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많은 치즈를 누가 다 옮겼을까?

[여행기] 암스테르담의 알크마르 전통치즈 시장을 가다

등록 2004.02.11 10:08수정 2004.02.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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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잠결에 엉거주춤 일어나 잠금 고리를 풀고 문을 열었다. 역무원이다. 어젯밤 수거했던 여권과 기차표를 돌려주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벌써 7시? 윗칸의 프랑스 부부, 아래층의 커플 한 쌍 그리고 나까지 너무 '푸∼욱' 잠들어 있었다.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여권을 돌려 받는 서로의 모습에 겸연쩍은 긁적임만 있다. 허둥지둥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간단한 세수를 마칠 즈음 암스테르담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흐른다.

a 치즈시장의 고다치즈

치즈시장의 고다치즈 ⓒ 조미영

지난해 6월 말경, 필자가 도착한 이 날은 암스테르담의 작은 시골 알크마르에서 전통치즈 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중앙의 매표소로 가서 알크마르행 기차표를 샀다. 약 30분 간격으로 떠나는 조그만 기차는 과거 우리의 비둘기호처럼 역마다 정차를 한다.

출근시간인 듯 많은 이들이 타고 내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창 밖으로 편안한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예전의 수인선이 꼭 이런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져버린 꼬마열차와 철로변 풍경이 떠올랐다.

40분쯤 지났을까? 종착역인 알크마르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같이 내렸다. '그들도 분명 치즈 시장으로 가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뒤를 따랐다. 하지만, 너무도 여유로운 그 일행의 발걸음에 맞출 수가 없어 그들을 앞질러 내가 앞장섰다.

"cheese market?" 이라는 한 마디 물음에 모두들 한 방향을 지목한다. 시장 입구의 거리에는 노점상들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휴, 너무 일찍 도착했나?'
여유롭게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이게 웬일인가? 벌써 수많은 인파가 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a 치즈의 품질을 살피고 있는 모습

치즈의 품질을 살피고 있는 모습 ⓒ 조미영

드디어, 10시!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한다. 영어, 불어, 중국어, 한국어까지. 귀가 번쩍 뜨인다. 잠시 후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광장 중앙에 쌓인 치즈를 차례로 살피며 상태를 체크한다. 이 과정을 순조롭게 통과한 치즈들은 들것에 실려 계량소로 운반된다. 그곳에서는 무게를 확인하고, 거래가 확정된 치즈는 다시 수레로 옮겨 각 상점으로 팔려 나간다.

이때 2인 1조로 들것을 나르는 운반원들은 하얀 옷에 밀짚모자를 쓰고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구경꾼들을 사로잡는다. 간간이 전통 복장을 한 소녀들이 팸플릿을 들고 돌아다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역시 엄청난 치즈와 이를 나르는 각 조합의 운반원들이다. 간혹, 이 들것에 치즈대신 구경나온 꼬마를 태우고 달리기라도 하면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a 계량소에서 치즈의 무게를 달아보고 있다.

계량소에서 치즈의 무게를 달아보고 있다. ⓒ 조미영


a 치즈를 들것에 싣고 옮기고 있다.

치즈를 들것에 싣고 옮기고 있다. ⓒ 조미영


a 수레로 옮겨지는 치즈들.

수레로 옮겨지는 치즈들. ⓒ 조미영


a 구경나온 꼬마와 팸플릿을 팔던 소녀가 들것에 태워졌다.

구경나온 꼬마와 팸플릿을 팔던 소녀가 들것에 태워졌다. ⓒ 조미영

아침을 거른지라 슬슬 배가 고프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김없이 수많은 가판에서 먹거리와 기념품 등을 팔고 있었다. 청어샌드위치를 사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나막신, 그림, 테이블 보, 카드까지 수공예품들이 대부분이다. 주먹만한 동그란 수제 치즈들은 순식간에 팔려 나간다. 난 그 옆에서 시식용으로 잘라주는 치즈를 맛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a 나막신을 만들고 있는 아저씨

나막신을 만들고 있는 아저씨 ⓒ 조미영


a 전통 복장을 한 아저씨가 구경꾼들에게 수레의 치즈를 팔고 있다.

전통 복장을 한 아저씨가 구경꾼들에게 수레의 치즈를 팔고 있다. ⓒ 조미영

오후 1시, 치즈 시장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의 노점들도 철수를 하고 거리는 감쪽같이 정리되었다. 치즈가 놓여있던 광장 역시 탁자와 의자가 대신 들어서며 옥외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아쉬운 맘에 주변을 빙 돌아 산책을 했다. 옛 건물들과 좁은 골목길이 남아있는 작고 아담한 이 소도시는 어쩌면 굉장히 평범했다. 하지만, 13세기를 기원으로 16세기에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며 재래치즈 시장의 전통적 거래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던 그 순간의 활력은 어떤 문화적 가치보다 높아 보였다. 이것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이 곳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힘은 아닐까?

a 시장이 끝나고 야외카페로 변한 광장의 모습

시장이 끝나고 야외카페로 변한 광장의 모습 ⓒ 조미영

시장을 나서 돌아오는 길, 우리 높으신 어른들이 이런 행사를 준비한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우선, 주변 경치를 밀어내고 넓게 차도를 낸다. 또 도시 입구부터 잘 보이도록 커다란 아치형 입간판을 세우는 것은 필수다. 물론 여기에 구호를 빠뜨려서도 안 된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이 때, 시장 건물도 현대적으로 새로 짓고, 시장입구에는 대형 주차장 설치를 위해 옛 건물과 골목길에는 과감한 철거 명령을 내릴 것이다.

"더 좋은 환경을 위해 관람석을 배치하는 것은 어떤가? 아, 앞자리는 비워두게, 높으신 분들 앉아야 하니, 사회자가 저게 뭔가? 인기 연예인 좀 없나, 그리고 시작 전에 대표자 인사말 하는 거 잊지 말고….

어, 그런데 그 많던 관광객들은 다 어디로 갔지? 저렇게 주근깨 투성이 애들만 있으니 사람이 오겠나? 얼굴, 몸매 다 갖춘 치즈 아가씨라도 선발해서 홍보 대사로 활동시키고, 경품을 내건 부대 행사를 진행시키게. 그래도 호응이 없으면? 행사를 없애야지. 뭐…."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생각이 현실화 될까 혼자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a 조그만 운하 건너편에서 바라본 시장의 모습

조그만 운하 건너편에서 바라본 시장의 모습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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