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군 성역'의 재판관이 없다면?

[분석] 비리혐의 구속 신일순 대장 재판

등록 2004.05.10 19:45수정 2004.06.0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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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11일 오전 11시]

a 지난해 11월 17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신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3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합동기자회견에 배석한 한미연합사 신일순 대장.

지난해 11월 17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신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3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합동기자회견에 배석한 한미연합사 신일순 대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군 성역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속된 성역'을 재판할 판관이 없다면?

현역 대장으로서는 창군 이래 처음으로 구속된 육군 대장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의 재판을 앞두고 군사법정에 누가 심판관으로 설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군사법원법상 신 대장과 동급 이상의 상급자가 심판관으로 재판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에 군사재판 법정에서 그를 사법처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이같은 군 사법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군사법원은 신 대장에 대해 횡령혐의로 8일 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신 대장은 영장이 발부된 뒤 곧바로 국방부 헌병대에 수감됐다. 신 대장은 지난 99년 11월부터 2년 동안 군단장으로 근무하면서 부대공금, 장병격려비 등에서 약 1억2천여만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된 뒤에도 공금 35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 성역 허물어지기 시작했는데...

신 대장의 구속은 군 고위간부들의 비리에 대해 전역조치, 또는 예편 후 민간검찰에게 사법처리를 넘겨 사실상 면죄부를 줘온 관례와는 다르게 군검찰이 최고위 장성에 대해 형사처벌을 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성역으로 남아있던 군 사회의 금기를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군사법정에서 현역 대장을 사법처리하기 위해선 넘어야할 산이 많다. 법조인 자격이 없는 장교를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심판관 제도 때문이다.

우선 현행 군사법원법 제28조(재판관의 계급) ①항은 "재판관은 피고인보다 동급 이상의 자이어야 한다. 다만, 군판사인 재판관은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통군사법원에서는 군판사 2인과 심판관 1인이 재판관으로 임명된다. 여기서 군판사는 군법무관중에서 임명된다. 나머지 1명의 심판관은 신 대장과 동급 이상의 '상서열자'가 임명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법상 규정된 신 대장 재판의 심판관으로 가능한 사람은 군 조직을 통틀어 3명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현직 대장은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1·2·3군 사령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8명.

여기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피고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제되고, 2·3군 사령관 역시 계급은 대장으로 신일순 부사령관과 같지만, 소위 때부터 1차 진급만 했던 신 대장의 '상서열자'는 아니다. 해군·공군 참모총장의 경우도 임명할 수는 있는데, 통상적으로 심판관 제도의 취지상 타군 장교는 제외한다.

남은 사람은 신 대장보다 한 기수 선배인 육사 25기 김종환 합참의장과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그리고 대장진급 시기는 같지만 갑종 출신인 정수성 1군 사령관 등 3명이다. 물론 이들은 군사재판의 심판관이 된다면 재판장이 된다.

신 대장 심판관 자격은 군 통틀어 3명뿐

군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합참의장이 심판관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대장이 항소할 경우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고등군사법원에서는 군판사 3인을 재판관으로 하고, 다만 관할관이 지정한 사건의 경우 군판사 3인과 심판관 2인을 재판관으로 한다. 관할관 지정은 선택사항이기 때문에 군판사 3인을 재판관으로 해 항소심을 진행할 수 있지만, 최근 추세는 군 장성의 경우 대부분 5인 재판관이 임명되고 있다.

따라서 항소심에서 2명의 심판관이 필요하다. 고등군사법원에서의 심판관은 관행상 1심에서의 심판관 보다 '상서열자'를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1심에서 합참의장이 심판관으로 임명된다면 2심에서는 심판관으로 임명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결국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5인 재판의 항소심을 염두에 둔다면 1심에서는 육사 동기인 1군사령관이 심판관으로 참가해야하고, 2심에서 나머지 2명의 대장이 심판관으로 임명돼야 한다. 심판관 제도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현행 제도 아래서라면 합참의장이 구속될 경우 군사재판은 불가능한 셈이다.

이와 관련 군의 한 관계자는 "일반 법정에서는 지방법원 부장판사라고해야 경력 14년차인데, 그 사람이 배석판사 2명과 함께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재판을 하고 있다"면서 심판관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군사법제도상 심판관 제도는 법 위에 계급이 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법률 지식이 없는 심판관이 평의를 통해 똑같은 한표를 행사하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대통령도 탄핵소추되는 데 군 고위직은 심판자 없다?"

또다른 한 관계자도 "대통령도 탄핵소추되는 상황인데 군대에서는 꼭 상위계급자가 있어야만 법정이 설 수 있다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면서 "군 고위직 재판에서는 항상 이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심판관 제도 때문에 사단급에서 재판을 진행할 때에는 대령이 피의자일 경우 사단장만 장군이기 때문에 재판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심판관 제도만 없애면 이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장은 군인사법 20조3항에 따라 보직해임되면 당연 전역조치토록 하고 있다. 사실상 후임 장군에 대한 인사조치를 단행하면 신 대장의 경우 자동으로 전역조치되고, 재판은 민간법정에서 받게된다. 단 보직해임과 후임인사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고유권한이다.

심판관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한인섭 교수 토론회 발제문 발췌

지난 2002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군사법원에 의한 형사재판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다음은 당시 한인섭(서울대 법대) 교수가 발제를 통해 군의 심판관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주

"심판관 제도는 연혁상 미군사법원상의 배심원 제도를 일부 계수한 흔적이라고 하며, 그 취지는 '군대의 특수한 군사지식과 군 경험을 재판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로서, 심판관 제도를 이용하는 목적은 '군사재판이 지나치게 법률논리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 군의 특수성과 작전의 원활을 고려하여 재판의 합리적 운용을 기하고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취지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으며, 특히 재판에서 일종의 참심제적 요소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심판관의 계급이 군판사의 그것보다 높은 경우가 많으므로, 선임재판관으로서 재판장이 된다.

심판관이 재판장으로 될 경우 '비법률가로서 형사절차를 잘 몰라 절차진행에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통상 재판장은 '사건이 일어난 부대의 장교이므로 선입견을 갖고 들어올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엄정중립적 입장에서 판결하기에 심리적 부담이 적지 않은 점도 지적된다. 그리고 계급사회에서 선임자의 위치는 다른 군판사들에게 하나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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