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학교 아이들의 야단법석

개인의 무한한 자유와 서로간의 평등을 지향한다

등록 2003.11.14 17:17수정 2003.11.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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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아이들이 떠났다. 3일간 북새통을 만들더니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기념사진 한 장 '찰칵' 찍고는 미련도 없이 떠나갔다. 트럭 짐칸에 태워 버스터미널에 내려 주면서야 나는 섭섭함이 왈칵 밀려들었다.


첫날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이 녀석들 대체 언제 떠나나'하고 생각한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톱질을 하는 '담'. 서로 힘을 합해야 하는 일이다. 서로 하겠다고 하다가 순서를 정해서 돌아가면서 톱질을 했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힘을 뺀 채 똑바로 밀고 힘을 주어 당기는 요령을 가르쳐 주니 아주 잘했다.
톱질을 하는 '담'. 서로 힘을 합해야 하는 일이다. 서로 하겠다고 하다가 순서를 정해서 돌아가면서 톱질을 했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힘을 뺀 채 똑바로 밀고 힘을 주어 당기는 요령을 가르쳐 주니 아주 잘했다.전희식
"담아. 너 꼭 돌아와야 한다."

"네. 꼭 돌아 올 거예요."

9살짜리 담이는 보따리학교 아이들과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가면서 나와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였다. 담이는 지리산 실상사에서 보따리학교 2부 진행을 끝내면 서울 집으로 안 가고 우리 집에 와서 나랑 같이 살기로 했던 것이다. 처음 전주 역에서 그 아이를 만나 트럭에 태워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어둑어둑한 시골길에서 나는 좀 꾸민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담아.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나. 농주고아원 원장님이야. 이제 너 우리 고아원에서 살게 됐는데 진심으로 환영해요."


"네."

"너희 엄마가 특별히 부탁을 하더라. 밥 많이 주고 자다가 오줌 싸도 너무 심하게 야단치지는 말라고."


"정말이죠? 오줌 싸도 야단 안치죠? 더 자라면 괜찮아 질 거예요."

뜻밖에 오줌싸개 학생이 온 것이다. 우리 집 장판은 황토 염색한 옥양목 장판이라 물기에는 약한데 큰일이다 싶었지만 서울 촌놈이 농담하는 줄도 모르고 꼬박꼬박 대답하는 게 재미있어서 나는 차를 세우고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면서 이야기를 마구 지어 내었다.

떠나가 전 전체 기념촬영. 광주교대에서 온 두 학생이 함께 했다.
떠나가 전 전체 기념촬영. 광주교대에서 온 두 학생이 함께 했다.전희식
"담아. 저 바위 보이지? 저게 이름이 뭔지 알어? 개 바위야."

"개가 왜 저기 있어요?"

"응. 아주 오랜 옛날에 개가 말이야. 장에 간 주인을 기다리다가 말이야. 주인을 잡아먹고 어슬렁어슬렁 산으로 가던 호랑이가 개까지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이때 하나님이 바위로 변신시켜가지고 호랑이 이빨이 다 부서져 버렸대."

"그 호랑이 어떻게 되었어요?"

"응.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이빨을 다 고쳐 주고는 다시는 사람이나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고 아저씨가 혼을 내고는 우리 집 창고에 가둬서 기르고 있어."

"정말이요? 그럼 좀 보여주세요."

"그래. 오늘은 너무 어두워서 안 되고 내일."

보따리학교 아이들/전희식 기자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프로그램이 있을 경우 대개 어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처음에는 이러저러해서 속상하고 불편하고 했는데 정말 아이들에게서 너무 많을 것을 배웠다 어쩌고저쩌고. 아이들 문제는 결국 어른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고저쩌고. 누구야. 머시기야. 고마웠다 사랑한다. 어쩌고저쩌고" 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새벽 명상산책 중. 보이는 모든 것과 들리는 모든 것에 하나하나 아침 인사를 건네고 이름을 부르며 "나는 **이다"라는 느끼기 명상을 하였다.
새벽 명상산책 중. 보이는 모든 것과 들리는 모든 것에 하나하나 아침 인사를 건네고 이름을 부르며 "나는 **이다"라는 느끼기 명상을 하였다.전희식
처음 이들이 도착해서 2층 다락으로, 안방에서 작은방으로 나 다니고 쿵쾅거리고 해서 한 놈씩 붙들고 이러쿵저러쿵 주의를 주다가 앞으로 내가 3일간 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게 솔직한 기분이었다.

어른들이 얘기하는 데 한 놈은 텔레비전을 키고 한 놈은 컴퓨터를 켜서 음악 시디를 틀고 한 놈은 우리 집 재래식 화장실에 똥통에 부어야 할 쌀겨를 엉뚱한 오줌구멍에다 퍼 넣고.

역시 보따리학교의 원칙이자 오랜 전통인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지키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자마자 내가 "회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했더니 작년 우리쌀 지키기 100일 걷기를 했던 아홉살 박이 '동섭마왕'이 회의를 소집하였고 자천 타천 사회자를 뽑았다. 사회자를 뽑는 과정이 어른들 회의 못지않게 원활했다.

3일간 서너 차례 했던 회의 전체를 보면 어른들보다 더 잘했다. 자기 고집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도 남의 의견에 대한 평가나 가치부여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보따리학교에서는 자기 생각을 애써 고수할 필요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되기 때문이다.

새벽명상산책, 농사체험, 노래 배우기, 아궁이불에 감자 구워먹기, 깃발 만들기, 나무 자르기, 목검 만들기 등의 일정이 정해져 나갔다. 당연히 자유시간도 틈틈이 들어갔다. 내가 불쑥 수영하기를 제안했다. 다들 대 환영이었다. 너도 나도 수영하겠단다.

지금 철이 어느 철인데 이놈들이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농담도 못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지하게 다락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뛰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동섭마왕이 맞받았다.

아궁이에 감자를 구워 먹었다. 우리 감자는 특히 맛있었다.
아궁이에 감자를 구워 먹었다. 우리 감자는 특히 맛있었다.전희식
"보따리 학교는 자유학교예요. 못하게 하는 것은 없어요."

"그럼. 뛰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내 자유다 뭐."

"알았어요. 계단에서는 뛰지 않기예요. 다 찬성하세요?"

이런 식이었다.

목검을 가지고 싶어 한 10살 '강바람'은 10살 '각설이'에게서 타박을 받았다.

"우리가 이번에 평화하려고 보따리학교 하는데 칼은 평화가 아니잖아."

그러자 강바람은 자기의 순순한 마음을 손짓까지 해 가며 해명을 했다.

"내가 만드는 칼은 전쟁 칼이 아니야. 새들이 형아 목검 보고 나도 갖고 싶은 거란 말이야. 절대 사람을 찌르거나 그런 칼이 아니고 나도 평화하는 거야."

'지리산의 평화'라는 이번 보따리학교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할 때도 아이들은 참 활발하게 자기 생각을 내 놓았다. 이라크 전쟁도 나오고 왕따 얘기도 나왔다.

아궁이불에 감자를 구워먹을 때는 감자 여러 개를 새까맣게 태우기만 했다. 불이 타고 있는데 나무 꼬챙이에 감자를 찔러서 넣으니 감자가 익기보다 타기부터 했다. 이런 실수는 큰 문제가 안 되니까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냥 말로 감자를 잘 굽는 요령을 설명하고는 자기들 맘대로 하게 놔둔다. 물질의 성질과 작용을 익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붙은 부지깽이를 들고 마당으로 나선다거나 낫이나 톱을 만질 때는 아주 엄하게 했다. 설명해 준 방식을 위반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금지시켰다. 엄격하게 중지시키는 것과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지켜 봐 주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면 대개 잘 이해했다.

평화깃발 만들기. 오랜 회의를 거쳐 도안에 대해 결정을 하고는 둘이서 만들고 있다. 실상사로 갈 때 깃발을 들고 갔다.
평화깃발 만들기. 오랜 회의를 거쳐 도안에 대해 결정을 하고는 둘이서 만들고 있다. 실상사로 갈 때 깃발을 들고 갔다.전희식
'길동무'(www.refarm.or.kr)의 보따리학교는 생명에 대한 존중 뿐 아니라 생명을 일구어가는 것을 배우는 학교라고 보면 된다. 식·의·주를 중심으로 스스로 해결해 가는 힘을 키우고자 하기 때문에 농가에서 학교가 열린다.

농사체험은 빠지지 않는 과정이다. 노동에 친숙해지기 위해서다. 무슨 행사성 '해 보기'가 아니라 농사 과정에 참여하여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보따리학교는 생명을 살리고 농촌을 살려내는 '길동무'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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