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공습에 치킨집 다 쓰러진다

[르포] 서민경제 흔들... 20억 보험 지급 약속 등 살아남기 안간힘

등록 2004.02.11 15:04수정 2004.02.1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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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에 위치한 닭갈비 체인점.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있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닭갈비 체인점.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있다.오마이뉴스 이승훈
광우병에 이어 발생한 국내외의 조류독감이 서민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원래 지난 12월 15일 국내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한 뒤 서서히 진정기미를 보였으나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조류독감이 확산되면서 그 영향이 곧바로 국내 닭 유통 산업과 영세 자영업자에게 미치고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점은 소자본으로 비교적 쉽고 안전하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어서 많은 서민들이 생계형으로 운영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치킨 프랜차이즈점의 수는 약 4만 개, 12만여 명이 종사하고 있고 양계농가와 가공·유통 업체 등 관련 산업 종사자를 모두 더할 경우 조류독감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있는 사람만 총 72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류독감 감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소비자들 사이에 급속하게 퍼지면서 매출이 절반 이상 감소하는 등 관련 업계는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급기야 지난 8일 오후에는 강원도 원주시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던 38살 최아무개씨가 영업부진으로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목을 매 자살까지 했다.

"대책 없으면 몇 주 버티기 힘들다"

생계형 치킨점 점주들은 "대책마련 없이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앞으로 몇 주 버티기 힘들 만큼 피해가 클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지난 9일 저녁 7시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B치킨점. 닭고기를 즐기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전 같았으면 10평 남짓한 가게에 한창 손님들이 북적거릴 시간이었다. 가게 안에는 이미 몇 번은 넘겨본 듯 구겨진 조간신문을 들추며 오지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 부부가 전부였다.

“이 자리에서만 2년째 가게를 운영중인데 요즘처럼 힘든 것은 처음이네요. 지난 두달 새 매출이 반 이상 줄어들어 요즘은 월세를 감당하기도 벅찬 상황입니다.”


기자가 가게에 들어서자 손님으로 알고 반색했던 가게 주인 박아무개(54)씨는 “취재차 들렀다”는 말에 실망한 눈치가 역력했다.

“조류 독감이 발생하기 전에는 배달주문 처리하랴, 가게에 찾아온 손님들을 맞으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랐다. 그때는 아르바이트를 쓸까 고민까지 했었다”는 박씨는 “조류독감으로 두 달 만에 이렇게 될 지는 정말 몰랐다”며 씁쓸한 표정이었다.

텅빈 가게안... "두 달전엔 아르바이트 쓸까 고민했었다"

이웃 동네인 연희동에 위치한 치킨 전문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작년 9월 퇴직금과 은행대출을 보태 치킨 전문점을 시작한 고아무개(46)씨는 요즘 업종전환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고씨는 “다른 프랜차이즈 사업보다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치킨점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조류독감이라는 악재를 만났다”며 “조금 더 지켜보겠지만 지금 상황이 계속되면 다른 업종을 찾아봐야하지 하지 않겠느냐”고 허탈해 했다.

오마이뉴스 이승훈
계속되는 영업부진에 습관적으로 가게 출입문을 쳐다보는 버릇까지 생긴 고씨는 “조류독감으로 연말 특수고 뭐고 다 놓쳤다”며 “언론에 조류독감의 위험성이나 닭 폐사 장면이 선정적으로 보여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한 적도 다반사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씨는 “얼마 전 영업부진으로 빚을 갚지 못하던 30대 통닭집 주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며 “난 사업 자금의 대부분을 퇴직금으로 조달해서 다행이었지 만약 빚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면 매출 부진으로 느끼는 압박감이 그만큼 컸을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도 조류독감의 무풍지대일 수는 없었다. 6일 저녁 찾아간 서울 종로의 대형 닭갈비 체인점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70평 남짓한 매장에서 닭갈비를 먹고 있는 이들은 불과 10여명. 7-8명의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무료한 모습이었다.

이 가게의 점장 서아무개(34)씨는 “작년 12월부터 매출이 50%는 줄었다고 보면 된다”며 “현재 본사차원에서 해물요리와 같은 대체메뉴를 개발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닭갈비 전문점이라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닭갈비집서 해물요리 판다고 매출 오를까... 고심중인 업체들

조류독감 발생 이후 최근 우리나라 닭 소비량은 7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계육협회, 대한양계협회 등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조류독감 발생이전 하루 평균 120만-130만 마리가 도축돼 공급되던 닭고기가 지금은 하루 80만-90만 마리가 도축되고 그나마 이중 절반은 소비되지 않고 냉동창고에 쌓여만 가고 있다.

지난 한달 반동안 발생한 조류독감 관련 업계 피해액은 총 8100억여 원으로 이 가운데 양계농가의 피해액은 1500억여원, 사료업체와 도계업체 및 외식업체 등 관련 업체의 피해액은 4700억여원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이 6개월 이상 계속된다면 소비위축으로 닭고기 유통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등 피해액은 모두 2조원을 훌쩍 뛰어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울 신촌의 한 치킨점이 손님이 없어 한산하다
서울 신촌의 한 치킨점이 손님이 없어 한산하다오마이뉴스 이승훈
냉동창고에 쌓여가는 닭고기... 유통기반 붕괴 우려도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소비자들의 오해로 인한 불신으로 인해 필요이상으로 커졌다는 데 있다.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언론과 정부가 국내 산 닭의 안전성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안을 부채질 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실제로 같은 조류독감이 발생한 일본의 경우 닭고기 소비는 줄어들지 않았다. 정부와 언론의 발빠른 초기대응으로 소비자를 안심시킨 결과 오히려 동남아산 수입물량을 자국산이 대체하면서 가격이 오르기까지했던 것.

천안에서 12년째 양계업을 하고 있는 신원섭씨는 “언론에서 조류독감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은 좋지만 국내산 병든 닭은 생산 공장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왜 알리지 않느냐”며 “병든 닭은 도축해도 피가 빠지지 않고 털이 뽑히지 않아 유통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게 해줘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서울 광화문의 한 삼계탕 집 주인도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나서서 열에 조리해서 먹으면 아무 문제없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서 불안을 진정시켰어야 했다”며 “텔레비전에서도 닭들이 죽어나가는 끔찍한 장면을 너무 자주 내보내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현재 업체들은 매출회복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국내산 닭은 조류독감으로부터 안전하고 완전히 익혀먹을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소비자들에게 닭을 먹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계육협회, 치킨외식산업협회 등 4개 단체는 10일 국산 닭과 오리의 안정성을 보증하기 위해 국산 닭, 오리고기를 먹고 조류독감에 걸릴 경우 2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20억 보험금 지급약속 등 눈물겨운 노력 중인 업체들

닭고기 판매량이 뚝 떨어진 유통업체들도 자체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약속하는 등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한국음식업중앙회 등 음식업 종사자들은 전국 각 지역 별로 익힌 고기의 안전성을 자체 가두 홍보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려나가기로 했다.

정부도 뒤늦게 닭 오리고기의 소비 촉진을 위해 전방위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농림부는 매주 수요일을 닭오리고기 먹는 날로 지정하고 의사와 운동선수를 동원한 시식회와 TV광고 등 종합적인 대책안을 마련해 시행해 나가기로 했다.

친구들과 함께 종로의 닭갈비 가게를 찾은 최은영씨는 ‘조류독감 때문에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잘 익혀 먹으면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정부 관계자들이나 연예인들 같은 유명인들이 닭고기의 안전성을 알리면 소비가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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