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가져와라, 아니면 다 죽이겠다!"
의문사위 조사관 '총기 협박' 당했다

[특별기획-군사법을 고발한다 ⑤] 국방부 특조단 '허원근일병 사건' 재은폐 의혹

등록 2004.07.12 09:31수정 2004.08.31 11:08
0
원고료로 응원
(우리 군의 '사법'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는 '전시(戰時)'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기반한 군 사법제도 때문으로 평시에 '軍 비리'를 은폐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군 사법을 고발한다]를 통해 현행 군 사법체제의 불합리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도 제시할 방침이다.

이번 기사는 의문사위가 12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국방부 특조단의 재은폐 의혹 제기와 인아무개 상사의 의문사위 조사관 총기협박사건 폭로를 다룬 것이다... 편집자 주)




a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12일 오전 의문사위원회 회의실에서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12일 오전 의문사위원회 회의실에서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상균

"탕! ---

지난 2월 26일 저녁 7시, 대구 시내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을 든 현역군인 인아무개 상사는 곧바로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 박종덕 조사3과장과 조사관 1명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자료 가져와라. 안 가져오면 다 죽이겠다.'
'너희들, 오늘 다 죽는다!'
'나도 죽겠다.'

인 상사는 인도 한복판에서 의문사위 조사관 두 명의 한쪽 손목에 각각 수갑을 채운 채 10여분간 고성을 질러댔다. 그 뒤 이들은 인근 카페로 들어가 30여분동안 실랑이를 계속했다.


인 상사는 의문사위 조사관들의 멱살을 잡고 '죽이겠다'고 협박하거나, 자기 머리에 총을 겨냥한 채 '자료 돌려주지 않으면, 내가 죽어버리겠다'면서 금방이라도 자해할 것같은 행동을 취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위 조사관들에게 총 쏘며 '협박'... 수갑까지 채워


위 내용은 의문사위 박 과장 등으로부터 전해들은 당시 공포스러웠던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당시 발포한 총이 권총인지, 가스총인지 여부는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오후 6시경 대구에 위치한 인 상사의 집에서 실질조사 차원에서 압수한 1박스 분량의 자료를 싣고 서울로 향하던 의문사위 관계자들은 구미 근처에서 차머리를 되돌려야 했다.

인 상사와 만나고 있던 두 명의 조사관들이 위협에 처해 있고, 또 자칫 인 상사의 '자해 협박'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이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인 상사는 이날 저녁 8시경, 대구시내 한 카페에서 자료를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한 대통령 소속 의문사위 조사관들에게 총을 발사하며 협박하고, 수갑까지 채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전말이다.

이에 대해 인 상사는 12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총을 쏜 기억은 없지만, 경찰서에서 허가를 받은 가스총을 들고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 "의문사위 조사관들을 주거침입, 절도죄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한 적은 있다"고 밝혔다.

인 상사는 특히 "의문사위는 주거에 침입해 개인 물건을 압수해갈 수 없다"면서 "아내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전화로 전해듣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조치한 뒤 두 명의 조사관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종덕 과장은 "이 사건이 터진 뒤에 의문사위 관계자가 인 상사를 만나 '왜 총기를 쏘며 협박했냐'고 채근하니, 인 상사가 '난 총기사용 허가증을 가지고 있다'면서 실탄 사용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밝혔다.

박 과장은 특히 인 상사의 협박소동으로 인해 '중요자료'를 되돌려 준 것과 관련 "부하직원이 총을 맞을지 모르고 인씨가 자해할 가능성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자료를 되돌려줄 수밖에 없었다"며 "진실의 힘보다는 무력의 힘이 컸던 모양"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인아무개 상사의 '가스총' 해명과 관련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정은성 조사관도 "나도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가스총과 권총의 차이를 잘 안다"며 "실탄까지 가지고 있는 걸 봤는데 '가스총'이라고 우기는데 정말 어이없다"고 반박했다.

의문사위 조사관들과 인 상사와의 만남은 이보다 열흘 전인 지난 2월 12일이었다.

a 국방부 특조단 조사관이었던 인아무개 상사가 지난 2월 26일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들을 향해 권총 1발을 발사하며 협박했던 장소.

국방부 특조단 조사관이었던 인아무개 상사가 지난 2월 26일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들을 향해 권총 1발을 발사하며 협박했던 장소. ⓒ 의문사진상규명위


이후 조사관들은 지난 2002년 허 일병 사건에 대한 국방부 특별조사단에서 활동했던 인 상사가 주요 수사자료를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26일 그의 집에서 자료를 압수했던 것이다. 이날 총기협박 사건은 자료를 가져갔다는 사실을 안 인 상사가 격앙된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보름만인 지난 3월6일 의문사위 조사관 4명은 정수성 사령관의 요청으로 방배동 한 식당에서 만났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 사령관의 '협박' 의혹, 즉 의문사위 조사관들을 향해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발언은 바로 이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는 정 사령관과 함께 인 상사도 참석했다.

의문사위는 정 사령관의 '협박 발언' 의혹은 인 상사의 이날 행위와 무관치 않다고 추정하고 있다.

인 상사는 정 사령관의 '협박' 의혹 관련,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자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정 사령관이 '죽이겠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12일 오전 두번째 전화통화에서는 "(정 사령관이) 웃으면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고, 이에 조사관 한명이 '장군님 그런 말씀 하시면 안됩니다'라고 대꾸하기도 했다"고 번복한 뒤 "하지만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협박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관련 주요 쟁점들

주요 쟁점들

국방부 특조단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

총성

총성이 3발 들림

총성은 2발만 청취됨

탄피

탄피는 현장에서 3개 모두 발견됐다

헌병대도 현장에서 2개의 탄피만 발견했다고 진술함

총번수정

수사절차상의 하자

- 허원근 일병과 사건관련자의 총번이 모두 수정됨
-총기감식관 "수사절차상의 하자가 아니라 총기가 바뀐 것"
-특조단 한 조사관 "허 일병의 총기라고 확정할 수 없다"

분대장
복귀신고 등

사건 당일 오전 분대장 복귀신고 등 각종신고가 있었음

- 사건 당일 오전 분대장 복귀신고와 신병신고는 없었음
-국방부 특조단 한 조사관 "분대장 신고는 사건 전날인 4월 1일 있었던 것으로 판단"

사체목격장소

폐유류고

폐유류고가 아니라 사체는 옮겨졌다

새로운 사진
2장

(헌병대 수사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사진 2장이 특조단의 기록 속에서 우연히 발견됨)

현장사진 2장을 누가, 어떻게, 어디서 입수했는지 아직까지도 밝히지 않고 있음

* 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 제기한 기타 의혹사항들
- 특조단은 조사 초기 사건 은폐자로 지목된 당시 헌병대 수사관으로부터 1기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의 문제점에 대해 브리핑을 받음.
- 헌병대 기록과 맞지 않는 참고인 진술들은 모두 '신뢰성없음'으로 판단.
- 참고인들에게 위압적인 방법을 사용해 첫번째 진술을 번복하도록 유도함.
-특조단 조사기록에는 '기록목록' 등이 전혀 없고 기록에 대한 넘버링이 순차적이지 않으며 곳곳이 중복 편철돼 있어 공식자료로 판단할 수 없음.
- 특조단은 타살장면 목격했다고 진술한 참고인을 조사하지 않음. 특조단은 참고인이 조사를 회피했다고 주장했지만 특조단이 조사장소를 국방부로만 고집해 조사약속이 무산됨.
-정수성 전 특조단장(1군사령관)은 특조단 해체 이후에도 현장방문조사와 참고인 진술 청취 등을 방해함.

ⓒ 구영식

인 상사가 소지하던 1박스 분량 자료... 허 일병 사망사건의 비밀?

의문사위는 총기협박 사건 이후 인 상사를 끈질기게 설득해 그로부터 당초 압수했던 자료를 4월경 되돌려 받았다. 하지만 인 상사는 "국방부 특조단 수사 당시 녹취록과 관련 디스켓을 파기했다"면서 이를 제외한 채 서면 자료만을 의문사위에 건넸다.

그렇다면 당시 1개의 종이박스 분량의 자료중 누락된 자료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있었을까. 이 속에 지난 20여년간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둘러싼 공방이 끊이지 않았던 허 일병 사망사건의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의문사위는 지난 2002년 허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에 나섰던 국방부 특조단의 재은폐 의혹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의문사위원회는 조만간 인 상사와 정 사령관을 협박 등의 혐의로 고발조치 할 것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법 제34조에는 조사관 협박과 관련, 징역 5년 이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는 의문사법에서 규정하는 최고 형량이다.

한편 의문사위는 오늘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국방부 특조단의 재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인 상사의 총기협박을 폭로했다. 이에 대해 인 상사는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다"면서 "오늘 오후 별도의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군사법개혁 1] 살인범을 '징역 10월'로 감형 조치..지휘관 사면권, 대통령 뺨친다


사개위, 군사법제도 개혁 보고서 초안에서 '군검찰권 강화' 방안 제시

허 일병 사망 사건을 최초로 수사해 '자살'이란 결론을 낸 곳은 헌병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1기 의문사위는 중간결과발표를 통해 '타살'로 규정했고, 이어 국방부 특조단이 구성돼 다시 '자살'로 뒤엎었다. 하지만 2기 의문사위는 위와같은 이유로 특조단의 수사에 대해 재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군 내에서는 헌병의 수사력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부대내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부대장은 인사상의 불이익 조치를 우려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고,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 헌병이 부대장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수사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군검찰권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폐단이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와 국가인권위, 의문사위 등은 군검찰권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사법개혁위원회의 전문위원 보고서에서도 군검찰의 개혁방안으로 제시되는 의견 중의 하나로 '군검찰청법 제정'에 대해 언급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군검찰이 헌병 및 기무부대에 대한 실질적인 수사권 확보를 위한 방안을 언급하면서 현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군수사 실제에 있어서 사망사고와 같은 중요 사건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건에 있어서 헌병이 초동수사를 하고 그 결과를 부대장에게 지휘보고함.
-헌병의 보고로 당해 사건의 처리 방향 및 관련자의 처벌 수위(구속 여부 비롯, 징계 여부)가 결정됨.
-검찰관의 영장신청, 법무참모의 구속영장 결재 등의 절차는 통과의례로 그침.
-군검찰관이 헌병대장의 보고과정에서 이뤄진 지휘관의 결심을 사후에 변경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움.
-군사법경찰관인 헌병에 대한 실질적인 수사권 확보가 장병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


따라서 이 보고서는 "현행 군사법원법 제45조는 '군사법경찰관은 범죄를 수사함에 있어서 직무상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나, 형소법 196조 1항, 검찰청법 53조에 규정된 바와 같은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관한 일반적인 수사 지휘권에 관한 근거규정이 없다"면서 군검찰청법 제정 등을 군검찰권 강화의 한 방안으로 제시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AD

AD

AD

인기기사

  1. 1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