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가 보여준 진정한 '바다사랑'

팀 윈튼의 환경 소설 <블루백>

등록 2003.09.18 09:03수정 2003.09.1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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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지난 해 여름이던가, 뉴질랜드 최남단에 위치한 스튜어트 섬(Stewart Island)의 어느 한적한 해변에 수십 마리의 고래들이 올라와 죽어가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몇 년에 한 번씩 벌어진다는 이러한 고래들의 기이한 떼죽음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그 고래들을 바다로 되돌려 보내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던 이곳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뜨거운 관심이었다.


그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여행을 왔던 수백명의 사람들까지 가담한 고래 구명 작업도 그렇거니와 그것을 연일 톱뉴스로 내보내는 뉴질랜드 방송과 신문의 보도가 고래들의 떼죽음 자체보다도 더욱 놀라웠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영화관에서 본 뉴질랜드 영화 <웨일 라이더(Whale Rider)>에서도 나는 스튜어트 섬에서 있었던 것과 똑같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바다로 다시 끌어내려고 해도 꿈쩍없던 거대한 몸집의 고래가 한 마오리족 소녀가 올라타자 마치 부름을 받은 듯이 깨어나 다시 바다로 향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팀 윈튼의 아름다운 소설 <블루백>을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바로 이 두 개의 장면, 즉 하나는 현실 속에서 또 하나는 영화 속에서 해변에 좌초된 고래들을 구해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고래를 구하기 위하여 말없이 힘을 모았던 그 사람들처럼 생명과 바다를 지켜내는데 평생을 바친 모자(母子)의 이야기를 <블루백>은 담고 있다.

남편이 호랑이상어에게 변을 당해,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혼자서 어린 아들을 키우는 도라 잭슨은 그녀가 너무도 사랑하는 바다를 닮은 여성이다. 바다 속으로 헤엄쳐 내려가 전복을 따거나 고기를 잡을 때도 그녀는 전복 한 무리에서 두세 마리 이상을 따지 않으며 어린 물고기들은 잡지 않는 부드럽고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삶의 터전을 리조트 단지로 개발하려는 정치가들과 사업가들의 5년에 걸친 끈질긴 회유와 협박도 이겨낼 정도로 강인하고 굳은 마음도 지니고 있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벨 잭슨이 바다를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바다 속을 헤엄치면서 크고 나이든 블루 그루퍼와 사귀게 되고 그 물고기에게 블루백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어린 아벨은 그 블루백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얼마나 나이가 들었을까 궁금해한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그는 해양생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해양생물학자가 되어 세계의 바다를 탐사하고 여행하는 바쁜 생활을 보내게 된다.


그 사이에 어머니 도라는 여전히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혼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사이클론이 지나가고 난 뒤 그녀는 바닷가 모래밭에 드러난 엄청난 숫자의 고래뼈들을 목격한다. 그것은 잭슨네 사람들이 한 세기 전, 고래잡이하던 시절에 남겨놓은 유물이었다.

도라는 드러난 그 과거의 시간 앞에서 인간이 바다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고, 이제는 남획과 오염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바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인간이 노력해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날부터 그녀는 세계 여러 나라 각계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녀가 사는 그 아름다운 바다 롱보트 만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는 편지를.


마침내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그 소식을 들은 아벨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그는 해양생물학자인 자신보다도 어머니가 바다를 더 잘 알고 있으며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릴 적 자신이 궁금해하던 것을 해양생물학자가 된 지금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함께 그곳에 정착한다. 이제 나이든 어머니를 돌보면서, 고향 바다의 생태를 연구하면서.

얼마 후에 아벨의 딸이 태어난다. 아벨은 자기 어머니의 이름을 그 딸에게 붙여준다. 작은 도라 손녀에게 큰 도라인 할머니는 아벨이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라는 남편과 함께 갓 태어난 아벨을 안고 바닷가로 나가 바닷물에 띄웠는데, 그것은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놀았던 향수에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생명의 근원인 물과 만나는 이 아름다운 의식은 도라가 죽기 전날, 아벨이 어머니를 바다로 안고 나가 바닷물에 띄워줌으로써 다시 재현된다. 어머니에게 받았던 것과 똑같이 그도 어머니에게 그 신성의식을 되돌려 준 것이다.

할머니가 죽고 얼마 후 세 번째 생일을 맞은 작은 도라는 아빠와 엄마와 함께 바다 속으로 헤엄쳐 내려간다. 푸른 빛깔의 엄청나게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작은 도라에게 다가온다. 블루백은 반갑다는 듯이 작은 도라에게 슬며시 자기 몸을 갖다댄다.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는 <블루백>은 이처럼 단순한 구성과 소박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의 깊은 감동과 공감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그것은 이 소설이 표면에 드러난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손녀에게까지 이어지는 블루백과의 우정은, 자연과의 친화는 한 세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준다.

또한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해양생물학자인 자신의 아들보다도 바다를 더 잘 알고 더 사랑하며 그래서 마침내는 자신이 살고 있는 바다를 자연보호구역으로 만든 도라의 삶은, 자연과 생명과 환경의 보호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가르쳐 준다.

팀 윈튼은 누구인가

이 책의 지은이 팀 윈튼(Tim Winton)은 1960년 오스트레일리아 서부해안 퍼스에서 태어나 퍼스와 올버니에서 교육을 받았다.

소설, 단편집, 논픽션 및 어린이를 위한 책 등을 모두 열세 권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 <클라우드 거리(Cloudstreet)>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밴조 상과 마일스 프랭클린 상을 받았고 영국에서는 데오 글로리아 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그는 첫 소설 <오픈 스위머(An Open Swimmer)>로 오스트레일리아 포겔 상을 받았고, <블루백> 바로 앞 작품인 <라이더스(The Riders)>는 1995년도 부커 상 수상작 후보 최종명단에 들기도 하였다.

1998년에 발표된 <블루백>은 1998년 윌더니스 소사이어티 환경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미국의 서평지인 <북리스트>로부터 "미친 듯한 우리 시대에 기억할만한, 그리고 마음의 위안을 주는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뉴욕 타임즈>도 다음과 같이 호평했다.

"<블루백>을 통해 그려지는 명확한 생태학적인 메시지는 짧은 이야기라고 해서 가볍게 볼 수가 없다. 팀 윈튼은 바다의 소중함을 주인공들이 느끼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통해서 우리에게 확신시킨다."

현재 팀 윈튼은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아내와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와 함께 할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받은 손녀와, 자신이 갓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베푼 의식(바닷물에 몸을 띄워주는 의식)을 어머니의 죽음의 순간에 그대로 되돌려 주는 아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 역시 순환되고 반복되어지는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블루백>은 깊은 성찰과 사유를 그 안에 담고 있기에, 책표지에 써 있는 것처럼 단순히 ‘아이들과 함께 읽는 환경동화’라고만 생각할 책이 결코 아니다. 비록 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평이한 문장과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 저자가 담아내고 있는 메시지는 무척이나 깊고 심오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야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 낼 수 있을 터이다.

내가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었던 딸아이의 반응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블루백

팀 윈튼 지음, 앤드루 데이빗슨 그림, 이동옥 옮김,
눌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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