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 중심 학제부터 개혁해야

[주장] 교육개발원의 사교육비 경감대책, 방향을 잘못 잡았다

등록 2003.10.14 09:26수정 2003.10.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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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은 13일, 사교육비 경감 방안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능 절대등급제, 교육평가체계 개선, 학원 규제 등을 골자로 하는 대책안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정책들과는 어느정도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지금 "사교육"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 시스템 일부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고, 또 시스템을 전혀 혁신하지 않은 채 미봉책으로만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가 부분 혁신적 내용을 담고는 있지만,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진보라고 볼 수도 있으며, 차후 공청회를 거쳐 수정될 수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이의를 둘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 역시 이 나라의 교육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결함에 있어서는 고의로 해결을 회피하고, 또 그것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고 있다.

교육 논의에 있어서 사교육비 경감 방안이 교육의 한 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비이성적 사교육시장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을 참작한다면, 그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제를 다루는 교육개발원의 보고서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봉책 이상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구조적 결함, 그리고 이 보고서가 말해주는 이 사회의 한 단면은 지금 이 나라의 중고등학생이라면 모두가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먼저, 이 보고서, 그리고 수많은 교육개혁 보고서들이 망각하는 것은 현행 '국영수' 중심의 학제가 사교육을 양성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국어, 영어, 그리고 수학은 한국에서 어느 전공의 대학을 간다고 해도 필수적으로 중요과목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다. 결국, 타 과목보다 수 배 많은 학생들이 국영수 안에서 경쟁하게 되고, 결국 그 과다경쟁은 과다한 사교육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 학제가 '국영수'를 필수로 요구하기 때문에 희망 전공에 맞는 전공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수능 역시 국영수 중심이다. 결국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가 흥미를 느끼고, 성취도가 높은 과목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국영수 중심으로 편성된 점수에 의해서 학교를 선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학과에는 관계없이 대학을 선택하고, 그로 인해서 "인기 학과"보다는 "인기 대학"을 찾는 경향이 늘어나, 높은 점수대의 학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자연히 입시 과열로 연결되고, 이는 사교육비 증가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또한, 국어, 영어, 수학은 사교육으로 가르치기는 가장 알맞은 과목이다. 특별한 사고가 필요한 과목도 아닌, 단순한 암기력과 어느 정도의 계산력만을 갖춰진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는데 별 문제가 없는 과목들이다. 당연히 교수 역시 쉬워지고, 그로 인해서 중등 사교육의 중심 축을 맡게 된 것이다.

사교육 시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생 개인교습(과외) 역시 심층적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과목이 학제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개인교습 시장이 폭증한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국영수 중심의 학제를 과감히 개편하는 것이다. 현행 국영수 중심에서, 학생별 희망전공과목 중심의 중등교육, 그리고 학생선발이 되어야 한다.

6-4-2 학제 개편으로 7~10학년까지는 기본적인 공민교육을, 그리고 고등학교 2년을 각 전공별 선택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인문계와 실업계의 구분 역시 10학년 수료 이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평가 역시 전공과목에 대한 평가만 반영이 되거나, 기초학력평가 반영의 최대비율을 일정수준 이하로 강제규정한 후 평가자료로 쓰여야 할 것이다. 그만큼 국영수 중심의 학제가 개혁된 다음에야 사교육비 절감에 대해서 어느정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개혁안 자체를 보더라도 사교육비 절감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수능 등급제는 어차피 국영수 중심의 수능평가를 유지한다는 전제라면 아무련 효과가 없는 문제이고, 교육평가체제를 점수 위주에서 수료/유급 구분 중심으로 바꾼다고 해도 이 평가가 유급에 대해서 알레르기적 인식이 있는 이 나라에서 제대로 시행될지는 의문이다. 교원전문성 신장 계획 역시 현행의 학과전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원강사 면허제는 이 면허를 위한 사교육을 양성할 것이며, 학원면허제는 현행 학원들이면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면 시행 자체가 힘들 것이다. 학원 경영의 투명성은 사교육 증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세무적 문제이고, 대학 졸업생 취업 기업에 대한 교육발전기금 부과는 고학력 실업자만 늘릴 뿐이다.

좀더 심도있는 대책을 위해 전국을 돌며 공청회를 한다 들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 개혁만 된다면 사교육 역시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이 자료에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기존 구조가 지속되는 한 사교육은 그 도를 더해 공교육 시장까지 뻗어나갈 것이다.

결국 국영수 등은 현행 교양과목 수준으로 교육과정의 주류에서 벗어나야 하고, 전공교육, 실업교육 등이 교육과정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전공을 중심으로 대학을 선택하는 입시 문화로 현행 입시문화가 개선되고, 학벌지상주의로 나타난 지금과 같은 교육기형 사태는 와해될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그런 점을 지적하지 못함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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