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여성 정치인 회의론'에 답한다

[여성100인 국회보내기 ⑤]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교수

등록 2004.01.06 10:39수정 2004.01.08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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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여성 100인 국회보내기 - 정치를 신선하게! 여성이 요리하자!'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오마이뉴스>에 각계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아래는 그 다섯번째로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교수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첫째, '준비된 여성 후보가 있는가?'
둘째, '여성 유권자가 여성을 지지하지 않는다'
셋째, '여성이 정치를 하면 무엇이 다른가?'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궁금해 한다. 그리고 이것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이하 여성네트워크)가 '여성 100인'을 국회로 보내려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더 나아가 여성의 정치 참여를 주장하면서 지속적으로 받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 세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첫째, 준비된 여성이 있는가? 답은 '있다'이고, 그 근거는 여성네트워크에서 발굴한 여성 후보들이다. 이들 여성들은 도덕성·민주화·인권에 대한 기여·여성인권 향상에 대한 기여·공익에 대한 헌신·전문성의 면에서 충분히 준비된 후보들이다. 여성네트워크에서 후보자 추천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지위와 특권이 이들 여성을 정치라는 광장으로 끌어내는데 충분한 당근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후보 중에는 여성의 정치 참여라는 시대적 과제에 동의한다면 등을 떠밀기로 한 후보들도 포함하기로 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문제는 지위에 대한 욕심에서 나온 '저요 저요', 또는 '나로 말하자면'을 준비된 후보의 자질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삼고초려를 해서 끌어내고 싶은 사람과 본인의' 저요 저요'는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생활을 반납해야 하고 국민 개개인의 아픔을 챙겨야 하는 국회의원직 또는 공직이라는 부담은 천직에 대한 사명감이 없이는 함부로 맡기 어려운 고된 일이다. 직무의 무게와 부담을 아는 사람이라면 감히 '저요 저요'를 할 수 없다고 본다.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는 여성들을 향해 무임 승차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물론 2004년 현 시점에서 한국사회에서 지역구 후보가 된다는 것은 끝도 없는 '발품·손품·돈품'을 팔아야 하는 고되고도 고된 강행군이다. 고된 중노동을 더 많이 하고 더 많은 술과 밥을 나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유권자가 직접 뽑는 것이 정치적 대표성을 확립하는 정통 코스라는 점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이미 위헌 사항으로 판결이 나있는 상황이지만 지역구에 따라 국회의원은 10만명의 대표가 되기도 하고 30만명의 대표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상대 후보보다 종다수로 한표라도 더 많으면 당선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산술적 합리성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다른 더 어려운 대표성을 아직 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편의적 합의의 결과라는 점을 한번 상기해 보아야 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라고 했던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대의성의 문제를 다시 공론에 부치게 하는 것 자체가 기여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지역 선거에 적용되는 이중 규범에 대해 적응력이 없는 여성들은 지역 선거가 두렵기만 하다. 버젓하게 법을 위반하고도 아니라고 잡아떼거나, 아니면 이중 장부를 만드는 일까지 서슴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이들의 맑은 눈 앞에서 또는 신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준비된'의 준비가 돈, 연줄, 이중규범을 감수하는 뻔뻔함, 지위와 특권에 대한 탐욕이라면 여성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전문성, 공적 헌신, 약자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 신과 자연 그리고 아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겸손함이라면 준비된 여성들은 많다. 그러므로 이제는 '준비되다'라는 동사를 자동사로 쓰지 않고 목적어를 분명하게 밝힌 타동사로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따져 물어야 할 때다. 특히 여성의 준비를 논할 때는 더욱 그렇다.

두번째로 여성유권자가 여성을 찍지 않는다는 문제로 넘어가 보자. 이것이 과연 여성유권자와 후보자와의 관계뿐이던가. 고부간의 갈등, 특히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현재의 시스템에 그대로 적응하게 되면 여성의 적은 여성이 될 수밖에 없다. 결혼 지위든 직업 지위든 여성의 지위 획득 과정은 같은 여성과 경쟁하도록 짜여있다. 분할 통치란 약자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통치 방식이다. 결과는 보통선거가 제도화되고 되었는데도 분명 수적으로 다수인 사회적 약자 집단이 정치적 대표성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기회의 평등이 결과의 평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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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정치적 대표성을 가각하기까지는 구조의 두터운 벽을 뚫고 생각하고 느끼는 훈련을 거쳐야만 한다. 관대한 남성, 수호 천사로서의 남성과 가난하고 성실한 여성과 부잣집 악녀의 대립 구도는 드라마들이 즐겨 동원하는 소재이다. 이런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 내는 여성 대 여성의 경쟁과 대립 구도는 불행을 설명해 주는 '편리한 가상의 적'이라는 심리적 편의주의의 함정을 파고들고 있다.

더 기막힌 일도 겪었다. 성희롱, 성폭력 가해자인 남성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변호인은 가해자의 누나 또는 아내였다. 성폭력 피해 여성과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 단체 속의 여성과 가해자 남성의 옹호자가 되는 여성이 서로 마주 대한다. 가해자인 남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군 가산제 위헌 소송을 낸 여대생들의 앞을 막아선 것도 아들의 어머니들이었다.

피해자끼리의 아귀 다툼을 극복하는 것, 그것은 모든 약자들의 정치적 대표성을 만드는 과제 중의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유권자가 여성 후보자를 지지하지 않을수록, 그것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의 엄중함을 반증하는 자료일 뿐 여성의 정치 참여의 의지를 꺾기 위한 냉소거리가 될 수는 없다. 이미 여성들은 이 냉소를 뛰어넘어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뿐인가. 송년과 신년에 걸쳐 안방극장에는 이색적인 드라마가 등장했다. 현모양처의 죽음, 현모양처의 빈자리를 채우는 여성과 죽어가는 여성은 한 남자에 대한 애정의 경쟁자로서가 아니라 주부라는 역할에 대한 임무 교대자로 등장한다. 드라마의 내용이 변하듯이 현실도 변화한다.

세번째 여성이 나서면 무엇이 다른가?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정치적 이해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고민하던 내게 1996년 서울 여성 영화제에서 만난 변영주 감독은 단호하게 말했다. 여성감독은 그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가 반(反)여성적이라고 해도 지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성 감독이 워낙 귀하고 여성이 감독으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기 때문에.

1996년 변영주 감독이 울분에 찬 연설을 했을 때, 또한 그녀가 '정신대 할머니를 위한 다큐멘터리 필름 사주기 운동'을 위해 여성학회의 막간에 들어와 외칠 때 여성의 생물학적 대표성은 바로 정치적 대표성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2004년 현재는 생물학적 대표성을 넘어서는 정치적 대표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치적 대표성은 여성이 처하고 있는 각 사회의 시대적 과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현재 우리 사회 정치의 과제는 여성네트워크에서 표상하고 있듯이 반부패를 1차적인 정치적 대표성의 상징으로 삼았다.

화성 씨랜드 사건에서 부패의 회전문을 막아선 여성 공무원의 구체적인 사례에서 출발하여 여성은 지금까지의 부패고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여성의 처한 위치의 '다름'이다. 부패는 하나의 먹이 사슬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연줄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점에서는 상대적인 차이이지 절대적인 차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인 차이를 질적인 차이로 만들어 내는 것은 제도를 정책화시킴으로써 가능한데, 현재 '맑은 정치'에 대한 사회적 염원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이 제도를 만들어 내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외의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할 과제이다.

이정옥 교수
이정옥 교수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여성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의 생산-재생산 과정에서 진공상태에 있었던 점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 차이이다.

상대적 차이를 가지고 질적 도약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노력이 가미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여성들은 겸손되게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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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여성, 내 손으로 정치권에 보낸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여성의 힘으로 위기의 부패 정치를 개혁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의 새판짜기를 할 수 있는 여성들을 17대 국회에 진출시키는 운동을 펴기 위해 지난 달 6일 발족했습니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지난 해 12월15일까지 약 한달간 17대 총선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개혁적인 여성 후보를 추천받아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 100여명을 선정, 오는 8일 발표할 예정입니다. 추천 명단은 각 정당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정치를 맑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여성이 국회를 들어가야 합니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의 홈페이지 주소는 www.womanpower2004.net입니다. 후보자 명단 및 향후 활동계획은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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