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청춘 해고투쟁에 다 지났지만..."

굴뚝농성, 이재현·조성옥씨..."원직복직은 동료에 대한 도리"

등록 2004.03.17 23:31수정 2004.03.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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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6일 밤 11시 군산 기아특수강 굴뚝에서 132일간의 농성을 벌여 온 해고자들이 농성을 풀고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진은 넉달이 넘어 처음 땅을 밟아 본 이재현씨의 초췌한 모습.

16일 밤 11시 군산 기아특수강 굴뚝에서 132일간의 농성을 벌여 온 해고자들이 농성을 풀고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진은 넉달이 넘어 처음 땅을 밟아 본 이재현씨의 초췌한 모습. ⓒ 참소리 제공


"자본가들은 부당한 해고도 법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해 왔다. 해고투쟁을 벌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치면 언젠가 손 털고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회사측의 잘못을 인정받아야 했다. 그것이 현장 동료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50m 높이의 굴뚝에 올라 농성을 벌여온 군산 기아특수강 해고자들의 농성사태가 16일 전격 타결됐다. 굴뚝 농성을 시작한 지 132일, 단식 23일째만의 일이다.

해고자 이재현(44)·조성옥(42)씨가 굴뚝농성을 결행한 것은 지난해 11월 6일 새벽. 조합활동과 관련한 이유로 91년과 94년 각각 해고 된 이들 해고자들은, 10여년이 넘는 지금까지 '원직복직' 요구 시위를 벌여왔다. 올해로 14년·11년째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이미 해고에 대한 법적인 분쟁은 마무리된 상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멀어져 간 사건이었다. IMF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이 회사는 법정관리를 거쳐, 급기야 지난해 11월 '세아'라는 새로운 경영진에게 넘어간 상태다. 돌아갈 집 마저 넘어 간 것이다.

a 해고자들이 농성을 벌여 온 50m 높이의 굴뚝 모습. 해고자들은 이 굴뚝에서 폭설과 한파를 견뎌왔다.

해고자들이 농성을 벌여 온 50m 높이의 굴뚝 모습. 해고자들은 이 굴뚝에서 폭설과 한파를 견뎌왔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유례없는 폭설과 한파가 지속됐던 지난 겨울. 군산 앞 바다에 몰아치는 강풍은 50m 높이의 이 굴뚝을 여지없이 강타하고 있었다. 설을 전후한 지난 1월에는 무려 10일간 폭설과 한파가 몰아쳤다. 굴뚝마저 바람에 흔들린다는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이들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사회단체와 막노동판을 전전해 오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원직 복직'의 꿈. 기나긴 해고투쟁과 함께 이들의 30대 청춘도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지금, 이들에게는 무엇이 남겨 있을까.

16일 전격 타결된 합의안의 골자는 조성옥씨의 경우, ▲2007년 7월 1일 채용 ▲채용과 동시에 18개월간 휴직, 휴직종료 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휴직 해지 ▲2004년 3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월 170만원 생계비 지급 ▲민형사상의 고소고발 취소이다.
이재현씨는 별도 논의키로 했다.


'기아특수강 굴뚝농성 비상대책위원회'의 김홍중 집행위원장은 "조금만 더 버티면 진전된 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생명에 대한 부담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다"며 "농성자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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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농성자들의 건강상태는 최악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부터 이어져 온 단식은 16일로 단식 23일째. 조씨는 감기까지 겹쳐 더 힘겨운 상황이었다. 조씨의 호흡이 고르지 않다는 것을 감지한 비대위로서는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문정현 신부의 결단이 컸다.

회사측도 사정은 마찬가지. 청와대 보고까지 이뤄진 사안인데다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피해야 했다. 단식상황까지 겹치면서 여론의 관심이 쏠린 것도 부담이었다. 급기야 16일 이승휘 사장이 먼저 협상을 요청했다. 결국 조씨의 복직을 받아들이면서도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선으로 마무리 한 것이다.

a 장기 농성을 벌여 온 해고자들은 곧바로 군산의료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았다. 침대에 있는 조성옥씨는 단식 23일째를 맞아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호소했다. 오른쪽은 독일인 아내 코넬리아씨.

장기 농성을 벌여 온 해고자들은 곧바로 군산의료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았다. 침대에 있는 조성옥씨는 단식 23일째를 맞아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호소했다. 오른쪽은 독일인 아내 코넬리아씨. ⓒ 오마이뉴스 이국언

16일 협상을 주도한 임경석 민주노동당 전북도지부장은 '절반의 승리'로 표현했다.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지만 조씨의 복직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 목숨을 건 투쟁 끝에 지난날 산업현장에서 벌어진 노동운동에 대해 '명예회복'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매달린 끝에 복직을 이뤄낸 것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본가들은 돈과 권력에 기대서 해고자들이 스스로 지쳐서 떨어지길 바랍니다. 해고투쟁을 하는 동안 30대 청춘이 다 지났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노동자로서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협상 막판 회사측의 사무직 제의를 거부하고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조씨의 꿈. 2009년 다시 그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다음은 이재현씨와의 일문일답.

- 올해로 14년째이다. 원직복직이 그렇게 중요했나.
"가진 자들의 폭력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기아특수강에서 3년을 근무해 왔는데 그것이 조합원들한테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장 노동자와 부대끼며 살아온 나름의 기준이었다."

- 결국 본인의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는데.
"내가 복직 안된 것은 괜찮다. 우리의 힘이 이것 밖에 안 됐다. 우리들만의 주장을 고집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었다. 우리들 건강을 우려해 합의한 걸로 알고 있다. 그분들의 충심을 알기에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글쎄, 웃음만 나온다"
조성옥씨 독일인 부인 코넬리아 인터뷰

조성옥씨의 독일인 부인인 코넬리아(41)씨.

그는 "이제 후련하다"며 긴 숨을 내 쉬었다. 누구보다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을 그녀는 "가슴에 맺힌 것이 있는 한 가정도 행복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원망스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남편 조씨의 복직에 대해 묻자 잠시 말을 머뭇거린다. 그리고 허탈한 웃음 뿐이었다.

"2007년 복직하고 나서 다시 휴직했다가 2009년에나 일한다는 것... 한국을 잘 모르겠다.
거의 오십이 다 되면 남들 다 은퇴할 나이인데, 그 나이에 일하기 위해 기다린다는 것... 글쎄, 웃음만 나온다."
- 10년 넘는 세월이었다. 후회는 안 되나.
"후회는 없다. 회사의 매각이 임박해 무모한 줄 알면서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쨌거나 노동자로서 생활할 것이니까. 새롭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겠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 굴뚝농성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나.
"자본과의 싸움에서 노동자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투쟁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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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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