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기이한 결혼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

등록 2005.05.27 08:12수정 2005.05.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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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에게 어디까지가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일까'라는 의문을 들게 한 작품이 있다. 바로 <반짝반짝 빛나는>이란 작품이다. 이 책은 단순한 사랑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반짝반짝 빛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매력이 숨어 있다.

세상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이란 하나의 덩어리 속에서 누구보다도 빛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에쿠니는 아마도 어떤 형태의 사랑을 하든 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 소설은 진부하다면 진부한 그런 사랑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책이 빛나는 것은 설정 차제에 있다. 남편은 호모, 부인은 정신질환자. 이 두 사람이 엮어 가는 부조화 속에 조화로운 사랑이야기. 설정만 보아도 남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가 두 사람이 함께 써내려가 상대방의 시점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에쿠니 혼자 남편과 아내의 시점을 교차하며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남편의 애인, 즉 한 남자도 한 몫 거든다.

잠에서 깨어나자 아홉 시 15분이고, 무츠키는 벌써 나간 후였다. 잠옷을 입은 채 거실로 나가자, 향긋한 커피 냄새가 났다. 청결한 실내에는 가습기가 쉭쉭 소리를 내고 있고, 리플레이 단추를 눌러 세트한 CD가 세 장,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볼륨으로 흐르고 있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무츠키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무츠키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이리만큼 밝은 이 방과, 환경음악의 병적인 투명함. 이곳에는 진짜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당장 무츠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하네기의 꿈을 꾸다니, 무츠키 탓이다. 무츠키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진 불안이 점점 목구멍으로 치밀고 올라와, 나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본문 中에서 p44



게이 남편을 둔 쇼코, 알콜중독에 정신분열증 환자 부인을 둔 무츠키 그들의 결혼은 이미 불행을 안고 시작한 것이다.

그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눈치빠르게 먼저 방에 들어가서 나는 무츠키의 침대에 다림질을 하였다. 이런 결혼 생활도 괜찮다, 고 생각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잃지 않는다, 아무 것도 무섭지 않다. 불현듯, 물을 안는다는 시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결국 겉보기엔 어엿한 의사인 남편과 지내는 달콤한 결혼생활이지만 그 이면에는 응어리진 슬픔이 내재되어 발을 잘못 디디면 쉬이 깨질 수 있는 것. 에쿠니는 언제나 사랑이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두 부조화가 함께 하면서 서로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두 주인공 간 미묘한 사랑의 감정선을 읽을 수 있다. 단지 그것이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옆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나 힘이 되는 그런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옆에 있는 물건을 죄다 무츠키에게 던지고 있었다. 홍차 깡통, 찻잎 거르개, 민트병, CD 재킷, 물뿌리개, 문고본. 하나하나 던지면서, 나는 흐르는 눈물에 나를 맡겼다. 목구멍에서 '꺽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츠키는 마치, 양심이란 바늘을 잔뜩 곧추세우고 있는 고슴도치 같다. 무츠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그게 죽도록 무서워서, 말 따위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슬펐다. 어째서 결혼 따위를 한 것일까. 왜 무츠키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나는 자신이 몹시 떨고 있음을 알아챘다. … 나는 이제 무츠키 없이는 살 수 없다."
-본문 中 183P


또한 이 소설에는 에쿠니 특유의 재치가 잘 살아 있다. 그 재치는 바로 마지막 반전에서 느낄 수 있다. 동성애자 남편과 알콜중독 정신분열환자 아내와 남편의 애인, 이렇게 세 사람이 이뤄내는 반전은 독자들에게 따뜻함을 준다. 셋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설정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에 어긋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들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

한번쯤 이 상식적인 세상이 지겨워질 때 그것을 못 견디는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반짝반짝 빛나는

,
소담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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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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