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무덤을 지켜보고 있는 임수경씨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모든 작업이 끝난 시간은 오후 2시 30분께. 이미 대부분의 취재진이 돌아간 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임수경씨가 입을 열었다.
"고2 때의 일이다. 6년 터울의 둘째 오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은 바로 다음날 가족이 면회를 가기로 해 오빠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군에서는 자살이라고 했다. 특히 오빠가 좋아했던 캐나다에 사는 고모도 함께 간다는 걸 알았다. 적어도 왜 죽었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임씨는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갔다. 당시 유서는 나오지 않았고 용준씨는 일병 진급 뒤 휴가를 앞둔 상태였다고 한다.
"당시 가족들은 진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상황(5공 시절)이 그랬으니 만큼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내가 그렇게 되고 (북한 방문 등) 김대중 정부 들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생겨 우리가 가장 먼저 진정서를 냈다. 19년간 어떻게 이 일을 잊을 수 있는가."
임씨는 이어 "유골을 통해 진실을 밝히기 힘들다고 해도 끝까지 노력하겠다"며 "의문사위에서 애써줘서 고맙다"고 의문사위에 감사를 표시했다.
임씨에 따르면, 당시 자료는 군의관 검안서 한 장이라고 한다. 현재 대전 모 병원에 근무하는 이 의사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날 끝까지 자리를 지킨 20여명은 묘원 밑 한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유가족과 관계자들은 홀가분한 표정이었지만 이들의 얼굴에선 무언가 모를 그림자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의문사위 한 관계자가 답했다.
"강제로 일을 추진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일이 추진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언론에서도 도와줬으면 한다."
| | 포병부대 근무중 자살... 유족들, 타살 주장 | | | | 연세대학교 81학번으로 연세교육방송국(YBS) 취재부 기자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임용준씨는 '81년 11월 교내 시위에 참여했다가 서대문 경찰서에 연행됐다. 이후 조사를 받고 풀려나 84년 4월 군입대까지 대학당국과 경찰, 안기부 등 기관원으로부터 입대를 종용받았다고 의문사위는 밝혔다.
용준씨는 입대 뒤, 강원도 철원의 한 포병부대에 근무하던 중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유족들은 자살 아닌 타살 가능성이 높다며 2000년 11월 의문사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제1기 의문사위 동안 진상규명 불능 판단으로 제2기로 넘겨졌다.
위원회는 이 건을 "학생운동 관련자 격리를 목적으로 구속 조치와 별도로 군 입대시킨 뒤, 운동 전력에 대해 보안사령부 등에서 사찰, 내사, 수사 대상으로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판단하고 있고 이에 대해 의문사진상규명을위한유가족대책위 관계자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다가 말을 듣지 않아 첫 휴가 전에 죽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용준씨는 첫 휴가를 곧 나올 예정이었다. / 강이종행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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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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