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맞선 '위피', 절반의 성공

한·미간 IT 통상마찰 타결... 국내외 시장 평정할까

등록 2004.04.23 19:52수정 2004.04.2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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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단말기에는 무선 인터넷 플래폼 '위피'가 탑재된다. 사진은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앞 광장 거리응원에서 "IT강국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사회자의 제안으로 '휴대폰 불빛 응원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
앞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단말기에는 무선 인터넷 플래폼 '위피'가 탑재된다. 사진은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앞 광장 거리응원에서 "IT강국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사회자의 제안으로 '휴대폰 불빛 응원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오마이뉴스 권우성
휴대전화용 무선인터넷 플랫폼을 둘러싼 한미간 통상마찰이 양국이 한발씩 양보하는 선에서 일단락 됐다.

정보통신부는 지난 21-22일 이틀간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통신전문가 회의에서 국내에서 출시되는 신규 단말기에 국내 업체들이 개발한 위피(WIPI: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를 의무적으로 탑재하는 방안에 대해 미 무역대표부(USTR)의 동의를 이끌어 냈다.

대신 한국 정부는 위피를 구성하고 있는 규격(SPEC)과 엔진을 모두 의무화하려는 안에서 한발 물러서 규격(SPEC)만 의무화하기로 해 미국은 퀄컴사의 브루(BREW)의 엔진을 위피의 규격에 맞춰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SK텔레콤과 LG텔레콤이 보급하는 휴대전화에 기본적으로 위피가 탑재되며 KTF가 보급하는 휴대전화에 탑재될 퀄컴사의 브루(BREW)도 위피 규격에 맞춰 탑재된다.

모든 단말기 '위피' 규격 지원해야

무선인터넷 플랫폼이란 휴대전화에 내장돼 게임, 동영상 등 각종 컨텐츠를 구동하는 기본 프로그램으로 PC의 윈도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위피는 국내 이동전화 3사와 컨텐츠개발업체(CP)들이 모여 공동으로 개발한 무선 인터넷 플랫폼이다.

모든 단말기에 위피 탑재가 의무화됨에 따라 컨텐츠개발업체들은 위피용 컨텐츠 개발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위피를 중심으로 컨텐츠를 육성하기로 했고 브루를 채택하고 있는 KTF도 위피에 주력할 계획인 것을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내 시장의 무선인터넷 플랫폼은 위피로 단일 표준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동안 미국은 우리 정부가 위피를 국내 표준으로 정할 움직임을 보이자 "위피 의무화는 브루에 대한 시장장벽"이라며 브루도 국내 무선인터넷 플랫폼으로 채택하도록 전방위적인 통상압력을 가해왔다. 미국은 한미 통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중점 이슈로 삼아왔고, 지난달 4일에는 콜린 파월 국무 장관이 브루와 위피가 호환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의 통상압력 "위피 의무화는 브루에 대한 시장장벽"

정통부는 당초 기술규격의 단일화로 이통사와 콘텐츠 개발자의 중복투자를 막겠다며 위피를 단일 플랫폼으로 인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통상마찰이 가열되던 당시 정통부가 위피와 브루를 함께 탑재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정할 것으로 알려지자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된 바 있다.

3000만 명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국내 시장의 잠재력을 볼 때 위피를 국내표준으로 정하면 세계시장에서 위피가 가지는 위상이 크게 제고될 수 있다. 브루를 통해 무선인터넷 시장의 제패를 노리는 퀄컴으로서는 한국이 위피를 단일표준으로 정할 경우 큰 타격이 불가피했다. 퀄컴이 자국 무역대표부를 통해 공공연한 통상압력을 가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결국 정통부는 현실적인 시장 상황을 고려해 정책을 수정했다. 일면 통상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위피를 모든 단말기에 의무적으로 탑재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던 미국 측의 양보를 이끌어 낸 것은 적지 않은 성과로 평가된다.

정통부는 현재 시장에서 브루뿐 아니라 국내 신지소프트가 개발한 GVM 등이 무선인터넷 플랫폼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브루도 인정함으로써 미국과 통상마찰을 우선 피했다. 대신 모든 단말기에 위피를 기본적으로 탑재하는 것에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냄으로써 시간을 두고 국내 시장을 위피로 통일하겠다는 우회 전략을 편 것으로 분석된다.

우회전략이냐 좌절이냐

무선인터넷 플랫폼은 게임, 동영상 등 다양한 컨텐츠를 구동시키는 소프트웨어에 불과해 컨텐츠가 공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 시장에서 시간이 갈수록 브루의 설자리는 좁아져 퇴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최준영 정통부 정보통신정책국장은 "중기적으로 위피와 다른 엔진들이 병존하겠지만 브루도 위피 규격을 탑재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위피가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위피의 활성화 여부는 업체들이 위피 콘텐츠 보급에 얼마나 나서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휴대폰 단말기에 탑재되는 무선인터넷 플랫폼을 위피만 사용토록 하는 '위피 온리(only)' 정책을 추진해온 정통부가 이번 합의로 '순수 토종 플랫폼 구축'이라는 정책 목표를 잃어버렸다는 지적도 불거지고 있다. 이번 합의는 모든 플랫폼에 대해 엔진의 규격을 위피에 맞추면 브루를 포함한 다른 무선 인터넷플랫폼도 인정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피와 브루 치열한 성능경쟁 벌일 듯

당분간 시장에서는 당분간 위피와 브루의 치열한 성능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위피가 유리한 위치에 선 것은 분명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브루를 위피와 함께 통용할 수 있는 길을 연 퀄컴도 사활을 건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퀄컴은 앞으로 브루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국내 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국내 단말기에 대한 위피 탑재 의무화를 극구 반대하던 퀄컴이 시장 상황을 뻔히 알면서 양보를 한 것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휴대폰 핵심부품인 CDMA칩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막대한 로열티를 거둬가고 있는 퀄컴에 냉가슴을 앓고 있는 국내 이동전화 업계가 플랫폼 시장에서는 퀄컴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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