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불놀이는 진짜 쥐로 해야 제맛"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35>동네 공동묘지를 태워먹을 뻔한 '위험한' 쥐불놀이

등록 2004.02.02 12:25수정 2004.02.0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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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불불불
불불불 불불불
공동묘지 산이 탄다
다이나마이트에 깨져 반만 남은 묘지
활활활 잘도 태운다
면장아들이 신질로 뛰어가고
와아 아이들 고함소리에
마을 하늘 지키며 빙빙 돌던 방패연이
절뚝이며
절뚝이며
마을 처녀들 월셋방으로 날아갔다
집 나간 분이 에미의 못난 가슴으로
수출공단 취직 가 돌아오지 않는
이 마을 딸년들의 가슴으로
개새끼들 살찐 모가지에
대창으로 푹 꽂히러 날아 날아갔다


(이소리 '정월 대보름 6' 모두)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삼삼오오 텅 빈 들판으로 나가 연을 날리고 팽이를 치기도 하다가 오후가 되면 논둑에 불을 지르는 재미에 폭 빠지곤 했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불을 쬐며 '무성티'에서 잘 익은 호박 같은 보름달이 쑤욱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무성티? 그래. 우리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마을 동쪽에 병풍처럼 우뚝 서 있는 비음산과 대암산을 무성티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암산 남동쪽에 무성티의 날개처럼 날렵하게 솟아있는 봉우리를 '근티'라고 불렀고, 산마루에 군사기지가 있는 불모산은 '갈판이산'이라고 불렀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었던 무성티는 우리 마을 아이들이 이른 새벽마다 나무를 하러 가는 산이었고, 마을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근티와 갈판이산은 마을 어르신들이 5일마다 열리는 상남장에 내다 팔, 질 좋은 나무를 하러 가는 그런 산이었다.

"너거들 불 지르는 것도 좋은데, 불로 너무 좋아하모 안 된다카이."
"와예?"
"불로 너무 좋아하모 자다가 이불에 오줌 싼다카이. 그라고 잘못해가 남의 뫼뜽(묘)이나 태우지 말고, 알것제?"


그랬다. 간혹 들판 논둑 곳곳에 불을 지르다가 자칫 잘못하면 공동묘지가 있는 야트막한 산에 불이 붙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달집을 열심히 만들던 마을 형들과 지신밟기를 하느라 징과 괭과리를 치며 마을을 돌던 마을 어르신들이 물동이를 들고 몰려나와 산불을 끄느라 야단법석을 떨기도 했다.


들판을 물고 있는 그 산에는 나의 증조, 고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조상들이 묻힌 제법 넓찍한 공동 묘지가 있었다. 당시 마을 어르신들은 야트막한 산에 있는 소나무들이나 잡풀들이 타는 것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묘지가 타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묘지를 불태우는 것은 곧 조상님의 영혼을 불태우는 것이며, 조상의 영혼이 불타 없어지게 되면 자손이 모두 끊기게 된다는 독특한 민속 신앙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어르신들은 논에 나갈 때마다 조상님 묘에 들러 잡풀들을 뽑기도 하고 수시로 잔디를 깎았다. 그런 탓에 공동묘지 주변은 늘 깨끗하고 반듯했다.


"공동묘지에 불이 붙었다아~"
"저런 저런!"
"에~ 동산부락 주민 여러분! 에~ 시방 앞산가새 공동묘지에 에~ 부, 불이 붙었심니더. 에~ 이 방송을 듣는 즉시 에~ 퍼뜩 앞산가새로 에~ 모여 주이소."


그랬다. 그해 정월 대보름날 오후였다. 그날도 오전 내내 연을 날리던 마을 아이들은 오후가 되자 삼삼오오 몰려나와 논둑마다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을 아이 중 하나가 쥐덫에 걸려 있는 살아 있는 쥐를 한 마리 들고 나왔다. 고양이처럼 수염이 송송 돋아난 그 쥐는 무서운지 동그란 눈을 끔뻑이며 자꾸만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우리 진짜 쥐불놀이로 한번 해 보까?"
"그, 그기 머슨 말이고?"
"니 퍼뜩 너거 집에 가서 깡통에 석유 좀 부어온나. 마을 형이 그라는데, 진짜 쥐불놀이는 살아있는 쥐에다 불로 붙혀놓고 노는 기라 카더라."


마을 아이들은 모두 입을 반쯤 벌린 채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살아있는 쥐에다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이다니.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마을 아이들 대부분은 호기심이 더 많았다. 과연 몸에 불이 붙은 쥐가 어떻게 들판을 쏘다니며 논둑에 불을 붙일 것인가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윽고, 쥐덫에서 두려운 눈을 껌뻑이며 발을 바르르 떨고 있던 쥐에게 석유가 부어졌다. 그리고 마을 아이 중 하나가 불이 붙은 부지깽이를 쥐에게 갖다댐과 동시에 쥐덫의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온몸에 불이 붙은 쥐는 들판을 가로질러 쏜살같이 공동묘지가 있는 앞산가새로 달려가 마른 풀숲에 폭 꼬꾸라졌다.

"인자 클났다! 우짤끼고?"
"튀자!"
"어른들이 알모 우리들은 송장 신세나 마찬가지다."


삽시간에 공동묘지 주변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마당뫼로 달려가 숨었다. 그리고 불타는 공동묘지를 바라보며 가쁜 숨을 휘몰아 쉬었다. 그리고 모두들 종아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 때까지 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시치미를 뚝 떼자고 약속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쥐가 달려간 들판 곳곳의 지푸라기에도 작은 불점들이 띄엄띄엄 불타고 있었다. 마을 형들이 말하는 진짜 쥐불놀이란 것은 정말 '무서운 놀이'였다. 물론 그날은 마을 이장의 방송을 듣고 마을 형들과 어르신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불을 끈 까닭에 뫼등 주변만 조금 태우고 불은 모두 꺼졌다.

"우와! 정말 큰일 날 뻔했다카이."
"그래. 인자 함부로 그런 놀이는 하지 말자꼬. 그 쥐가 만약 동네로 달려갔으모 우째 될 뿐했노? 우리 동네가 온통 불바다가 될 뿐 했다 아이가."


그래.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나는 그때 그 잔인하고 무서웠던 쥐불놀이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쥐불놀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지금도 온몸에 불이 붙은 그 쥐가 들판 여기저기 불점을 흘리며 쏜살같이 달려가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쥐야! 정말 고맙다. 그리고 그때 너무나 철 없었던 우리들을 용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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