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을 '징역 10월'로 감형 조치
군 지휘관 사면권, 대통령 뺨친다

[특별기획-군 사법을 고발한다①] 법형평성 해치는 '확인조치권'

등록 2004.05.24 12:18수정 2004.06.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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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군 검찰단이 현역 육군대장 등 군 고위장성들의 비리에 메스를 가하면서 군이 요동치고 있다. 이 때문에 군의 사정기능이 강화되는 게 아니냐는 기대섞인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군의 '사법'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는 '전시(戰時)'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기반한 군 사법제도 때문으로 평시에 '軍 비리'를 은폐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군 사법을 고발한다]를 통해 현행 군 사법체제의 불합리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도 제시할 방침이다... 편집자 주)

a 국방부 청사 내 군사법원 건물.

국방부 청사 내 군사법원 건물. ⓒ 오마이뉴스 김병기

지난 91년 당시 육군 중위였던 이 아무개(현재 38세)씨는 군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그의 죄명은 '살인'. 통상적으로 살인은 최하 5년형이다. 그렇다면 군사법정은 왜 그에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형량을 선고한 것일까.

우선 91년 8월13일 군사법정에서 결정된 그의 판결문에 나타난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소속대 교육장교인바, 군입대전 맥주집에서 알게된 피해자 임아무개(41)와 86년 11월경부터 불륜의 성관계를 하다가 87년 7월 절교를 요구하였으나 그녀의 불응으로 군입대후에도 계속 불륜의 성관계를 지속해오던 중 (중략) 91년 1월 위 셋방에서 그녀와 술을 마시면서 불륜관계 청산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그녀가 일어서면서 피고인의 뺨을 때리자, 이에 격분한 나머지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결심하고, 일어서서 그녀를 붙잡아 앞으로 넘어뜨린 다음 그곳 진열장 위에 있던 직경 약10센티미터, 길이 15센티미터의 수석을 오른손에 집어들고 위 피해자의 후두부를 힘껏 두 번 내리쳐서 피해자에게 두개골함몰골절상을 입혀 그로 인하여 그 시경 사망에 이르게 하여 그녀를 살해한 것이다."

a 살인자를 징역 10월로 감경조치한 판결문.

살인자를 징역 10월로 감경조치한 판결문.

당시 군사법원은 그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3일 뒤인 16일 징역 10개월로 감형된다. 그를 감형한 사람은 재판관이 아니라 당시 이 중위의 해당 부대 지휘관이었던 소장 이아무개씨였다. 불과 3일 사이에 2년2개월이 감형된 것이다. 판결문에는 감형 이유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내연의 여자 살해한 군 장교의 판결문

판결문 중 '징역 3년을 징역 10월으로 감형함'이라고 적시한 '관할관 소장 이 O O'의 도장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열쇠이다. 관할관(지휘관) 확인조치권을 인정하는 현재의 군사법제도의 맹점을 악용한 사례다.

관할관 확인조치권(군사법원법 379조)이란 군사법원이 설치된 부대와 지역의 사령관 또는 책임 지휘관인 관할관(사단장급 이상)이 피의자의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그 형을 감경하는 일종의 '사면권'이다. 즉 군사법정에서 재판관이 어떤 판결을 내렸어도 법에 문외한인 지휘관의 '자의적 판단'이 법의 잣대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재판에서 이같은 예는 부지기수다. 지난해 터져나온 국방회관 비리 사건은 국방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면 다소 황당해진다.

지난해 국방회관 수입금 7000만원을 횡령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로 구속됐던 육군 김아무개 소장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김 소장은 당초 국방부 보통군사법원(1심)에서 징역5년, 추징금 72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국방부장관이 확인조치권을 발동해 징역 2년6월, 추징금 7200만원으로 감경해주었고, 결국 2심에서 집유로 풀려난 것이다.


김 소장이 집유로 풀려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시 확인조치권이다. 그의 형량이 1심에서 선고한 5년형으로 유지됐다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없었다. 현행법상 3년 이하의 형량에 한해서만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방부장관이 당초 1심 법정에서 결정한 것에서 절반에 가까운 형량을 낮추는 바람에 그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육사 중령 이아무개씨도 지난 2001년 7월 운전과실로 피해자 차량과 충돌하여 4명을 사망케한다. 그의 혐의내용은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그는 그해 9월12일 금고 6월을 선고받고, 다음날 지휘관확인에 의해 금고 2월로 감형된다.

육군 경우 지난 2년간 510건 형량 감경 조치

음주운전 사고도 '군의 특수성' 해당하나?
형기 감경 건중 60% 이상이 도로교통법 위반

군사재판에서 관할관 확인조치권을 인정하는 것은 '군의 특수성' 때문이다. 계급의 상하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병력의 배치 등을 고려해야만하는 군 상황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평시에도 적용해야 하는가라는 지적이 많다.

평시 군의 범죄라는 것이 일반 범죄 유형과 별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은 법 적용의 평등성을 현격하게 해치며, 지휘관에 의한 자의적 남용 사례가 많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02년 관할관 확인조치권에 의해 감형된 사례에 대한 국감자료를 훑어보니 대부분 음주운전 등에 의한 도로교통법 위반이었다. 1년동안 감경건수 296건중 무려 181건에 달했다. 관할관 확인조치권에 의해 형량을 감경한 3건중 2건이 교통사고 관련한 사건인 셈이다.

'군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확인조치권의 취지가 무색한 것이다. 이 기간동안 소위 '군의 특수성'을 인정할 수 있는 범죄행위, 즉 군무이탈의 경우는 25건에 불과했다. 이외에는 사기, 폭력, 강간, 상해, 절도 등 일반 범죄 유형과 흡사했다.
지난해 국감자료에 따르면 육군의 경우 지난 2001년에는 303건, 2002년에는 207건이 감경조치를 받았다. 2년동안 총 510건이 확인조치권에 의해 '사면조치'된 셈이다. 이중 451건이 원판결 형량의 1/2이상의 감형 조치를 받았다. 2001년부터 지난해 9월말까지 전군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은 무려 1921건이나 됐다.

이 기간동안 확인조치권에 의한 감형을 계급별로 분류하면 장교의 감형률이 월등히 높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 크다. 즉, 지휘관과 지근거리에 있을수록 확인조치권의 혜택을 더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확인조치권이 '정실'에 기초해 자의적으로 남용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의적 판단이 법의 잣대 위에 서게됨으로써 법의 형평성도 현저히 훼손되고 있다. 가령 위에서 예로 든 91년 살인사건의 경우는 징역 10월로 감경됐다. 하지만 지난해 내연녀의 목을 졸라 사망케한 뒤 야산에 묻어 시체를 유기한 심아무개 원사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뒤 지휘관확인에 따라 7년으로 감형됐다. 또 2001년 5월 물건을 강취할 목적으로 여자의 하숙방에 침입했다가 도망치던 여자를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았던 손아무개 중위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살인죄임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 징역 10월, 7년, 무기징역 등 형기가 들쭉날쭉인 것이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확인조치권의 폐지를 줄기차게 주장해오고 있다.

대통령 사면권과 비견되는 '확인조치권'

전북대 송기춘 교수는 지난 5월11일 국가인권위가 주최한 '군사법제도 운영 및 인권침해 현황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에서 관할관 확인조치권에 대해 대통령의 사면권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 바 있다.

"확인조치권은 사실상 사면권으로서 헌법상 오로지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만 속하는 권한을 관할관이 행사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사면권도 그 목적상 법체계 내의 모순과 법과 법외적 가치와의 모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며 재판 직후 감형은 사법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법관이 국민 또는 국민의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인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여 내린 판결을 지휘관이 지휘권 확립 또는 군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변경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지휘권 아래 재판이 이뤄짐을 반증하는 것이며 민주성을 해치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국방부 법무과장 최재석 대령은 "군사재판은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형량 감경시 그 사유를 서면에 명시해 엄격하게 행사하는 게 국방부의 입장"이라면서 관할관확인조치권의 폐해를 일정부분 인정하면서도 폐지보다는 개선에 무게를 두었다.

하지만 서울대 한인섭 교수는 지난해 참여연대가 주최한 '군사법원에 의한 형사재판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관할관 확인조치권은 실질적인 감형권이 무제한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이는 관할관이 법관 위에 서게하며 지휘관은 사법적 판결을 자의적으로 축소감경할 수 있게 한다. 비유하자면 대통령의 사면권에 준하는 권력을 사단장마다 갖고 있는 셈이다. 임의적인 감형권 자체를 사단장에게 보장한 것도 문제려니와 감형권 행사에 아무런 기준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유죄판결은 사단장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

a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 9월말까지 전군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에 의해 형이 감경된 건수는 1921건이나 됐다. 그중 도로교통법 위반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 9월말까지 전군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에 의해 형이 감경된 건수는 1921건이나 됐다. 그중 도로교통법 위반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법 위에 선 '지휘관 사법' 폐지해야

군의 한 관계자는 "군사재판에만 국한된 관할관 확인조치권도 문제지만, 군사법에서 전방위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관할관 제도가 더 큰 문제"라며 "군검찰이 입건하거나, 구속할 때에도 지휘관의 사인을 받아야 한다, 비법률가인 지휘관이 법률적 판단의 최종 책임자가 되는 잘못된 관행과 제도는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된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군 대장)에 대해 24일 보통군사법원은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하고, 1억769만원을 추징키로 했다. 이날 신 대장의 범죄혐의에 대해 징역 5년형을 구형한 군검찰은 이에 항소할 뜻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항소조차도 관할관의 재가를 받아야하는 현 상황에서 군검찰의 항소의지가 관철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미국도 '확인조치권' 인정... 하지만 철저하게 제한

(다음은 국가인권위가 지난 5월11일 발표한 '2003년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가운데 군사법원의 '관할관 확인조치권'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주)

'관할관'이란 군사법원이 설치되어 있는 사단급 이상 부대의 지휘관을 말한다. 현행 군사법원법상 관할관은 무죄, 면소, 공소기각, 형의 면제, 형의 선고유예 또는 집행유예의 판결을 제외한 판결을 확인해야 하며, 형법 제51조 각호의 사항을 참작하여 그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할만한 사유가 있을 때는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법 제379조). 이를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이라고 하며, 원판결을 확인하거나 형을 감경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이러한 확인, 감경 권한 행사에는 아무런 기준이 없으며 전적으로 개별 지휘관이 판단하고 행사한다.

관할관 확인조치권의 근거로는 1>군지휘관의 지휘권 확립과 군전투력을 보전하고 강화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 2>군지휘관의 오랜 경험이나 군사적 전문지식을 통하여 법률전문가가 간과하기 쉬운 군사적 특수성이나 군사적 필요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되고 있다.

미국 군사법원의 관할관 확인제도

미국의 군 사법제도도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을 인정하고 있다.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도 여단장과 장군에게 형벌을 감경해달라는 청원이 가능하다. 청원의 범위에는 제한이 없고 형의 감경뿐만 아니라 형면제 및 유죄판결의 취소까지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확인조치권은 드물게 사용되는 데 이에 대한 사후 통제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개 사건의 10% 정도에 대하여 확인조치권이 행사된다.

또 재판에 대한 지휘관의 영향력 행사는 미 군사법 통일법전에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 지휘관이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 증명되면 재판 전체가 취소된다. 그 결과 실제로 대부분의 미군 현역 군 법무관들은 군사법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특별히 의심하지 않으며 지휘관의 개입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지 않는다. / 김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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