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경찰 보호한 군민들까지 패륜행위?

[보도비평] 19일 '부상 경찰' 폭행, 같은 상황 다른 기사

등록 2003.11.21 21:23수정 2003.11.2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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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쇠파이프 공격, 부상 의경 끌어내 폭행"
"부상 진압대원 4명, 대책위 보호 속 치료받은 후 인도"


동일한 사건을 놓고 작성된 두 기사의 제목이다. 첫 번째 것은 <중앙일보>의 21일자 1면 주요기사이고, 두 번째 것은 <뉴시스>의 20일 오후 2시발 기사다.

중앙일보와 같은 논조의 기사는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한국일보, 세계일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불타고 있는가'라는 21일자 사설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시위 진압을 하던 박용식(21)상경이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의 유리 조각에 눈을 다쳐 실명위기에 놓였다. 박 상경은 동료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인근 성모병원에 도착했으나 병원 측에서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진료를 거부했다. 박 상경 등 일행은 앰뷸런스로 인근 병원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2백여명의 시위대가 몰려 와 쇠파이프로 앰뷸런스 유리창을 깨고, 타이어를 펑크 내는 등 난동을 부렸다. 시위대는 이어 앰뷸런스에서 박상경 등을 끌어내 집단 폭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동현(30) 경장이 코뼈에 금이 가는 등 중상을 입었다."

이와 관련, 뉴시스의 보도는 다음과 같다.

"부상을 당한 박 상경 등은 정모 경장(38)과 한모 수경(22)의 도움으로 시위 현장에서 100m 가량 떨어진 부안 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병원 입구에 모여있던 주민들에게 수분동안 린치를 당해 정 경장이 코뼈에 금이 가는 등 4명 모두 크고 작은 1, 2차 부상을 당했다. 광주에서 파견된 정 경장 등은 당시 시위현장 주변 지리에 어두운 나머지 주민 30∼40명이 미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던 이 병원을 찾았다가 성난 군중에 휩싸여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21일자 1면 기사로 다뤄진 '구급차 쇠파이프 공격/부상 의경 끌어내 폭행'
중앙일보 21일자 1면 기사로 다뤄진 '구급차 쇠파이프 공격/부상 의경 끌어내 폭행'오마이뉴스 강이종행
같은 사안을 두고 두 언론사의 보도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에 비해 중앙일보는 '난동'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군민들의 폭력성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상황이다. 중앙일보는 이후 부안보건소 관계자의 말을 인용 군민들이 "패륜행위"까지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반해 뉴시스는 부안 군민들에게 경찰들이 폭행을 당하는 가운데 대책위 관계자들과 다른 군민들이 이를 헌신적으로 말려 부상 경찰 폭행 상황이 종료될 수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부안보건소 한 관계자는 "전쟁터에서도 부상병을 치료하는 의료시설이나 의료진을 공격하지 않는 게 도리인데, 앰뷸런스를 부수고 의료진을 폭행한 것은 패륜 행위"라고 비난했다."
(중앙일보)

"광주에서 파견된 정 경장 등은 당시 시위현장 주변 지리에 어두운 나머지 주민 30∼40명이 미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던 이 병원을 찾았다가 성난 군중에 휩싸여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을 잘못 찾은 이들은 그러나 대책위 관계자와 주민 신모씨(46) 등 20여명이 흥분한 군중을 가로막고 주먹세례를 받아가면서까지 병원 측의 협조를 얻어내면서 무사히 응급치료를 받은 뒤 20일 새벽 2시께 조건 없이 경찰에 넘겨졌다."
(뉴시스)


"말리는 군민 없었으면 큰 부상 입었을 것"

그렇다면 대체 당시 상황이 어땠기에 이같이 다른 기사가 나왔을까. 당시 상황에 대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광주에서 왔던 부상당한 경찰들이 상황을 잘 모르고 성모병원으로 갔다'(성모병원은 부상당한 부안군민들을 주로 치료했고, 인근 혜성병원에선 부상단한 전경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말리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더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특히 성모병원 측은 '진료를 거부했다'는 중앙일보 등의 보도를 반박했다.

부안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부안성모)병원에 주민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다른 병원(혜성병원)으로 가라고 했는데, 새로 온 병력들이 그 상황을 잘 몰라서 (부안성모병원으로)갔다가 봉변을 당했다"며 "임시치료를 받고 광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당시 앰뷸런스를 준비시켰던 성모병원의 한 관계자는 "그날 수많은 군민들이 부상을 입어 병원에 온 상태였고 300여 명의 시위대가 밀려서 병원 근처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한 뒤 "그 상황에서 경찰들의 안전을 위해 타 병원으로 후송을 하려고 했는데 언론에서 이를 '치료거부'라고 보도했는데 이는 말도 안 된다"고 언론보도를 반박했다.

그는 이어 "그 와중에서 화난 군민들이 전경을 폭행하고 앰뷸런스 유리를 깨고 타이어를 펑크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보다 더 많은 대책위 관계자와 군민들이 (부상경찰)폭행을 말렸다"며 "만약 말리지 않았다면 전경들은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부상 전경은 결국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새벽 3시쯤 김제의 한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서 취재를 했던 뉴시스 송 아무개 기자도 "아주 정상적인 상황에서 그랬다면 미친 사람이겠지만 이미 준계엄 상황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있는 병원으로 (경찰들이)갔으니 거기에서 느끼는 적개심은 일반 시위대를 능가했을 것"이라며 "당시 상황이 제어가 된 것 자체가 대단했다"라고 그날 상황에 대해 평가했다.

심지어 당시 폭행을 당했던 정 아무개 상경도 "죽는 줄 알았다"며 "경찰도 사람이고, 피해자다. 성난 군중을 달랜 대책위 관계자들에게 거듭 감사드린다"고 뉴시스를 통해 밝혔다.

중앙 기자 "폭행 막은 이야기 현장에서 듣지 못해"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기사를 작성했던 중앙일보 서 아무개 기자는 "당시 전경들이 응급실에 들어가 치료를 받고 있을 때 현장에 도착해 그 이전 상황은 직접 보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취재과정에서 폭행당하는 경찰들을 군민이 말렸다는 이야긴 듣지 못했다"며 "다만 차후에 대책위 관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군민이 말렸다'는 이야기를 들어 기사에서 그 말을 살렸다"고 밝혔다.

서 기자는 '병원측에서 치료거부 했다는 내용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환자가 왔으면 치료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묻고는 "기사에서도 일반환자들과 함께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치료거부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답했다.

서 기자는 또 '보건소 관계자가 '패륜행위'라고 까지 말한 것에 대해 군민들이 분노하는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사실 보건소 관련 내용이 더 있었으나 편집과정에서 삭제됐다"며 "'군민들이 화염병을 보건소에 던져 1200만원여 상당의 백신 등이 불에 탔고 총 4800만원 정도의 손실이 있었다'는 식의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보건소 관계자가 "전쟁터에서도 부상병을 치료하는 의료시설이나 의료진을 공격하지 않는 게 도리인데, 앰뷸런스를 부수고 의료진을 폭행한 것은 패륜행위"라고 비난했다는 것. 즉 보건소 관계자의 '패륜행위' 발언은 '보건소 방화'에 대한 언급이지 '부상 경찰 폭행'에 대한 지적이 아니었던 셈이다.

종합해보면 이날 부상을 입은 전경이 부상 군민들을 치료하는 병원에 갔다가 집단 폭행을 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를 말리는 사람들의 역할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취재과정에서 한 군민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론에서 제발 있는 그대로만 다뤄줬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했던 말대로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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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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