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손에 든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억압 속에서 자라난 인간다움이여!

등록 2004.02.19 04:50수정 2004.02.1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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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 앞서

2월 15일자 조간신문에 독자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 기사 하나가 있었다. 노동자 박일수 씨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며 스스로 분신을 한 것이다.


책 표지
책 표지창작과 비평사
<그 기사를 읽어내려가면서 자연스레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가 연상이 되었다. 중공업이라는 같은 직종에서 근무했고, 두 분 다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기 때문일까?

배달호 열사나 박일수 열사의 유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구는
"우리도 사람이다" 였다. 30년이 넘었었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면서
부르짖은 외침과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세 명 다 노조활동의 보장을 강력히 요구했다는 점도 같은 점이다. 다른 점이라고는 배달호 열사가 사측의 폭압적인 가압류에 괴로워했다는 것 뿐이다.

한편 분배보다는 성장에 중점을 둔다는, 신임 이헌재 부총리의 비정규직을 늘리더라도 실업률을 끌어 내리겠다는 단호함이 썩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경제를 도맡은 수장이 천정부지로 솟은 실업률부터 잡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확대가 곧 실업률 잡기로 둔갑되어서는 안된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1963년 영국에서 역사학은 물론 사회과학 전반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 하나 발표됐다. 에드워드 파머 톰슨이라는 자유기고자이자 운동가가 저술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이 바로 그것이다.


톰슨은 "통상적인 사회과학의 계급개념과 달리 계급을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그 형성과정을 경제적 관계뿐 아니라 정치적·문화적 전통과 삶의 경험, 투쟁, 의식 등 다수 대중의 주체적 측면과 연결시켜 파악함"으로서 노동계급 형성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즉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영국노동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획득하는지를 설명한다.

톰슨은 기존 사회과학에서 분류하는 객관적이고 결정론적인 계급 설명이 아닌 노동자 각 개인들이 자신들의 복잡한 문화와 삶 속에서 체득하는 주관적이고 구성·의식적인 계급형성을 강조하며 역사주의적 계급관을 역설했다.


구해근은 머리말에서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E.P. 톰슨의 연구에서 큰 학문적 영감을 얻었다는 것을 밝힌다. 구해근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공장생활을 체험하고 해석했는가, 어떻게 그들은 노동시간에 존재하는 공통의 이해를 깨닫게 되었는가, 어떻게 그들은 노동자들의 연대의 중요성과 자주적 노조결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권위주의 국가에 대항해서 높은 수준의 정치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는가" 등의 핵심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통해 톰슨의 학문적 성과와 연장선상에서 한국노동계급형성 연구를 행한다.

노동자 계급 형성에 있어서 영국이든 한국이든 교회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영국은 국교회에 반발하여 탄생한 감리교가 그 역할을 했고, 한국은 도시산업선교회가 그 역할을 맡았다.

지식인들은 어디에 있었나?

그럼 왜 노동자들은 교회에 도움을 청하게 됐을까? 다른 곳에서는 도대체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친 전태일이 마음 속으로 외친 말 중에 하나가 "대학생 친구 한 명 만 있으면 좋겠다"였다. 당시 대학 사회에서는 반독재 투쟁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 있었다. 대학 사회뿐 아니라 지식인 사회에서도 노동계급에게 고개를 돌리는 여유는 없었다. 전태일 열사가 11월 13일 분신이 있은 후에야 그 실상에 충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왜 지식인들은 노동자 계급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을까? 왜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산업재해를 밥먹듯 당하는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을까?

물론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제와 감시라는 정권 차원의 스포트라이트 차단이 행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복합적이고 근원적인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구해근도 지적하듯이 우리나라는 뿌리깊은 유교문화가 남아 있었기에 '사농공상'이라는 전통적인 직업의식 분류는 그 당시에도 잔재가 남았으리라.

더구나 조선시대에 관청에 필요 물품을 만들었던 공인들은 노비신분이었기에 노동계급에 대한 사회적인 처우나 관심도는 밑바닥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는 산업화가 겨우 십 몇 년 정도 진행된 터라 노동계급 자체적으로 축적된 물적·문화적 유산이 미미했다. 당사자들이 그럴진대 제3자인 지식인들이나 대학생들이, 하루하루가 전쟁과도 같을 폭압적인 유신독재 하에서 노동계급이라는 불과 십 몇 년 전에는 존재가치도 인식할 수 없었던 세력까지 보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바란다면 그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지식인들의 사고 자체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매년 두 자리 숫자 이상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70년대 산업화의 영향이 전국에 같은 수준으로 파급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산업화에 따른 맹렬한 사회현상 변화라지만 정신적인 범위까지는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너무 일렀을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당시까지도 유교적 규범은 이전 만큼은 못했지만 한국인 대다수의 지배적인 정서였다. 더욱이 선비적 자세를 지조로 알았던 당시의 지식인들과 조선시대 노비의 역할의 하고 있는 노동자계급 사이에서는 무언가 모를 간극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노동자 계급들이 몰려사는 구로동에서 태어나서 이제껏 구로동을 벗나 본적이 없고, 또 별 수 없이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필자에게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남다른 사회과학 도서였다. 윗 글에 언급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이 영국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데다, 번역서가 주는 딱딱함이 은연 중에 배여있다면, 사회과학 도서로 분류됨에도 무리없이 읽히는 맛이 있다는 게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의 매력이다.

덧붙이는 글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 지음, 신광영 옮김,
창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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