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1992년 여름, 배우 김혜자는 비영리 기독교 자선단체인 월드비전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막 드라마를 끝내고 딸 아이와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수화기 저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프리카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망설였지만, 막연하게 나마 <정글북>과 영화 <장원>을 통해 본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 여행에 동행했다. 그리고 그 뒤로 10년 동안 그녀는 난민촌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혹독했던 그 10년의 기록이다.
곳곳의 난민촌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꼈던 감정들을 그녀는 고스란히 적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우리에게 그녀의 눈과 귀를 빌려준다. 그녀는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듯 난민촌을 유심히 관찰했고, 하나라도 더 들려주기 위해 귀를 세웠다고 한다.
그녀의 촘촘한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난민촌의 한가운데에 서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가 소개해 주는 불쌍한 아이들을 소개 받게 되고, 그 아이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은 사회적 배경을 알게 되며,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신의 무심함에 안타까워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필자는 몇 번이나 원인 모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숨을 멈추고 호흡을 조절해야만 했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고통 이상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 풀을 뜯어 먹어 입가가 파랗게 물든 아이들, 차로 45분을 달려야 되는 거리를 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걸어온다는 아이들, 마약에 취해 살인을 저지른 소년병들, 항생제 한알이 없어서 눈이 머는 아이들, 종교와 인종을 내세우며 벌이는 살육의 이야기를 들을 때, 필자는 마음이 아팠다.
과연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