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렇게 <전우>에 '푹' 빠졌다

그 옛날, 첫 텔레비전 들어온 산골마을 풍경

등록 2003.08.27 11:04수정 2003.08.2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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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안 잡힙니다. 건너 마을은 그래도 전주방송이라도 잘 나왔는데 우리 마을은 광주, 전주 양쪽다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아산 꼭대기에 안테나를 세우자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정말 안 잡힙니다. 건너 마을은 그래도 전주방송이라도 잘 나왔는데 우리 마을은 광주, 전주 양쪽다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아산 꼭대기에 안테나를 세우자는 아이도 있었습니다.김용철
전깃불이 들어오자 마을마다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라디오만 몇 집 있던 백아산(전남 화순에 있는 산) 인근에도 드디어 TV가 들어온 것이다. 그걸 TV브라운관이라 했던가. 흑백TV를 보고 “저게 뭐냐?”며 신기해하는 아이들은 안테나 설치하는 광경을 끝까지 지켜봤다.


“쩌거시 뭐시다냐?”
“응, 데레비 안테난가 뭔가 한다더만...”
“글면 쩌것을 세우면 그 잼있는 활동사진이란 것이 나온다는 말이여?”
“응.”
“야, 재밌겠다.”
“우리도 보여줄랑가 몰라.”
“글씨 말이다.”

마루에 잠시 놓인 텔레비전은 17인치였다. 대각선 길이는 43cm가 조금 넘었으나 양쪽으로 달린 스피커 문짝까지 포함하면 그 크기는 대단했다. 약 20cm 정도가 날개에 붙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다리 4개까지 있어 따로 위에 올릴 필요가 없었다. 방 한 구석을 온전히 차지하고도 남을 크기다.

시골 장엔 전파사(電波社)가 하나 둘 생겼다고 한다. 마을에서 잘 사는 한두 집엔 전기가 들어오자마자 TV 수상기를 사는 집이 있었다. 비포장 도로를 덜커덩거리며 덩치 큰 물건을 실어 밧줄로 단단히 묶고 먼지를 풀풀 일으키며 시골마을로 왔다. 그게 1978년의 일이니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전파사 아저씨는 알루미늄 안테나를 세우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대나무에 묶어 감나무에 붙이거나 100m가 넘는 거리의 뒷산으로 케이블을 끌고 올라간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다닌다. 안테나에 보조 한 명 세우고 방향을 잡으라며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외친다.

치지지직~.


TV 브라운관 화면에서는 연거푸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왼쪽으로 더 돌려봐~.”


치지지직~.

웬만해선 잡힐 것 같지 않다.

“야~ 거식아! 안되겠다. 저기 장독대 뒤로 옮겨봐. 무등산으로 쪽으로 대가리를 돌려보란 말야!”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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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빗줄기는 여전하지만 약간의 줄무늬가 위아래로 쉬지 않고 움직이며 할머니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는 무등산(광주에 있는 산 1187m)을 향하면 되었다. 그래도 화면이 깔끔하지 않는 것은 800m가 넘는 백아산이 앞에 턱 버티고 있으니 쉽게 잡힐 리 없었다.

“조금만 더 돌려봐.”
“됐어?”
“아니. 오른 쪽으로 조금만.”

채널을 몇 번 더 돌려보더니 영 신통치 않는 듯 안테나를 옮기기로 결정을 한다. 차에 싣고 온 케이블을 죄다 연결하여 뒷골 산 쪽으로 끌고 간다. 이러기를 2시간여 허비했다.

빗방울이 무지막지하게 튀더니 이제 사람 몰골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는 되었다. 이렇게까지 해놓고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전파사 아저씨는 주인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더니 마을을 떠나갔다.

“거시기 뭐시냐, 안테나만 갖고는 안되겄는디요~.”
“글면 어쩐댜?”
“아제, 어댑터를 갖고 와야쓰겄소.”
“그거시 뭐시당가? 얼만디.”
“째까 값이 나가기는 해도 그거 없으면 여그서는 테레비 못 본당께요. 시방 후딱 갔다가 올텡께 째까만 지달리쇼.”
“그럼 얼렁 댕겨와.”

전파사 아저씨가 2시간 후에 돌아왔다. 전파사는 30리 밖에 안되었지만 비포장 도로는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다. TV 수상기와 안테나에 주먹만한 걸 하나씩 연결하니 아까 와는 딴판으로 제법 잘 나온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달콤한 텔레비전의 마력에 빠졌던 어릴 적 추억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달콤한 텔레비전의 마력에 빠졌던 어릴 적 추억김용철
그걸 지켜보던 아이들은 들떴다. 오늘부터는 저녁밥 먹고 날마다 TV를 보러 가면 될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올랐다. 주인에게 여쭙지도 않고 친구들끼리 미리 약속을 잡았다.

“야, 이따가 밥 묵고 회관 앞으로 모여라.”
“보러 오게 할랑가 몰라.”
“글도 우리 할아버지댁인께 짹까는 보여줄 것이여.”

아니나 다를까 저녁밥을 먹고 있어야 할 또래 아이들이 회관 앞에 모여 있었다. 집안 할아버지 댁에 이르러 잠시 멈칫한다. TV가 켜진 방 앞이 밖에서 보기에 번갯불이 번쩍번쩍하다가 이내 컴컴하다. 번쩍번쩍, 어둠 컴컴한 장면이 연이은 듯 방안은 환했다 어두웠다를 반복한다. 전기세 아끼려고 전등을 다 꺼놓고 보기 때문이다.

“야, 얼렁 들어가야”
“니가 먼저 들어가!”
“아따, 그럼 가위 바위 보 하자.”
“됐어야. 내가 먼저 들어갈게.”

참다 못하고 내가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다가가서 헛기침 한번하고는 “계시오?”하니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린다.

“누구여?”
“예, 거시기 테레비 좀 볼라고 왔구만이라우.”
“그려?”
“진지는 잡수셨는그라우?”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주인의 허가도 떨어지기 전에 거무튀튀한 얼굴의 일단의 아이들이 마루에 턱 올라섰다. 씻지 않은 발을 걸레에 한 번씩 대충 서서 닦고는 방으로 쏘옥 기어 들어간다.

마침 나시찬 주연의 <전우(戰友)>를 하고 있었다. 주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TV보느라 여념이 없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행감을 치고 꼿꼿이 앉아 있다. 주인이 먹던 옥수수는 바구니째 TV 위에 올려져 있다.

“소대장님~어억!”
“김일병~김일병! 엎드려!”
“아악~”

격전의 순간 국군 아저씨가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고 적진을 향해 휙 던진다. “펑!”하며 주위의 나무와 땅, 적병 대여섯 명이 하늘로 솟구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미 그 방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 차지가 되어버렸다.

“와~.”
“짝! 짝! 짝!”
“대단하다. 저렁께 우리나라가 살아 있제.”

그렇게 처음 대한 <전우(戰友)>는 마약과 같았다. 밤에 잠자기 전에도 아른거렸다. 꼴 베다 전우 드라마 생각에 손을 베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우린 이틀을 눈치봐가며 무사히 전우를 지켜봤다. 사흘 째 되던 날은 상황이 달랐다. 주인집에서는 <전우>가 끝날 즈음 온갖 심술을 부렸다. 그냥 집으로 가라는 말은 씨알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몇 가지 묘안을 벌써 짜 놓은 듯싶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날던 파리와 모기도 후두둑 그 자리에 떨어뜨리고 마는 파리약 ‘인피리스’를 아무 데고 마구 뿌렸다. ‘모기가 많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렇게 되고 만다.

병에든 살충제를 입으로 “후후” “피익~ 픽”. 아이들 머리 위로 수많은 수포가 떨어진다. 아이들은 속수무책 아무 말 못하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 나온다. 그러니 가슴을 찡하게 했던 전우 노래를 2절까지도 듣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튿날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멀쩡한 TV가 안 나온다고 턱턱 두들기다가 선을 하나 뽑아 버려 전혀 나오지 않게 하고는 아이들을 쫓아냈다.

잔잔한 전주(前奏)가 흐르고 파르르 서양 북이 떨리며 음악이 흘러나오며 연속극이 끝나고 있었다. 1절만을 듣고 나왔으니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랐다.

찌르찌르, 철철철 풀 벌레 소리 듣고 개똥벌레 반짝반짝 불밝혀주니 논두렁길을 따라 옆마을로 밤마다 오가는 아이들. 큰 물을 한 번 건너야 했습니다. 그날이 그립습니다.
찌르찌르, 철철철 풀 벌레 소리 듣고 개똥벌레 반짝반짝 불밝혀주니 논두렁길을 따라 옆마을로 밤마다 오가는 아이들. 큰 물을 한 번 건너야 했습니다. 그날이 그립습니다.김용철
주인장의 그런 괘씸한 행동을 다 알았지만 TV를 당장 살 돈이 없었으니 어쩌겠는가? 집에서 괜시리 TV 사달라고 졸랐다가는 “공부나 할 것이지 뭔 텔레비전을 본다고 난리냐”며 ‘다리 몽댕이’ 부러질 일을 자초하는 것이다. 우린 사흘 보는 걸로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아이들은 그 집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튿날 동네 정각에 모여 ‘소대장님이 죽었으면 어찌 하냐?’고 걱정하는 친구, ‘그 괴뢰군 놈들 다 쓸어버려야 해’하며 핏대를 올리는 아이, ‘야, 정말 전우 재밌지 않냐?’한다. 우린 그렇게 <전우>에 푹 빠져 있었다. 어찌 되었건 하루는 그 재미있는 <전우>를 못 보고 지나쳤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50가구 조금 안 되는 마을에 TV가 오직 이 집 밖에 없었으니 광주로 나가서 보고 올 수도 없지 않는가?

“야 씨불놈들아! 인자 전우 안 볼 것이여?”
“긍게 말이다.”
“야야, 누가 글던디 강리동(강례마을) 윤주네 집에도 테레비 샀다고 하던디.”
“그려. 참말이여?”
“비싼 밥 쳐묵고 내가 거짓말 허겄냐?”
“글면 저녁밥 후딱 묵고 회관 앞 전봇대 앞으로 와라잉.”

밤늦게 마실 다니면 어른들께서는 심하게 나무라셨다. 사전에 거짓말을 하고 집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엄마, 옆 집 좀 갔다 올께라우.”
“뭐 할라고?”
“방학 숙제 한 가지를 깜박했구만요. 병문이집에 좀 갔다가 올라고라우.”
“내일 가면 안 되가니?”
“예. 오늘 알아봐야 돼요.”
“얼렁 갔다와서 자.”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검정 고무신도 벗겨졌다. 얼른 주워 신고 회관 앞으로 나가보니 벌써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뭣 땜시 이렇게 늦었다냐?”
“미안해 얼른 가자.”

다리를 건너 신작로로 조금 걷다가 지름길인 논두렁길을 따라 뛰기로 했다. 숨을 몰아쉬고 잠시 천천히 걷는데 귀뚜라미 소리 요란하다. 여치, 메뚜기, 풀무치가 '찰칵찰칵' 댄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아이들은 미끄러져 무논이나 개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첫날이라 윤주네 집이 어딘지 몰라 그 마을 아이에게 미리 나와 있으라고 했더니 한 명이 동네 방앗간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친구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안내하는 대로 서둘러 대문도 없는 집에 들어서자 마당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부채를 슬슬 부쳐가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서로 TV 곁으로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가려고 자리다툼을 벌인다. 멍석 하나로도 부족하여 두 개를 연이어 깔았으니 마루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은 서른 명이 넘었다.

보릿대를 바닥에 놓고 풀 깍지 서너 줌 올려진 모깃불이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댄다. 어쩌다 한 번 부는 8월의 밤바람은 아직 후텁지근하다. 모기가 아무리 물어뜯어도 그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다. 잠시만 뒤척이면 뒤에서 안 보인다고 하는 통에 꼼짝 않고 보는 수밖에 없다.

마음씨 고운 윤주네 어머니가 옆 마을에서 온 아이들에게도 옥수수 삶은 걸 하나씩 돌린다. 강냉이를 줄지어 한 손으로 따서 입으로 가져가니 출출하던 차 배까지 부르다. 이 집은 내가 가본 극장 중에서 서비스가 최고였다.

네모난 멍석 깔고 30여 명의 아이들과 가족이 모깃불 피워 놓고 마당에서 TV 보고 있는 장면. 이보다 아름다운 극장은 없었습니다.
네모난 멍석 깔고 30여 명의 아이들과 가족이 모깃불 피워 놓고 마당에서 TV 보고 있는 장면. 이보다 아름다운 극장은 없었습니다.김용철
1주일쯤 지난 어느 날부터는 새로운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에서는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소문이 쫙 돌아서인지 나이 지긋하신 50대 아주머니들 발길이 잦았다. 급기야 채널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전우(戰友)>를 잘 보고 있던 학생들은 목소리만 큰 아주머니가 오시면 바짝 긴장한다. 아니나 다를까 타 방송국에서 해주는 <꽃신>으로 아무 양해도 구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것 인 양 마루로 올라가 채널을 '두두둑' 돌리고 만다.

“안돼요. 이것 끝나고 보셔요.”
“야, 이놈들아. 이것 끝나면 고것도 끝난단 말이여.”
“글도 안 된당께요. 얼른 다시 돌리씨요.”
“아따, 이놈들 따지는 것이 지복산이네. 느그들 어디서 왔어? 몰골을 본께 양지서 왔구만.”

그래도 거세게 여럿이 달려들 듯 항의하니 다시 돌려놓으신다. <전우>를 다 보고 다음 프로를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11시를 훌쩍 넘긴 시각 세 편 째인가 네 편 째인가를 시작한다. 몇몇이 닭 병 앓듯 머리를 떨구고 졸고 있다.

“얘들아! 집에 가서 자라. 다들 깨워라.”
“예.”
“얌마 일어나. 너 잘라고 여기까지 온 거여?”

이렇게 우리는 옆 마을 강례로 날마다 빠지지 않고 원정을 갔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환대로 추석이 지나 하늬바람 맞으며 찬이슬을 발에 묻혀가며 늦가을까지 쉬지 않고 갔다.

심야 극장에 빠져 산 그 해 한 철은 시골 촌놈들에겐 크나큰 선물이었다. 마을을 오가며 주인공들의 생사와 앞으로의 전개 방향, 그들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걱정해줬다. 이런 즐거운 추억도 오래 가지 못했다. 겨울 무렵 한 집 두 집 큰 맘 먹고 TV를 장만하니 대오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겨울엔 뒷동산에 올라 ‘전우놀이’를 밥 먹는 것도 까먹으며 했다. 어두워지는 것도 잊고 야심한 시각까지 했으니 그때 전우와 전우놀이 모르면 간첩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중학교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TV를 샀으니 심심하면 친구네 가서 가끔 보고 오는 걸로 만족을 해야했다.

원정에 나섰던 그 집, 윤주네 어머니 아버지는 그 걸 아직 기억하고 계실까? 올 추석 때는 한 번 여쭤볼 작정이다. 그 형님네는 여전히 맘씨가 곱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다. ‘그 집에 머슴이 몇 명 있었는데 다른 집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보리밥이나마 배불리 먹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집은 아직도 손님이 끊이질 않고 복 받으며 잘 산다고 한다.

하여튼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그래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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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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