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폭풍도 비껴간 휴대폰 요금 논쟁

[取중眞담] 정통부 바람막이속 비싼 요금받는 업체들

등록 2004.03.17 16:15수정 2004.03.1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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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로에 위치한 정보통신부
서울 세종로에 위치한 정보통신부오마이뉴스 이승훈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요즘 경제부처 내에서는 이동전화 요금 인하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 11일 김광림 재정경제부 차관 주재로 열린 물가대책 차관회의에서는 물가안정을 위해 휴대전화 요금을 내려야한다는 재경부와 시장의 상황을 지켜보자는 이동통신 주무부처 정통부의 입장이 팽팽해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부의 논리는 번호이동성제 실시 이후 이통사별로 요금할인 경쟁이 본격화됐고, 지난해 10월 휴대폰 발신번호표시서비스(CID) 요금도 1000원 인하돼 정부가 시장개입을 하지 않아도 이미 요금인하 효과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또 오는 7월 SK텔레콤의 번호이동성 고객 유치가 가능해지면 업체간 경쟁이 더 치열해져 출시될 새 요금제를 중심으로 추가 할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SK텔레콤의 요금 인가권을 가지고 있는 정통부는 SK텔레콤이 수익을 많이 냈지만 요금을 내리기 보다 이를 기술개발과 설비확충에 투자하게 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이동통신사로 키워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통부 "글로벌 경쟁력 위해 요금인하 보다는 설비투자하게 해야"

SK텔레콤 본사
SK텔레콤 본사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재경부는 이동전화요금은 물가에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물가안정을 위해 현재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이통사들의 요금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통요금의 물가 항목별 가중치는 23.7%로 쌀(24.3%)과 비교해 볼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항목이다.

11일 차관회의는 결국 정통부의 반발로 요금인하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이동전화요금의 경쟁추이를 살펴 인하를 검토한다'는 모호한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이동통신 사업자들도 요금인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사업자들은 사업자들대로 이미 새로운 요금제를 통해 할인 혜택이 가입자들에게 돌아가고 있고 대규모 설비투자를 해야한다고 버티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업체들의 설비투자 규모를 살펴보면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국내 최대 사업자인 SK텔레콤은 2002년 하반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요금을 인하해야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자 당시 대규모 설비투자계획을 밝혔지만, 실제 2003년 투자액은 2002년 설비투자액 1조9640억원보다도 오히려 4.9%가 감소한 1조6960억원을 집행하는데 그쳤다.


SK텔레콤은 작년 한해 전년 대비 29%증가한 1조9430억원의 순익을 냈지만 올해 설비투자 계획은 지난해와 비슷한 1조7000억원으로 정했다. 반면 마케팅비는 1조8400억원으로 작년보다 2600억원이나 늘려 잡았다. 미래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설비투자보다 마케팅 비용의 규모가 더 큰 상황이다.

KTF와 LG텔레콤도 상황은 비슷하다. KTF는 설비 투자 규모를 작년 9500억원 수준에서 동결한 반면 마케팅 비용은 6700억원에서 8400억원으로 늘렸다. LG텔레콤도 작년 4492억원이었던 설비 투자를 3600억원으로 줄였지만 마케팅 비용은 2874억원에서 45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 단체들은 사업자들이 가입자들로부터 요금인하 압력이 거세질 때 여론무마용으로 대규모 설비투자를 핑계를 내놓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말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요구로 정통부가 SK텔레콤의 요금을 인하하겠다고 했을 때, 사업자들은 '차세대 IMT-2000 서비스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요금을 인하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결국 정통부가 사업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동전화 요금인하 폭을 줄여주었지만 작년 IMT-2000에 대한 투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업자들의 올해 설비투자 모두 감소

KTF 본사
KTF 본사KTF
우리나라 통신시장은 외형상 경쟁 체제이지만 요금이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고 대부분 정부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정부가 정책상 IT산업 육성에 필요한 재원을 통신서비스 사업을 통해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에 따라 주무부처인 정통부는 소비자의 입장보다 사업자들 쪽에 서서 요금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동전화 요금은 SK텔레콤의 원가와 경영상 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후발 업자인 KTF와 LG텔레콤의 이익을 보장하는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다.

따라서 사업자들이 현재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은 정부의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정부는 소비자들의 반발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이통사를 키운다는 논리로 시장 원리에 반하는 최저가격제를 통해 업체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비자들의 추가 부담으로 사업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소비자들은 IT산업 육성이라는 명분 하에 '울며 겨자먹기'로 일본·미국·프랑스 보다 더 비싼 요금을 감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업체들이 이익을 많이 냈다고 해서 이를 소모적인 마케팅 비용이나 임직원들에 대한 성과급 등에 써버리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충분하다.

만약 사업자들이 설비투자를 소홀히 한다면 더 이상 소비자들이 비싼 요금을 물어야할 명분은 사라진다.

또 하나, 업체들이 새로운 요금제로 인한 요금 할인효과를 언급하는 것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업체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약정할인제나 무한정액요금제 등 새로운 요금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입자는 월 10만원 이상 사용하는 이들로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월 2~3만원대 요금을 내는 가입자들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업체들은 극소수의 고액 사용 가입자들을 위한 할인요금으로 전체 가입자들의 요금인하 요구를 무마하려 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의해 선진국보다 비싼 요금 감수하는 소비자들

작년 10월 업체들은 이동통신 가입자의 반 이상이 사용하는 발신번호표시 요금인하로 2천억원의 매출 감소했다며 더 이상의 요금인하는 불가능하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러던 업체들이 매출액 감소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되는 약정할인과 무한 정액제 같은 요금제는 극소수의 고객을 위한 것임에도 출혈경쟁을 하는 것은 이중적인 태도다.

이동통신사들은 3300만 이동전화 가입자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본요금과 통화료 인하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약정할인이나 무제한 정액제와 같은 요금할인제가 아닌 기본료와 통화요금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정통부도 시장의 가격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상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설비투자에 나서도록 하고, 이동통신 업체들의 실효성 없는 요금할인 대결을 감독하고 규제할 필요가 있다. 사업자들이 정부 정책대로 설비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가입자들로부터 비싼 요금을 받도록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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