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팔도강산' 연속극이 그리운 이유

[대안칼럼-38]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등록 2003.12.30 01:58수정 2003.12.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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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안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0여 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영국 셰필드 대학에 객원교수로 가있는 계명대 김영철 교수(경제)가 최근 국회에 계류중인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국회는 29일 본회의에서 특별법을 통과시켜 내년 4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됩니다... <편집자 주>



기억이 아물거리지만 70년대 초반쯤인가 '팔도강산'이라는 TV 일일 연속극이 있었다. 김희갑·황정순이 부부로 출연하여 각 지방으로 출가하여 흩어져 사는 아들·딸을 만나러 팔도를 유람하는 이야기이다.

그 연속극의 주제가인가, 역시 기억이 아물거리기는 하지만 당시 "팔도강산 좋을시고, 에헤야 데헤야~"라고 하는 가사의 노래도 꽤 인기가 있었다. 그 노래는 가수 최희준이 부른 것으로 기억한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먼 옛날의 TV 연속극이 갑자기 나의 머릿속을 스친 것은 최근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둘러싼 논의가 강퍅함을 더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이다. 정확히 말하면 '팔도강산'이라는 연속극 보다는 팔도강산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고유의 정감이 나의 기억의 샘을 자극하였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둘러싼 논의에서 드러난 천박한 자본주의적 계산방식과 용열한 지역 이기주의에 상심한 나는 팔도강산이라는 말이 풍기는 다원주의와 평등주의의 뉘앙스에 잠시나마 신선한 감흥을 받고 적게나마 위로를 받았다.

지나치게 단순하게 말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라는 것이 결국 한국 사회를 팔도강산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아닐까? 현재 한국사회는 팔도강산이라는 말이 은유하는 다양한 색채의 조화로움을 잃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신 수도권과 지방이 흑백의 음영으로 경계를 이루는 모노톤의 단순한 사회로 변하고 있다. 그 안에서 흑백의 음영은 한쪽이 밝으면 다른 쪽이 어두워지는 제로섬의 법칙에 의해 작동된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은 수도권과 지방의 경계로만 이루어진 흑백 모노톤의 사회를 다양한 색채가 어울려 상생의 조화를 이루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것을 지향한다.

팔도강산 연속극과 유신독재의 폭압성

내친 김에 지나치고 넘어갈 수 없는 사실은 70년대 '팔도강산' 연속극이 방영된 정치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팔도강산'은 당시 국가동원방식으로 진행된 새마을 운동을 홍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신 독재의 폭압성을 위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된 문화적 장치이리라.

무엇보다도 당시 악화일로에 접어든 영호남 대립의식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지방성을 강조하고 그것이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억지로라도 구성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같이 정치적으로 오염된 의미 구조로 활용되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금 이 순간 팔도강산이라는 단어를 기억해내고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말의 원형이 함유하고 있는 다원성과 평등성의 의미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 사회는 영호남이 적대적으로 갈려 갈등구조를 나타내었던 70년대보다도 그 말을 유통시킬 만한 사회경제적 토대가 약하다. 팔도강산이라는 말 대신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경기도를 전면에 내세운 수도권 전체의 반발은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서울 공화국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주고 명백한 사례이다.

내세우는 명분은 수도권 집중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 지역 발전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면 그것은 수도권을 역차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 자원을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분산하게 되면 시장경제원리에 반하여 오히려 국가 경쟁력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지역간 발전격차를 극복하자고 하는 제안에 대하여 수도권의 역차별을 들고 나오고, 경제력의 분산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하여 그것이 국가경쟁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한다고 공박하는 것은, 그 논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한국 사회의 수도권-지방의 이중구조에 대한 수도권과 지방의 현실 인식의 심각한 괴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제정에 대한 수도권의 입장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건설적인 토론을 겨냥하기 보다는 현실적인 힘의 논리를 앞세워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적인 토론보다 힘의 논리로 특별법 제정 무력화 의도

말하자면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아있는 지방경제의 위기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관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경기도내 낙후지역의 경우를 들어 수도권 역차별론을 끄집어내는 것은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니다.

수도권 규제 정책에 의해 경기도내 낙후지역이 심한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논의에는 순서가 있고 또한 논의 수준의 차원이라는 것이 있다. 그 순서를 어기고 논의 수준의 차원을 무시하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상식보다도 현실적 계산을 앞세우겠다고 한다면 아예 드러내놓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이다.

지방에 투자를 촉진시키면 수도권에 대한 투자를 상대적으로 위축시키게 되어 국가경쟁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한다는 주장은 그것이야말로 수도권 일극중심주의에서 파생된 수도권 우월론의 대표적인 발상이다.

수도권이 현재 누리고 있는 높은 경쟁력은 그동안 투자와 인적자본이 집중된 결과이지 그 반대의 과정이 아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수도권은 과잉투자와 과밀비용으로 투자의 효율성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제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이다.

일정한 투자재원을 두고 배분하여야 한다고 할 때 상대방의 몫이 많으면 내 몫이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이다. 그동안 수도권에 대한 집중투자를 위해 지방의 몫까지 미리 당겨서 사용하였다고 한다면, 수도권의 투자효율성이 떨어지는 현시점에서 지방에 대한 투자를 증대시키는 것은 이른바 '희생의 교대'라고 하는 거창한 수사를 빌릴 필요도 없는 지극히 합리적인 대응이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관한 논의와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지역의 구분 문제이다. 현재로서는 수도권을 배제한 비수도권을 지방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사업을 실시하기 위해서 지방을 몇 개의 지역으로 구분하는 일이다.

이 경우 지역 구분의 구체적 방법과 기준을 정하는 것에 대하여 쉽게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비수도권의 지방 전체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제정을 위해 단일한 전선을 구성하여 협조하고 있지만, 지방을 몇 개의 지역으로 구분하는 문제에 이르면 이해관계의 조정과 관련하여 지방 상호간 커다란 다툼이 예상된다.

팔도강산이 지닌 지역적·경제적·역사적 의미

나는 여기에서 다시 팔도강산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를 느낀다. 이 때 팔도강산은 김희갑·황정순이 유람한 남한 지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지역을 포함한 본래 의미의 조선팔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행정권역은 조선팔도에서 출발하였으나 그것이 보다 세분화되고 또한 중층의 위계질서를 가진 것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말할 나위 없이 이것은 중앙집권적 행정 방식에 따라 편의적으로 조정된 것이다.

따라서 향후 국가균형발전사업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 행정권역의 재조정은 불가피한 조치로 파악된다. 이 경우 조선팔도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팔도의 경계는 한국 사회의 지역성의 뿌리로서 그 자체가 독자적인 경제권역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동일한 지역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팔도가 국가균형발전사업의 독립적인 단위가 되면 현재 수도권 내의 낙후지역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은 결국 지역'내'의 문제로 포섭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나아가 조선팔도의 개념은 통일 이후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중요한 지역 구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

나는 앞에서 팔도강산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 것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둘러싼 논의의 강퍅함 때문이라고 언급하였지만, 실제로는 국가균형발전과 관련하여 팔도강산이라는 말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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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김영철 교수 ⓒ 오마이뉴스

팔도강산이라는 말을 통해 영호남 지역간 대립을 뛰어넘고,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적 격차를 극복하고, 통일 이후 사회적 통합의 지역적 단위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이상향의 이미지를 발견한다고 하면 지나친 상상력인가.

일언이폐지하고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한다. 그 논의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의 천박성과 민주주의의 부박함이 부끄럽지 아니한가. 한국 사회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제정을 통해 선진 사회로 이제 한걸음 크게 도약할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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