⓒ 임윤수

장곡사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음직한 사무장 보명심 보살님과 이야기 도중 짧은 머리를 빗대어 '머리를 삭발하지 그랬느냐' 하니 '사람들이 스님이라고만 부르지 않으면 삭발을 하고 싶다.'고 한다. 지나가듯 하는 그 말속엔 비록 절집에서 스님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겠지만 불자로서 스님에 대한 예를 지키려는 깊은 본심을 보는 듯 하다.

장곡사엔 어찌 두 개의 대웅전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 흔한 탑 하나 없는지 궁금할 뿐이다.

코끝이 싸하도록 맛이 깊게 든 솔차 한잔을 달게 비우고 그 빈 잔에 산사 장곡사의 고요함과 깊은 불심을 가득 담아 걸망에 담았다. 노래 속의 그 아낙, 흐르는 땀에 벼 적삼 흠뻑 적시고 수많은 사연에 포기마다 눈물지으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그 아낙이 김 매고 거둔 콩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 된장이 들어 있는 포장된 작은 항아리 하나 사들고 뚜벅뚜벅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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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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