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47

말똥 치우는 늙은 개 (2)

등록 2003.11.05 16:30수정 2003.11.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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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부당주 앞에서도 제대로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였는데 그보다도 더 높은 계급이었고, 차기 성주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었으니 평상시 같으면 감히 접견 신청조차 못할 정도로 지고한 신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철마당에서 일할 것까지 제의하였으니 그저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사실 말똥 아니라 말똥보다도 더한 것을 치우는 일을 하라 하였더라도 흔쾌히 따라나섰을 것이다.

이, 얼마나 어렵게 잡은 끈인가?

그에게 잘만 보이면 어쩌면 자신이 모시던 방조선보다도 더 출세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냄새나는 말 오줌과 말똥을 치우면서도 희희낙락하였던 것이다.

오늘 마굿간을 들른 이회옥과 철마당 수뇌부들은 은자만 넉넉하면 개량된 마구(馬具)로 교체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말을 하며 혀를 찼다.

이회옥에 의하여 새로 개량된 마구는 종전 것보다 가벼울 뿐만 아니라 탄성 흡수력이 좋아 기동력도 좋아지고, 먼길을 가더라도 피로도가 덜하기에 전투력이 대략 일 할에서 이 할 정도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점 또한 있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마구들과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에 기존의 것이 아무리 새 것이라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과 이를 갖추려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번 주석교 정벌을 위한 준비 자금으로 철마당에 배정된 금액은 극히 작았다. 모든 마구가 갖춰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신 철검당에 배정된 금액은 실로 막대하였다. 기존의 무적검을 더 강도가 강한 것으로 개량하라는 명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회옥은 마구를 교체하면 전투력이 상승될 것이라는 보고를 하면 어떨까 이야기했으나 철마당의 수뇌부들은 반대하였다. 보나마나 묵살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천하제일 금력을 지닌 무림천자성이라고는 하지만 아부가문과 월빙보를 차례로 치는 바람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한 바 있다.

게다가 최근엔 주석교를 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철검당은 물론 비보전과 순찰원 등에서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는 중이기에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이 있지만 준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혀를 찼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금대준은 저녁나절 말씀드릴 것이 있으니 독대(獨對)를 해달라고 요청하였고, 이는 흔쾌히 허락되었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으려는지 들어나 보려는 것이었다.

주향(酒香) 그윽한 금존청(金尊淸)과 기름진 안주를 준비하여 당주 집무실을 찾은 금대준은 막대한 은자를 마련할 방법이 있다면서 홍삼 증포소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흐음! 증포소를 장악한다고 당장 은자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건 이렇습죠. 선무곡에서는 일 년에 한번 인삼 증포를 하는데 그 시기가 다음 달 초경입니다요."

"그런데?"
"홍삼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증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한달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요. 그러니 금방 은자가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매년 막대한 금액이 굴러들어 오게 되지요."

"그래? 그렇다면 그 증포소를 장악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헤헤! 뜻이 있으시다면 굳이 대인께서 거동(擧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요. 명만 내려주시면 소인이 알아서…"

"무어라? 본좌가 직접 움직일 필요도 없이 증포소를 장악할 수 있다고?"
"헤헤! 그러하옵니다요. 소인이 뵈기는 이래도…"

금대준은 자신의 제의가 먹혀든다 생각했는지 신이 나서 침까지 튀어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말인즉슨, 비록 여기선 말똥을 치우고 있지만 선무곡에는 지금도 자신의 말 한마디가 천금과 같은 위력이 있다 하였다.

증포소 장악 정도는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 가운데 하나인 최견구를 동원하면 쉽게 뜻을 이루게될 것이라 하였다.

그는 현재 선무곡 장로원에서 가장 센 말발을 지닌 인물이므로 그가 마음먹으면 웬만한 일은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썩어 빠진 것들을 개혁하겠다고 하여 신임 곡주가 된 일흔서생이 취임 이후 지금껏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것도 최견구와 그 일당들이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다시 말해 장로원에서 심한 견제를 하기 때문에 개혁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하면서 금대준은 장로들이 협조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서 그렇다면서 우쭐대기까지 하였다.

결국 곡주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자신이 선무곡 전체를 좌지우지할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혈기왕성한 나이이건만 아직 혼례를 올리지 않아 잠자리가 적적하면 언제든 말만 하라 하였다.

선무곡에서 가장 뛰어나 미색을 지닌 계집들을 얼마든지 대령하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채홍사(採紅使) 노릇을 자청한 것이다.

이회옥은 주절대는 그의 쌍판을 보면서 반드시 죽이되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죽여야 한다던 악인록의 내용이 맞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무곡에서는 아주 나쁜 사람을 지칭할 때 이완용을 들먹인다. 선무곡을 왜문에 병탄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대준은 그와 버금가거나 오히려 능가할 정도로 나쁜 놈이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제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와 자식까지도 팔아 넘길 위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나쁜 놈! 내 본시 살생을 즐겨하지 않으나 네놈만큼은 반드시 지옥 구경을 하게 해주마. 흐음! 이놈을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날까?'

과연 나쁜 놈이라는 생각에 이회옥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금대준은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는 연신 침을 튀어가며 더러운 아가리를 놀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인께서, 아니 당주님께서는 가만히만 계십시오. 소인이 증포소의 모든 권리를 대인에게 일임한다는 문서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요. 물론 선무곡주인 일흔서생의 수결이 있는 문서일 겁니다요. 헤헤헤!"
"흐음! 가만히만 있어도 된단 말이지?"

"예! 뭐 말씀하시기 곤란하시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은자가 필요하시다 하셨으니 소인이 만들어 올리겠습니다요."
"…!"

"증포소에서 만들어지는 것만으로도 족히 백만 냥은 될 것이나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하시면 속하가 조금 더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겁니다요."
"흐음! 백만 냥으론 많이 부족하지…"

"어,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소인이 애를 써서 조금 더 만들어 드리지요."
"흐음! 자네의 의견은 잘 알겠네. 자, 그럼 이만. 본관은 긴히 할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하니…"
"아, 알겠습니다."

금대준은 자신이 아주 단단히 끈을 거머쥐었다 생각하였는지 더할 수 없이 공손한 자세로 물러났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이회옥의 입가에는 조소가 물려 있었다.

'네놈은 장차 네놈의 배설물 속에 빠져죽게 될 것이다.'

이회옥은 금대준을 피거형에 처할 생각을 품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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