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가족이 1순위예요"

[인터뷰]KBS 인간극장 출연했던 처녀엄마 이수연씨

등록 2003.11.26 00:01수정 2014.03.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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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이른 새벽 갑자기 찾아든 한파로 옷깃을 세운 채,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 원산도 '선촌'으로 향했다.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총 4부작으로 방영된 KBS 인간극장의 주인공, 이수연(21, 가명)씨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IMG1@그녀는 현재 몸이 많이 쇠약해지신 아버지와, 은성호 선장인 오빠, 오빠의 아들인 조카 남자 셋만 사는 고향집에 내려와 이들을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며 살고 있다. 특히 2년전 오빠가 이혼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카는 수연씨에게도 남다르게 다가 온다. 그녀 역시 13살 때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 인터뷰 중, 조카는 아들 이상으로 끔찍히 아끼고 사랑하면서 얻게 된 '처녀 엄마'라는 별명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아가씨라는 표현보다 처녀 엄마라는 표현이 더욱 친숙하고 듣기 좋다고 말했다. 그밖에 수연씨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와 그녀의 일상적인 모습을 인터뷰에 담아 보았다. 다음은 수연씨와의 일문일답. 조카는 아들과도 같은 존재@IMG2@ - 먼저 자기 소개부터 부탁 드립니다."이름은 이수연. 가족관계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듬직한 오빠, 그리고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언니, 의젓한 여동생, 마지막으로 아들같은 조카 입니다."- 아직 미혼이신데, '처녀엄마'라는 별명이 듣기에 어떠신지요?"요즘에는 '처녀 엄마'라는 말이 더욱 익숙하고 듣기 좋습니다. 간혹 주위에서는 저를 아가씨로 부르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어색해요. 저 역시 어머니의 정을 못받고 자랐기 때문인지 조카만큼은 어머니의 공백을 느끼지 않게끔 처녀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울 때도 있을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감내하고 이겨내는지요?"비록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아버지께서 제가 자고 일어날 때, '아휴~ 우리 딸내미 고생하네'라고 한마디 해주실 때, 또 새벽에 머리 쓰다듬어 주고 이불 덮어주실 때 따스하고도 속깊은 사랑을 느낀답니다."- 인간극장 2편에서 한밤중에 조카가 배탈이 나 구급차에 실려 간 일이 있었는데, 당시의 심정은 어떠셨는지요?"그날 밤, 조카를 꼭 끌어안고 대천항으로 나오는 배를 타고 가면서 하늘을 봤어요. 순간 반짝이는 별이 하나 있더라구요. 전 그 별이 어머니 별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속으로 제발 별탈 없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절박한 제 심정이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맞닿는지 다행히도 배탈 원인은 과식으로 인한 급체증상으로 판명, 한시름 놓을 수 있었죠. 사실 그날 걱정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반팔 티셔츠를 입고 갔는데 바다 바람이 워낙 매서움에도 불구하고 전혀 춥다는 것을 못 느꼈을 정도이니까요. 아무래도 조카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조카는 수연씨에게 조카 이상의 특별한 존재 같습니다."네. 조카 이상이죠. 친아들과 다름 없습니다. 이후에 행여나 직장을 옮긴다거나, 시집을 가는 한이라도 아버지와 조카 만큼은 꼭 데리고 나가 함께 살 겁니다. 저에게서 가족은 고된 삶을 이겨 나가는 데 힘을 낼 수 있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원산도로 오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결정적 계기라함은 무엇보다 조카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또, 천식과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가 식사를 제때 못 챙겨 드시니깐 옆에서 맛있는 것도 해드려서 하루 빨리 쾌차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가족간의 갈등- 원산도로 들어 오기 전, 언니와의 갈등은 없었는지요?"1년전 제가 원산도로 들어오기 전, 언니가 "네가 조금만 더 고생하라"고 말했어요. 당시에는 언니에게 다소 섭섭한 감정이 있었죠. 당장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회사까지 결근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언니는 직장이 대전으로 발령나는 바람에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거든요." @IMG3@ - 원산도에 들어 와서도 적응 기간이 있었을텐데요?"그만 둔 직장에서 전화가 자주 왔어요. 절친한 친구들은 원산도까지 내려와 같이 일하자고 수차례 제의를 했죠. 하지만 그때마다 저의 한계를 느꼈어요. '다시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힘들게 결정해서 내려 왔는데 또 다시 나가면 아버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그늘이 질 게 분명할텐데'라고. 더구나 조카를 홀로 놔둔다고 생각하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1년전 원산도로 내려 온 직후, 오빠께서 수연씨에게 조카를 직접 맡아 주었으면 하는 부탁이 있었는지요?"오빠는 저에게 직접적으로 '너가 여기 남아 조카를 돌봐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당시의 오빠도 매우 힘든 시기였고, 어차피 제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조카를 돌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가족이란 서로 어려울 때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하잖아요." - 조카와 생활해 나가면서 처음에는 고충도 많았을텐데 어떠셨는지요?"처음에는 서로 서먹서먹 했죠. 고모로서 조카에게 일일이 잘못된 습관 등을 하나씩 짚어 주는데도 스스로 고치려 하지 않고 해서 그런 부분에서 마찰이 많았어요. 지금도 그래요. 제가 조카보고 '조카 말 안들으면 고모 나가야지, 짐 싸들고 나가야지' 하면 '고모 죄송해요' 그래요. 결혼도 하지 말래요. '고모, 나하고 같이 살아. 고모 이쁘게 하지마. 남자들이 다 데려가' 하곤 그러죠. 때론 이런 조카의 뒤 끝 없는 걸걸한 성격 탓에 마음 다잡고 혼내려 해도 이내 사그러 들고 말아요."조카와의 추억- 지난 1년동안 조카와 함께한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가 있다면?"원산도 앞바다로 놀러가 카메라도 찍고, 안면도 꽃 박람회, 동물원, 운동회, 급식실 당번 등 지난 1년간 조카와 있었던 모든 일들이 저에게는 소중하고도 값진 추억들이죠. 그중에서 굳이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하나 들자면, 조카 학교에서 일일 급식 당번일을 한 일이에요."- 조카가 고모인 수연씨에게 엄마와도 같은 사랑 표현은 하는지 궁금합니다."사실 조카가 겉으로는 표현을 잘 안하는 성격이에요. 그래도 가끔씩은 자신의 어머니와 고모인 저에 대해서 비슷한 점이나 다른 점을 말해 주곤 하죠. 하지만 지금의 조카는 엄마를 잊었어요. 저를 고모 이상의 엄마로서 인정한 거죠. 이는 서로간의 신뢰가 쌓였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가족간의 사랑 표현에 있어 무뚝뚝한 오빠- 현재 고충이 있다면 어떤 일인지요?"현재는 평온합니다. 다만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하루 빨리 건강을 되찾으시고, 조카도 고모 말 더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했으면 해요. 그리고 오빠와도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요."- 오빠와는 대화가 많이 부족한가요?"부족하다기보다는 오빠가 워낙 일에 치여 살다보니, 저와 조카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는 셈이죠. 하루는 제가 대천 시내를 갔다가 돌아 왔는데, 오빠가 속옷을 찾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여자가 하루 없는데 남자가 속옷도 못 찾아 입냐'고 잔소리를 하니깐 오빠가 그동안 밖에서 일 문제로 쌓여 있는 게 있다보니 저에게 되려 크게 화를 내더라구요. 이내 오빠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저는 또 그런 말을 듣는 게 쑥스러워요. 사실 가족은 서로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어도 표현에 인색한 편이잖아요."가족의 정의@IMG5@- 가족간의 모임은 자주 있는지요?"아버지가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밖으로 나가 회식을 한다는 것은 엄두를 못내구요. 주로 제가 대천에 나가서 음식을 사오던가 직접 음식을 장만해 함께 식사하면서 가족간의 못했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21살의 수연씨는 분명 성인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어리광부리고 싶을 때가 있을 듯합니다."아버지한테 애교를 부린다고 할까요? 가끔 아버지 품에 안겨 자기도 하고 웃고 울고 하며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 내죠." - 수연씨가 꿈꾸는 가족의 진정한 정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가족은 일종의 '사랑의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아픔이나 행복, 고민 등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보듬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가족'이잖아요. 제 아무리 절친한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완전히 털어 놓기란 힘들거든요. 저의 4남매를 잘 키워 주셨던 아버지와 우리 집안 장남인 믿음직한 오빠, 어머니의 생전 모습과도 같은 언니, 도시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막내동생, 그리고 조카이자 아들과도 같은 조카, 모두 제가 앞으로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 거센 풍파의 바람막이가 되어 줄 사랑스런 존재들입니다."수연씨의 꿈과 이상-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지요?"계획은 핸드폰 대리점의 사장이 되는 거예요. 물론 조카와 아버지 모두 데리고 나가 함께 살고 싶어요." - 인간극장에 수연씨가 알뜰히 사는 이야기가 소개된 이후, 이제는 원산도 지역을 떠나서 전국 각지에서 수연씨를 알아 보는 사람이 많을 텐데요. 팬들이 생기셨죠?"일주일여전 인간극장이 종료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팬레터만 50통이 넘어요(웃음), 소포로 과일도 오고 조카 과자와 학용품도 옵니다. 소포를 보내주시는 분 연령대는 주로 21~25살 남성들이에요. 그리고 어느날 조카한테 소포가 하나 왔는데 영양 젤리 등을 넣어 주셨더라구요. 그런데 주소가 없어서 미처 보답을 못해 드렸어요. 그분께는 정말 감사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수연씨가 생각하는 이상형은 어떤 타입입니까?"제 이상형은 저와 제 가족 모두를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라면 좋겠어요. 또 이왕이면 키도 크고 유머스러우며,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죠? 사실 예전에 남자 친구를 1년 넘게 사귀어 본적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워낙 집안일에만 신경 쓰다 보니, 자연적으로 멀어지더라구요. 남자 친구도 친구지만 무엇보다 저에게는 가족이 1순위입니다. 당시 남자 친구도 "2순위라도 좋다. 제발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 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가족과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 두 가지를 병행 하기에는 몹시 어려웠죠. 지금은 남자친구와는 헤어진 지가 꽤 됐습니다. 아직은 남자 친구를 사귈 시기가 아닌 것 같아요." - 인간 극장에 출연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죠?"인간극장 방영 이후에 조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한 통 왔어요. '아가씨,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고 그러더라구요. 하지만 이제 저희는 언니를 포기했어요. 3개월 후에 조카를 보러 온다고 했지만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오지 않고 있으니까요."- 집안일과 직장일을 동시에 해나가는 옹골차고 야무진 수연씨를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가사일과 직장일을 동시에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연씨의 건강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아요. 평소의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제가 실은 장염과 위염증세가 있어요. 또 목이 잘 붓는 편이고 편도선염이 있습니다. 한달에 두 번 정도 병원을 찾습니다. 아무래도 신경성 같아요. 저의 아버지께서 항상 아침을 챙겨 먹으라고 해서 요즘에는 억지로라도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합니다. 평소의 규칙적인 식습관이 올바른 건강관리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 가족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오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저와 오빠는 조카를 키워 나감에 있어 적잖은 의견차이가 있다고나 할까요? 오빠는 조카가 행여나 잘못을 하더라도 웃고 말아요. 하지만 제 시각에서는 조카가 분명 잘못을 했다면,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한다고 봐요. 옮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조카로 거듭 나기 위해서라도 단호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요?"정말 야무지시고 음식도 잘하셨어요. 수예를 참 잘하셔서 방석과 스웨터 등을 직접 만들어 주셨죠. 꽃도 좋아하셨어요 저 역시 엄마를 많이 닮아서 꽃꽂이 등에 관심이 참 많아요."- 수연씨 방을 보니 서랍장에 조카의 옷과 수건 등을 일일이 따로 따로 정리하시는 등, 꼼꼼하고도 세심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정말 으뜸가는 신부감과 다름 없네요"사실 서랍장도 농협에서 안 쓴다고 내다 놓은 걸 가져 왔고, 천장에 조카를 위해 야광별들도 달아 놓았어요. 앞으로도 조카와 저의 가족 모두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고 싶어요." - 음악을 들으면서 가사일을 하시는데 요즘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음악장르가 있는지요?"노래는 못 불러도 듣는 건 정말 좋아해요 좋아하는 뮤지션은 서문탁, 김경호 정도이고, 음악 장르는 락을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가사일을 하면서 심심하니깐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일이 빨리 끝나곤 하죠. 음악을 들으면 한곳에 전념, 집중할 수 있어 좋죠."인터뷰 후기수연씨와의 1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의 발걸음은 한결 가볍고 경쾌했다. 무엇보다 수연씨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일상 속에서 가족에 대해 일부 남아 있는 응어리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싹 털어 내는 것은 어떨까? 수연씨의 말처럼 가족이란 서로의 사랑과 아픔을 함께 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진심어린 '사랑의 공동체'니 말이다.
2003.11.26 00:01ⓒ 2014 OhmyNews
#인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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