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앙지하상가 분쟁의 해법은?

민간투자법 적용 대상 아닌 '특혜'...관계당국 비슷한 사례서 확인

등록 2004.03.09 04:59수정 2004.03.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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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재

이 빠진 듯 점포가 철거된 자리를 흰 천이 가리고 있다. 거기에는 '대구시민의 재산 중앙지하상가 시민의 품으로'라고 씌어 있다. 군데 군데 벽보가 붙어 있는 이 지하상가 3지구를 지나면 갑자기 터널을 빠져나온 듯 환해진다. 지금은 '대현프리몰'이라 이름 붙여진 중앙지하상가 1·2지구가 번들거린다.

이 곳을 걸을 때마다 김수영의 시 '현대식 교량'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것이 얼마나 죄가 많은 다리인 줄 모르고/식민지의 곤충들이 24시간을/자기의 다리처럼 걸어 다닌다."

상인들이 머리띠 두른 지 벌써 4년째, 시민들은 그 내막을 잘 모른다. '대구시가 뭘 아주 잘못했나 보다' 혹은 '밥그릇 싸움 심하게 하네'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곤충처럼 바삐 이곳을 걸어다닐 뿐, 그저 '남의 일'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0년 대구시는 이 지하상가 재개발을 구 중앙초등학교부지 공원조성사업과 함께 묶어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이하 민투법)을 적용해 대현실업에 맡겼다. 1·2지구는 2001년 9월 공사가 끝나 새 입주자들에게 임대하고 '대현프리몰'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지만 3지구 상인들은 이 사업 자체가 불법이라며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민투법은 도로 항만 공항 댐 등 국민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는 공공시설, 즉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공공자본 대신 민간자본으로 건설한 뒤, 이용료 등 그 시설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투자자본을 회수하도록 보장해주는 법이다. 대구에서는 유료도로인 범안로, 국우터널과 같은 유료도로를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시는 예산 부담없이 사회간접자본시설을 확충하게 되고 민간은 손해볼 걱정 없이 수익을 남긴다. 민간자본의 입장에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분명 특혜다.


그러나 이런 예외가 허용되는 이유는 민투사업은 시민들에게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민투사업은 '불법특혜사업'에 불과한 것이다.

a 이미 공사가 끝난 중앙지하상가 1. 2지구 '대현프리몰'

이미 공사가 끝난 중앙지하상가 1. 2지구 '대현프리몰' ⓒ 김광재

중앙지하상가 재개발 사업을 보자. 시민들에게 남는 게 없다. 즉, 민투법의 취지를 악용한 사례다. 지하도가 번드르르해지는 것이 민간자본을 끌어들일 만큼 시민들에게 큰 이익인가? 시 수입은 없고 입주상인들의 임대료로 사기업의 배를 불리는 꼴이다.


중앙지하상가 재개발이 왜 민투법 대상이 되지 않는지는 2003년 1월 부산시의 민투사업 제안에 대한 민간투자지원센터의 검토의견서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민투지원센터는 민투법에 근거해 국토연구원 산하에 설립된 정부기관으로 이 분야에 관한 한 가장 전문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부산시는 범일동에 주차장과 상가를 포함한 지하도 건설 계획을 세우고 민투센터에 의견을 물었다.(500억이 넘는 공사여서 의무사항이다) 민투센터는 도로법상의 도로부속물(지하상가를 포함한 지하보도)단독으로는 민자 대상사업이 될 수 없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대구시는 중앙지하상가가 도로법상 도로 부속물이어서 대상이 된다고 주장을 계속해 왔다.

민투센터는 친절하게도 "(부산시가)지하보도를 본 사업으로 하고 지하상가와 주차장을 부대사업으로 한다 하더라도 민투법하에서는 이와 같은 구도의 사업을 추진할 수 없음"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는 "민투법의 취지는 본 사업의 사용료로 투자비를 회수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본 사업의 수익이 없거나 부대사업의 수익보다 현저히 적을 경우 이권 취득을 위해 악용될 소지가 있어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면 지하도를 새로 뚫어 시민들의 통행에 도움을 준다고 해도 지하상가개발은 민투사업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하물며 대구 중앙지하상가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지하보도가 개설된 상태에서 내부시설만 새로 하는 사업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투센터의 표현대로 '이권 취득을 위해 악용'된 대표적 사례다. 전국 어디에도 이런 사례는 드물다.

옛 중앙초등학교 터 공원조성사업이 붙어 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롤러코스터가 돌아가는 공원이 아닌 소규모의 도심공원이 사용료로 건설비 회수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것 자체로 민투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 대상이 안 되는 사업 두 개를 묶는다고 해서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집주인이 도배 비용을 아낀답시고 도배업자에게 임대료 받을 권리를 고스란히 넘겨주고는 돈 한푼 안들이고 도배했다고 자랑하는 꼴이다. 도배업자가 마당에 정원수 한 그루 심어줬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그는 그 비용까지 포함해서 임대수입으로 보상받는다. 도배업자가 투자비를 다 회수한 뒤 집을 돌려줄 때는 새로 도배해야 하는 상태가 된다.

a 중앙지하상가 3지구

중앙지하상가 3지구 ⓒ 김광재

그런데 좀더 깊이 생각해보니 집주인이 대구시가 아니다. 대구시는 집사에 불과하고 집주인은 따로 있다. 대구시민들이다. 아직 버티고 있는 중앙지하상가 3지구 상인들도 주인이다. 비록 270만 분의 수십이지만 그들도 지분을 가진 주인이다. 대구시는 그들에게 그들의 돈으로 도배하고 계속 살 의향이 있는지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 방법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유통산업발전법)까지 마련돼 있는데도 말이다.

대구시는 지주를 배신한 마름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지분이 워낙 잘게 나눠져 있으니 다들 '남의 일'인 탓이다. 그래서 이 '브레이크 없는 지방자치'는 마름들의, 토호들의 거나한 잔치판이 된다. 시의회가 이 사업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이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일부 상인들'과 '일부 시민단체'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된다. 언론은 이해관계의 대립이라는 시각으로 무의미한 중립을 견지한다. 통제장치 없는 지방자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연구하는 사람에겐 좋은 사례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정부에게 기대를? 천만의 말씀이다. 민투센터의 태도를 보자. 부산시에 보낸 회신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다. 대구 경우는 어떠냐고 묻는다면 "그만큼 얘기해도 못 알아듣느냐"는 핀잔이 되돌아올 것 같다.

그러나 대구경실련이 보낸 질문에 대해서는 모호한 답변을 했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이 됐으니 물리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인지, 이미 벌어진 일에 끼어들기 싫어서인지도 모른다.

감사원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공사비가 얼마나 드는지, 몇 년간 얼마를 회수해가야 할지, 심지어 그걸 어제 정할지조차 확정하지 않은 채, 협약을 맺고 공사시킨 점에 대해서만 지난해 말 '시정적 주의'를 내렸다. 그것도 감사청구한 지 19개월이 지나서였다. 더 중요한 점, 이 사업이 불법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고, 사후 질의에서는 타 부처 소관 운운하며 발을 뺐다.

지방자치제로 중앙정부의 통제가 쉽지 않음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현행법상 상인들이 법원에 이 사업이 불법인지 여부를 가려달라고 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주인들인 시민들이 나서는 길밖엔 없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동안 대현실업측은 3지구에 단전 단수를 했다가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대구시 시설관리공단이 상인들을 상대로 제기한 명도소송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지난 달부터는 상인측의 단식투쟁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파국을 막아야겠다는 뜻에서 대구의 시민단체들이 중재안을 내놓고 시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시가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은 희망적이다. 그렇지만 시가 '상인들이 떼를 쓰고 있다'는 시각을 버리지 않는 한, 원만한 타협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상인들도 시와의 계약상 임대기간이 끝났다는 점, 그들의 기득권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 또 이미 전체 상가의 절반 이상 리모델링이 끝났다는 현실에서는 명분이 약해진다.

그러나 대구시는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대구시의 '기발한' 불법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상인들의 저항은 시민의 자격, 주인의 자격으로 행해진 부분도 상당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문제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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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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