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가 있는 떡볶이 집

노점에서 상가로 입성한 어느 아낙들

등록 2003.10.25 10:49수정 2003.10.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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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동 우리집 앞 주양 상가와 단독 상가 사이에는 오솔길이 있다. 그 길에는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고 작은 공원에는 한낮에 비둘기가 논다.


오솔길 복판에 나무와 나무 사이에 노점상에서는 떡볶이를 판다. 일년 내내 팔면서도 주인이 정한 기준이 있는 듯 비가 몹시 오면 안 팔고 심하게 추운 날은 안 팔고 12시가 넘으면 안 판다. 그 곳의 단골은 초등학교에서 대학생까지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떡볶이 집은 우리 집 주방에서 내려다 보였다. 딸아이가 떡볶이를 사올 때도 있고, 때로는 "아빠잉~"하면 내가 떡볶이를 사러 가기도 한다.

젊은 아낙이 주인이다. 웃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미소가 얼굴에 감도는 여인인데 남정네는 곁에 없으니 미혼인지 기혼인지는 모르겠다.
단 돈 천원에 한 끼를 해결할 만큼 손이 크고 푸짐하여 작은 천막 속은 젊음들로 가득하여 따뜻하고 주인의 인심이 손 큰 단골 아줌마가 추억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하였다.

밤에 출출하여 아니 보이면 공연히 허전하고 걱정도 했다. 그렇다고 그 아낙과 내가 사사로운 말을 나눈 것이 없으며 속사정을 들은 일도 없으며, 가정사가 어떤지 물어본 일 또한 없다. 거리의 노점상과 문득 들르는 타인의 관계일 따름이다.

어느 날 그 노점은 포장에 먼지가 가득한 채 문을 닫았다. 나는 노정상 여인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던 따뜻한 정을 생각하며 공연히 섭섭했다. 집에와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니 아내는 웃으면서
" 그 집 돈 벌었다고…. 노점상에서 아파트 상가로 옮긴 걸 자기는 몰라?"
그러고 보니 노점의 포장마차를 감싼 비닐천막지에 너풀대던 백지 한 장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다른 날 그 곳을 지나가다 백지에 적힌 사연을 보았다. 장소를 근처의 한양 아파트 단지 내 상가로 옮겼으니 전보다 더 이용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마치 내가 장사를 하다가 춘풍추우와 북풍한설을 피한 듯 기분이 좋았다.

떡볶이 집 옆에는 내가 가끔 들른 문방구가 있다. 지난번에 고등학생에게 담배를 팔고서 경찰에 고발을 당했던 딱한 처지가 되었던 아줌마가 있는 곳이다. 아줌마가 내게 말한다.


" 특별한 떡볶이 집예요. 홈페이지가 있어서 회원 관리까지 한데서 동네 상인들이 재미있어하지요. 자기 나름대로 떡볶이 철학을 가지고 있다나요. 내 집을 이용하려면 내가 관리를 철저하게 하겠다는 것이니 특별난 사람이지요."

칭찬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까지 유학을 다녀왔던 세련된 문방구 주인이 놀랄 정도면 나이의 차이에서 오는 충격일 수도 있고, 사고의 차이에서 오는 충격일 수도 있다. 떡볶이라는 돈 천 원짜리를 팔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a 삶을 아름답게 꽃 피우는 진이네사진을 진이네 홈페이지에서 퍼왔다.

삶을 아름답게 꽃 피우는 진이네사진을 진이네 홈페이지에서 퍼왔다. ⓒ 진이네

떡볶이 집 문을 열었다. 떡볶이를 토막 내는 일을 두 아낙이 하고 있다.
" 안녕하세요."
내가 말하니 아낙은 놀란 표정이다. 나는 단골이 아니고 어쩌다 들렀던 동네 사람일 따름이니까.
"길에 있다가 여기에 가게를 차려 너무 반가워서…. 여기 홈페이지도 있다면서요. 주소 한 번 압시다."
명함을 한 장 얻었다.

야후나 다음에 카페를 연 것이 아닌 어엿하게 자기의 사이트를 가지고 있다. 명함에는 '진이네 떡볶이 박선진 김두진'이라고 두 이름이 새겨 있었다. 아마도 자매가 하는 가보다.

떡볶이 집에 대한 나의 느낌은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여야 힘든 시절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면서 우리 자신은 과연 진이네 떡볶이 집처럼 길바닥에서 힘든 세월을 보내고 상가에 어엿하게 자리를 잡았는가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네들의 젊음이 부럽다. 젊은 마음이 아름답다.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신선한 자극을 주니 삶의 스승은 이렇게 이 젊은 여인들이다. (진이네 떡볶이 집 홈페이지 주소 www.jin587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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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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