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으로 치닫는 '부안'

경찰 "강력대처" 방침에, 군민들 "결사항전" 다짐

등록 2003.11.20 23:55수정 2003.11.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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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6시30분께 매일 저녁 '반핵촛불시위'가 열리는 곳인 '반핵 민주광장'(부안 수협 앞)에 설치된 무대를 경찰대원 수백명이 둘러싼 채 시위개최를 막고 있다.
20일 오후 6시30분께 매일 저녁 '반핵촛불시위'가 열리는 곳인 '반핵 민주광장'(부안 수협 앞)에 설치된 무대를 경찰대원 수백명이 둘러싼 채 시위개최를 막고 있다.반핵부안대책위
반핵부안대책위
'부안 상황'이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20일 오후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과 최기문 경찰청장이 정부중앙청사에서 '부안사태'와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공공시설 방화 등 폭력사태가 계속 반복된다면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엄중경고 했지만, 군민들의 감정은 갈 수록 격화되고 있다.

이제는 시민사회단체들도 나서서 '부안사태'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태도를 비판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부안에는 75개 중대 약 8000명에 달하는 경찰병력이 배치돼 있다.

고영조 '핵폐기장 백지화·핵발전소 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이하 부안대책위) 대변인은 현재 부안의 상황에 대해 "골목마다 배치된 경찰을 보며 누군가는 '80년 5월 광주 같다'고 말했다"며 부안의 삼엄한 경찰경비를 설명했다.

지난 117일간 '반핵 민주광장'(부안 수협 앞)에서 열렸던 촛불집회도 20일에는 장소를 바꿔 열어야 했다. 고 대변인에 따르면, 매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장소인 반핵 민주광장에 오후 6시30분부터 경찰 수 백명이 배치돼 무대 주변을 에워쌌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 1000여명은 장소를 옮겨 부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오후 7시30분부터 약 40분간 '핵폐기장 반대', '평화시위 보장'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집회가 열린지 약 40분이 지나자 경찰이 다시 진압에 나섰다. 고 대변인은 "오후 8시 10분께 경찰이 출동해 주민 600여명을 터미널 담장안으로 몰아넣었고 나머지 400여명의 주민은 맞은편 도로에서 구호를 외쳤다"며 "이후에도 주민들은 짝지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평화시위 보장' '핵반대'를 외쳤다"고 전했다.


20일 밤 <오마이뉴스>에 전화로 제보해 온 부안군민 김아무개씨가 전한 시위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씨는 "현재 부안성당은 물론 온 부안읍내를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다"며 "마치 '서울의 봄' 당시 떨어졌던 계엄령 상황처럼 경찰들이 두 줄로 서서 부안읍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같은 상황은 이날 오전 이미 예고됐었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과 최기문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정부중앙청사에서 '부안사태'에 대한 정부 방침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고 "공공시설 방화 등 폭력사태가 계속 반복된다면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불법 폭력시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3개월간 방치하다시피 해온 부안 핵폐기장(원전수거물관리센터) 유치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상태다.

이에 부안대책위 홈페이지(www.nonukebuan.or.kr)에는 '분노한 민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더이상은'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린 부안군민은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 정말 억울하고 원통하다"며 "군민 7만명에 경찰 8천명이 말이 되느냐"고 한탄했다. 이어 그는 "힘을 내자. 우리는 승리한다"며 사기를 북돋웠다.

'결사항전'도 불사하겠다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결사항쟁'이라는 아이디의 부안군민은 "의로운 부안 군민들의 희생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며 "내가 죽으면 혼자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격앙된 메시지를 남겼다.

또 이 군민은 "이것으로 부안 군민과의 끝인사가 될지도 모르겠다"며 "저 세상에서도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 싸운 여러분의 모습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안대책위도 향후 계획을 고심 중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영조 부안대책위 대변인은 "회의 결과가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구체적인 결과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부안'이 이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시민단체도 '부안 사태'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을 비판하고, 적극적인 대안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참여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 대표 20여명은 21일 오전 11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부안 핵폐기장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종교계 대표자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경찰의 강경진압 발표를 비난하고 부안 상황에 대한 빠른 대책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폭력시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대처"
정부, '부안사태' 엄정대처

정부는 최근 폭력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부안사태와 관련, "불법 폭력시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고 20일 밝혔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과 최기문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정부중앙청사에서 부안사태에 대한 국법질서 확립을 위한 정부 방침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공공시설 방화 등 폭력사태가 계속 반복된다면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강도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허 장관은 "최근 부안지역 시위는 민주 법치국가에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폭력적 파괴행위로 이미 시위 수준을 벗어났다"며 "정부는 이 같이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면서 국법질서 확립과 부안지역의 치안확보를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허 장관은 "합법 평화적인 집회는 계속 보장하겠지만, 앞으로 불법 폭력 시위에 가담하는 자는 물론 체포영장 발부자를 포함한 주동자와 그 배후세력을 끝까지 추적 검거해 반드시 법적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폭력시위가 계속되면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불법 폭력시위자에 대해서는 집시법이 아닌 형법도 적용할 수 있다"며 "현재 부족한 경찰병력을 65개 중대에서 75개로 늘리는 등 앞으로도 경찰력을 추가로 파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안문제뿐 아니라 향후 모든 현안에 있어 불법과 폭력으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불법과 폭력이 진행되는 한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는 만큼 지금까지 부안지역의 모든 집회시위를 주최해온 부안군민대책위측는 일체의 불법 폭력시위를 중단하고 합법.평화적 집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주최자로서 책임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허 장관은 위도 원전센터 주민투표 실시와 관련, "주민투표법이 국회에 계류 중 이어서 물리적으로 연내 실시는 어렵다"며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법이 통과되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서울=연합) 장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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