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정당 뒤만 쫓아가지 말자

[총선미디어연대 평가리포트 ③] 선거보도와 경마저널리즘

등록 2004.03.27 12:39수정 2004.03.2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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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공정한 선거보도 구현을 위해 25일부터 선거일까지 '신문보도 평가리포트'를 연재합니다. '신문보도 평가리포트'는 11명의 교수로 구성된 2004 총선 미디어감시국민연대(총선 미디어연대) 미디어평가단 소속 평가위원이 맡습니다. 세 번째 리포트는 채백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작성했습니다... 편집자 주

선거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언론의 좋은 사냥감이 된다. 경쟁과 투쟁, 갈등과 대립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거는 후보들간의 조마조마한 승부가 연출되기에 언론의 입맛에 맞는 기사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거보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고정적인 패턴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오레건 대학의 레머트 교수는 언론의 선거보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오류들’(same old mistake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만큼 선거보도는 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이뤄지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대등소이하게 반복된다는 것을 집약해서 표현해 주고 있다.

대개의 선거보도는 선거가 있기 한참 전부터 ‘총선을 향해 뛰는 사람들’이라는 형태의 기사로 시작된다. 전국의 주요 지역구를 순례하며 어떤 사람들이 의원직을 향해서 뛰고 있는지를 기사화하고는 각 당마다 공천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이야기들이 지면을 장식한다.

후보 등록이 끝나면 각 당의 선거 공약을 한번씩 다루고는 본격적으로 각 지역구 순례하며 누가 더 유리한지를 가늠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른바 경마저널리즘이다. 선거 막판에 가면 불법, 타락 선거 사례들을 기사화 하면서 점잖게 꾸짖는다.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보도 양태가 변하고 있다

올해의 선거 보도도 이러한 큰 틀을 반복하면서도 몇 가지 점에서 과거와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우선 주요 일간지의 관련보도 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과거 이맘때면 1면과 정치면, 사회면까지 거의 선거 관련 기사로 채워졌지만 이번에는 다른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메가톤급 뉴스라 할 수 있는 대통령 탄핵부터 시작하여 한나라당 전당대회, 팔레스타인 문제 등 큰 사건들이 불거지면서 총선과 직접 관련된 보도의 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선거보도의 양이 줄어들면 분위기를 과열시키지 않고 차분하게 이끌어 가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유권자들의 합리적 판단에 도움이 되는 필요 정보들은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겨레>가 참여연대와 공동 기획으로 선거법에 규정된 불법사례를 해설해주는 ‘이것이 불법이다’ 코너나 외부 전문가들이 돌아가면서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의를 정리하는 ‘한국 민주주의 지금은’ 같은 기획이 해당한다고 하겠다.

또 하나 새로운 경향이라면 과거와 달라진 선거 풍토에 관한 보도가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선거법이 개정된 데에 따른 것이다. 잘 알려진대로 이번에 개정된 선거법은 불법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금품이나 향응에 대해서는 제공한 후보측 뿐만 아니라 받은 사람들에게도 50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런 객관적인 조건의 변화가 선거 풍토를 바꾸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기사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 3월 24일자의 ‘운동원 구하기 별따기, 출마자 나홀로 선거’ 제하 기사나 3월 23일자 ‘4.15 현장 관찰’, <조선일보> 3월 26일자의 ‘선관위 단속현장 동행취재’ 기사 등이 그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사들은 혼탁한 선거 풍토를 깨끗한 선거 풍토로 바꾸는데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거대정당 중심으로 보도하는 틀을 벗자

반면 이러한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문제들도 보인다. 최근의 언론보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으로는 여전히 기존의 거대 정당 중심보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조선일보> 3월 25일자에 실린 ‘한나라당의 여의도 천막당사 vs 열린우리당의 영등포 공판장 당사’라는 제목의 기사와 26일자 4면 ‘“따라잡자 정풍” “차단하자 박풍”’ 제하의 기사가 해당된다.

이 기사들은 두 당의 현황과 입장을 대비시키면서 기사 양이나 사진, 도면의 사용 등 여러 면에서 균형을 갖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양당 중심으로 가는 보도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언론인들 입장에서는 취재의 효율성과 독자들의 관심도를 고려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기존의 거대 정당 중심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 정당 위주의 보도가 결과적으로 신흥 정치세력의 형성과 발전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만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권의 물갈이를 통한 정치개혁이 최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우리 사회 최대 화두 중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문들도 이러한 과제에 기여하는 방향의 보도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기존 정치인들 뒤만 쫓아다니는 취재에서 벗어나 문제와 쟁점을 찾아서 발굴해 내는 취재가 필요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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