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는 무모함과 바보스러움에 대하여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

등록 2003.11.28 14:06수정 2003.11.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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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반짝반짝 빛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 소담출판사

"평소 열심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도, 그런데도 어쩌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연애 소설을 쓰고자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그 사람을 느낀다는 것. 인간은 누구나 천애 고독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중략)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을 하거나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용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을 하고 마는 많은 무모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힐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일반적인 관념으로 볼 때에 '정상과는 약간 다른' 사람들이다. 동성연애자인 남자와 알콜 중독자인 여자가 이끌어 가는 결혼 생활은 남들이 보기에 매우 이상한 관계이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그 삶을 가꾸어 간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고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게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들의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비록 그 사랑의 모습이 일상적이지 않더라도. 작가는 이처럼 독특한 삶의 방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랑의 또 다른 모습과 의미를 제시한다.

비록 정상적인 부부 관계는 아니지만 여 주인공 쇼코는 남편 무츠키를 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좋아한다.

"무츠키는 잠들기 전에 별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양쪽 다 시력이 1.5인 것은 그 습관 덕분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나도 따라서 베란다에 나가기는 하는데, 별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아니다. 별을 바라보는 무츠키의 옆얼굴을 보기 위해서다. 무츠키는 짧은 속눈썹이 가지런하고 얼굴이 예쁘장하다. (중략) 아일리시 위스키를 마시며 이렇게 남편과 밤바람을 쐴 때 나는 아주 행복하다."

사랑의 완성은 상대의 좋은 점만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부분까지 모두 끌어안고 인정할 때에 이루어진다. 여 주인공 쇼코는 남편의 남자친구 곤을 인정하고, 남편 무츠키는 쇼코의 술 마시는 습관과 조울증을 감싸안아 주려고 노력한다.


이들의 사랑이 통념적 사랑이 아닐지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움을 지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상대의 보석처럼 빛나는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안다면 인간 관계는 좀더 풍요롭지 않을까?

"돌아보며, 어서 와, 라고 말할 때의 쇼코의 웃는 얼굴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쇼코는 절대로 반갑다는 듯 달려나오지 않는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다니 꿈도 꾸지 않았다는 듯이, 놀란 얼굴로 천천히 미소짓는 것이다. '아아, 생각났다'는 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동화 속 공주님의 이야기처럼 늘 행복한 내용만을 담는 건 아니다. 사랑의 달콤함에는 쓰디쓴 아픔과 괴로움, 고민과 짜증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요소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 사랑은 좀더 완전한 면모를 지니게 된다.

술을 마시고 물건을 집어 던지며 오열하는 쇼코. 그녀가 우울한 이유를 남편은 알지 못한다. 그녀 자신마저도 자신의 엉뚱한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타인인 남편이 그걸 이해하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다른 이들이 자신을 이해해 주길 절실히 바라는 이기심을 갖고 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이것은 어려운 과제이자 결코 끝나지 않는 인생의 숙제일 것이다.

나는 수화기에 대고 울음을 왕 터트렸다. 왜 울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목욕을 하면서 위스키를 마셨어. 무츠키는 전화도 해 주지 않았고. 야근할 때는 항상 전화했었는데. 도너츠 사 가지고 왔는데, 그런데 내가 심술궂게 대했어. 그렇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데,"
마음 가라앉혀, 라고 미즈호가 말했다.
"너 투정 부리는 거니?"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혼란과 방황 속에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두 주인공은 서로의 상처와 아름다움을 감싸안고 인정하면서 결말을 이끌어낸다. 무츠키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며 마지막에 던지는 말은 그의 삶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의 반영이다.

"불안정하고, 좌충우돌이고, 언제 다시 와장창 무너질지 모르는 생활, 서로의 애정만으로 성립되어 있는 생활."

주인공의 말처럼 가끔은 내 삶과 사랑이 불안정하고 좌충우돌이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삶 속에는 누군가를 향한 애정과 나를 향한 애정 또한 포함되어 있다.

비록 흔들림 속에 존재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무모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따스함의 느낌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하고 싸움을 하고 혼란을 겪는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며, 또 타인을 인정하고 감싸안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

반짝반짝 빛나는

,
소담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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