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영원의 땅, 사하라 사막 여행

르 클레지오 부부의 사막 기행집 <하늘빛 사람들>

등록 2003.09.11 15:20수정 2003.09.1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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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르 클레지오가 그의 모로코인 아내 제미아와 함께 쓴 사하라 사막 기행집 <하늘빛 사람들>(원제: 구름 부족 Gens des nuages)은 그가 1980년에 썼던 장편소설 <사막>의 속편처럼 보인다. 그러나 17년이라는 오랜 간격을 두고 발표된 이 속편은 그 전작(前作)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또한 친절하다.

<하늘빛 사람들>에는 <사막>을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갈증이나 현기증이 없다. 현재와 과거가 접점 없이 평행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에서 비롯되는 의혹의 모래바람도 없고, 정밀하게 조준된 카메라의 렌즈처럼 매우 건조하게 세부에 집착하던 그의 문체에서 비롯되는 메마름과 눈부심도 없다.


그것은 <사막>이 사하라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시절에 오직 상상력과 역사 연구와 구전을 바탕으로 쓴 ‘허구’의 소설인 반면, <하늘빛 사람들>은 그곳에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실제’의 여행기라는 점에서 오는 차이일 것이다. 때로 우리의 상상력은 실제의 현실 세계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구(fiction)와 실제(non-fiction)의 차이 말고도, 함께 동행했던 사진작가 브뤼노 바르베가 찍은 아름다운 사막의 풍경들이 우리의 부족한 상상력을 메우고 있고,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르 클레지오의 풍부한 지식과 농익은 사유가 조금도 비틀거리지 않는 단정하고 엄결한 문장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에, <하늘빛 사람들>의 문장들을 따라 가는 우리의 눈과 마음은 <사막>을 읽을 때와는 달리 편안하고 여유롭다.

따라서 나처럼 <사막>을 읽고 어지럽고 뭔가 미진한 느낌을 가졌던 독자라면 <하늘빛 사람들>을 읽고 다시 <사막>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속편에 의해서 그 전편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고 풍부해지는 시리즈 영화들처럼 <사막>도 <하늘빛 사람들>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읽어야 비로소 그 진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하늘빛 사람들>은 ‘어떤’ 뿌리찾기 여행에 관한 보고서이다. 여기서 ‘어떤’이란 물론 르 클레지오의 모로코인 아내인 제미아를 뜻한다.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 태어난 ‘구름 부족’, 즉 비를 쫓아 사막을 수천 킬로씩 가로지르며 살았던 하늘빛 사람들의 위대한 족장이자 정신적 스승이었던 시디 아흐메드 알 아루시의 후예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여행은 모로코 남단의 드라 강을 건너고, 자갈투성이의 가다 고원을 지나서, 이제는 군 주둔지와 상업도시로 변한 성도(聖都) 스마라를 거쳐, 시디 아흐메드 알 아루시의 묘소와 그가 명상과 기도의 장소로 이용했던 트베일라 바위가 있는 사기아 엘 함라 계곡, 곧 ‘붉은 강’에 이르러 끝난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만난다는 것은 단지 여행을 하고 새로운 지평을 마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시원(始原)의 땅으로 되돌아가는 르 클레지오와 제미아의 사하라 여행은 잊혀진 고향을 찾아가는 공간적 회귀의 도정(道程)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

제미아는 아직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사촌 시드 브라힘 살렘 족장과 그의 아내와 여인들과 아이들을 만난다. 그들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콜라를 마시며 자기들의 낙타 떼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4륜구동 지프차를 이용한다. 시디 브라힘 살렘 족장은 아라비아에서 열리는 낙타 경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나 사막으로 되돌아온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진보를 해왔지만 이들은 계속 자기들의 전통에 따라서 사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하늘빛 사람들이 사는 사기아 엘 함라 계곡에서는 과거는 그냥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뒤섞인다. 시디 브라힘 살렘 족장이 들려주는 500년 전 시디 아흐메드 알 아루시가 행한 기적의 이야기들은 지금 현재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믿음이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땅은 그들의 삶을 받아주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땅이다. ‘붉은 강’이라고 불리기 이전에는 ‘푸른 강’이라고 불리웠을 정도로, 아주 오랜 옛날에는 풀밭으로 뒤덮이고 강물이 쳐흐르는 낙원이었을지도 모르는 사기아 엘 함라 계곡은 지금은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다.

강바닥은 메말라 튼 살갗처럼 쩍쩍 갈라져 있고 어쩌다 만나게 되는 물도 수백만 마리의 날벌레들이 부화하는 진흙탕 웅덩이일 뿐이다. 크롬 도금한 수도꼭지에서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우리들의 문명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곳이다.

그래도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이 부과하는 법칙을 철저하게 존중하고 자기들의 조상 시디 아흐메드 엘 아루시를 믿으며 사는 이들 하늘빛 사람들은 거칠고 냉혹하고 혹독한 이 사막에서의 삶을 결코 고단함과 궁핍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처럼 용감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냉혹해짐으로써, 온 종일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갈증을 참아내고 남보다 나중에 먹는 법을 배움으로써, 두려움과 고통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그리고 절제하며 간소하게 살아감으로써 그 고단하고 궁핍한 삶의 조건들을 이겨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광대무변한 사막의 풍경 속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파악할 수 있고 사소한 기미를 포착할 수 있으며 덧없는 그림자나 스치는 바람결을 느낄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다. 그들의 눈은 예리하게 발달하여 돌이나 모래의 아주 작은 변화도 감지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따분함이나 두려움밖에 느끼지 못할 곳에서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접어놓은 페이지들

과거엔 이방인들이 다가가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이 고장에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지프가 있고 전자표지가 있다 해도 사막은 여전히 가장 접근하기 어렵고 가장 신비로운 땅이다. 사막의 신비는 눈에 보이는 그 자연 속에 있다기보다 그 마력에,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그 절대적인 비환원성에 있다.(46쪽)

사막의 혼, 그것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낙타에 올라탄 전사나 지프를 타고 다니며 카라슈니코프 자동소총을 쏘는 게릴라가 아니다. 사막의 혼은 마을을 지키고 불을 보존하고 손으로 땅을 파서 물의 비밀을 드러내는 여인들이다. 하늘거리는 긴 옷을 입은 몸의 곡선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풍경과 잘 어울린다. 그녀들 눈의 흰자위, 그녀들의 보석, 그녀들의 상아처럼 하얀 이에는 사막의 광채가 어려 있다. 그녀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는 이 정적의 땅을 울리는 음악이다.(81-82쪽)

사기아 엘 함라에서 빛나는 것은 궁궐이나 사원이 아니라, 계곡의 경이로운 무위와 적막이다. 이곳에는 오감을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 없기에 신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111쪽)

아루시 부족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고 너무나 멀리 있다. 우리의 노력, 우리가 읽고 들은 것, 이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호감과 애정,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신비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건 아마도 집착을 모르는 이들의 놀라운 경쾌함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117쪽)

그들은 지구상의 마지막 유랑자들이다. 그들은 더 멀리, 비가 내리는 다른 곳으로, 천 년 세월의 무게가 실린 거역할 수 없는 요구가 부르는 곳으로 가기 위해 언제라도 천막을 걷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람과 하늘과 가뭄에 묶여 있다. 그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더 참되고 사실적이다. 그들의 시간은 미리 만들어진 계획에 따라서 계산되지 않고 별들의 움직임과 달의 변화하는 양상에 따라서 헤아려진다. 그들의 공간은 한계가 없다. 그들의 공간은 그들의 눈 속에, 발길 닿는 대로 가려는 그들의 의지 속에 있다. (119쪽)
그 옛날 시디 아흐메드 엘 아루시가 명상과 기도의 장소로 사용했던 트베일라 바위에 올라가 그 광대무변한 사막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르 클레지오와 제미아는 이러한 사실들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 사기아 엘 함라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모두 다 있다”라고까지 말한다.

르 클레지오와 제미아가 이들 하늘빛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도시 사회의 그 어떤 권리와 의무에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이었으며,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발견한 것은 우리의 삶을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영원에 이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늘빛 사람들>을 읽는다는 것은 존재의 시원을 좇아 펼쳐지는 이들의 여행을 따라가는 것인 동시에 자신의 내부에 숨죽인 채 잠자고 있는 자유와 영원에의 갈망을 새롭게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하늘빛 사람들

르 클레지오 부부 지음, 브뤼노 바르베 사진, 이세욱 옮김,
문학동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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