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량 강제할당에 인간관계 끊길판”

번호이동성 실시 뒤 곤욕 치르는 이동통신사 직원들

등록 2004.02.02 21:59수정 2004.02.0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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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텔레콤 홈페이지
LG텔레콤 홈페이지
번호이동성 제도 실시 뒤 이동통신 업체가 보조금 지급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해당 업체 사원들이 강제 할당 판매량을 부과 받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동통신회사들이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영업 직원은 물론 판매와 관련이 없는 비영업직과 계열사 직원, 심지어 협력업체에까지 정한 수의 고객을 SK텔레콤에서 끌어올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강제할당받은 LGT직원 "전화 거는 일로 하루 시작"

LG텔레콤에 근무하는 이 아무개씨는 요즘 회사에서 자신의 업무는 제쳐두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작된 뒤 각 사원별로 판매량 50대가 할당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LG텔레콤에서 평사원은 50대, 임원급은 100여 대 정도가 목표량으로 정해졌다고 말했다. 이 씨는 SK텔레콤에 가입한 가족 친지들을 설득해 LG텔레콤으로 옮기게 하거나 새로 가입하는 방법으로 10대를 채웠다. 그러나 아직도 할당량에 많이 모자라 친구나 평소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매일 가입권유전화를 돌리고 있다.

이씨는 “특별히 회사에서 가입자 확보를 위한 지원금을 주는 것도 아니어서 아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도와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다고 해서 직접적인 불이익은 없다. 그러나 상급자들이 워낙 할당량 채우기에 혈안이 돼있어 부하직원으로서 큰 부담을 느낀다”고 밝혔다.

LG계열사에 근무하는 신 아무개씨도 번호이동성 고객 확보에 나섰다. 입사 6개월째인 신씨에게는 목표량 10대가 할당됐다. 신 씨는 “요즘엔 선후배나 친구들이 LG텔레콤으로 옮기라는 독촉에 부담을 느껴 내 전화는 아예 받지 않으려고 한다”며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작된 이후로 인간관계가 모두 끊기게 생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LG텔레콤의 판매량 할당은 LG 계열사 하청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LG계열사의 한 하청업체에 근무 중인 이 아무개씨는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작되기 전에도 019 휴대전화 가입 요청은 있었다”며 “우리는 대기업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청업체다. 이번에도 직원들이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30만원 상당의 휴대폰을 울며 겨자 먹기로 사게 됐다”고 말했다.

KT 분당 본사 사옥
KT 분당 본사 사옥KT
KT도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며 할당량 부과


KTF의 무선재판매 사업(이동통신사업자가 아닌 업체가 별정통신사업자 인가를 받아 가입자를 유치하고 수수료를 받는 것)을 벌여온 KT의 경우도 직원들에게 번호이동가입자 확보에 할당량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KT 직원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KT가 가개통 건으로 29억 추징금을 받은 이후로 잠시 주춤하다가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작되면서 다시 강제 할당이 내려오고 있다”며 “관리자들이 공공연하게 가입자 유치가 인사고과의 우선 순위라며 독려하는 분위기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직원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직원들에게는 가입자 한명당 7만 5천원, 보험설계사 등 개인사업자에게는 더 많은 금액을 가입자 모집용 장려금으로 지급하고 있다”며 “이 금액이 불법보조금으로 전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KT 직원 사이트(www.ilovekt.org) 게시판에는 가입자 유치 강제 할당과 관련 “실적 올리기 위해서 5인 가족이 모두 영업사원처럼 매달리고 있다”, “PCS 못팔아 먹겠다. 제발 PCS 재판매 분리됐으면 좋겠다” 등의 성토성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LG텔레콤과 KT "사원판매 강요한 적 없다"

통신위, KT 무선재판매 조직 분리될 수도

통신위원회(위원장 윤승영)가 KT의 무선재판매 관련 조직을 분리시키는 시정명령을 내릴지 결정하기 위해 KT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통신위는 KTF의 무선재판매권을 가진 KT 임직원들이 영업촉진 장려금을 불법 보조금으로 전용했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위는 KT의 불법이 심각할 경우 작년 7월에 내린 KT 무선 판매조직의 분리 명령을 채택할지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동형 통신위 사무국장은 “조사결과 불법의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면 무선재판매 조직 분리를 검토할 것”이라며 “이는 작년 7월 KT에 가개통을 통한 불법 가입자 모집 건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이미 강력히 경고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KT뿐만 아니라 번호이동성과 010통합번호 가입자 확보 과정에서 벌어진 여타 이동통신업체의 불법 보조금 지급 여부도 통신위의 조사 대상이다.

통신위는 우선 3일 99차 위원회를 열고 SK텔레콤의 인트로 광고와 약정할인 과대광고에 대해 심의할 예정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 이승훈 기자
그러나 LG텔레콤과 KT는 강제할당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LG텔레콤 관계자는 “올 1월 순증 가입자가 8만5000여명으로 KTF의 4분의 1수준이었다. 직원들과 계열사에 강제할당을 주었다면 이 정도 실적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일부 계열사와 직원들에게 영업관련 협조를 요청한 것일뿐이다. 따라서 강제로 할당량을 부과하지 않았고 협조하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주는 일도 없다”고 해명했다.

KT 관계자도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강제할당을 지시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언급하지도 않았다”며 “현재는 합법적으로 지급되던 4만원 한도 내의 영업 촉진 장려금도 폐지했고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비영업직 사원의 가입자 모집도 금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제할당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업체들의 해명에도 현재 공정거래위원회(www.ftc.go.kr) 게시판에는 사원판매를 강요받았다는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LG텔레콤에 근무한다는 아이디 ‘하이바’는 사원판매와 관련 "30명씩 데리고 오라고 한다"며 "이 직장에 가족의 생계가 걸린 사람이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고 토로했다. LG텔레콤의 협력업체에 다닌다는 아이디 ‘영업사원’도 “단지 내가 다니는 회사가 LG텔레콤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핸드폰 2개를 들고 다닌 것도 억울한데 이제 내가 팔기까지 해야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공정위 "사원판매 강요는 위법"... 조사 착수하기로

이처럼 인터넷 신고를 통해 이동통신사들의 사원판매 행위가 알려지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신고가 접수될 경우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동통신사들이 직원들과 계열사에까지 가입자를 끌어오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것은 명백한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조사계획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신고가 들어온다면 KTF와 LG텔레콤, KTF의 무선재판매를 맡고 있는 KT를 모두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23조는 회사 경영인이나 소유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강제로 직원이나 계열사에 제품 구입이나 판매를 강요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인사상 혹은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을 불공정행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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