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게 세금을...부유세 내가 마크"
노동운동 야전사령관의 당찬 '출사표'

[17대, 정치신인이 이끈다 ⑦] 민주노동당 심상정 당선자

등록 2004.05.22 22:39수정 2004.05.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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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심상정 민주노동당 당선자.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심상정 민주노동당 당선자.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민주노동당이 만들려고 하는 사회가 이런 사회구나, 하는 감이 와야지. 그래서 국민들이 이런 당은 밀어줘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 심상정(46) 당선자는 4년 뒤 민주노동당이 어떤 평가를 받아야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살림살이의 구체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10석 소수당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심 당선자는 나은 사회를 위한 비전과 가치를 국민과 공유하는 과정으로 4년 국회의원 임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20일 만난 심 당선자는 다음날 부유세 토론회 준비로 바빴다. 총선 후 조세 및 재정전문가들과 함께 부유세 공방을 벌여야 하는 사실상의 첫무대였다. '부자에게 세금을,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를'이란 모토로 총선을 치른 민주노동당의 히트공약인 부유세는 단지 서민뿐 아니라 조세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전계층에게 호소력이 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70%에 육박하는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그런 점에서 심상정 당선자의 어깨는 무겁다. 10명의 당선자중 마땅한 경제통이 없는 상황에서 심 당선자에게 '재경위를 맡아라'라는 당의 '명'이 떨어졌고, 그 결과 부유세 마크는 자신의 몫이 되었다. 상임위 활동에 있어 '전공'이랄 수 있는 환노위와 보건복지위가 수월하겠다 싶었지만 그쪽은 지망자가 많아 처음부터 하드코스로 시작한 셈이다.

"당선자가 10명인 상황에서 재경위는 '우선' 상임위에서 없었다. 하지만 거시경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내기 위한 민주노동당의 적극적인 도전과 실물경제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제기했다. 그러다가 결국 내게 화살이 돌아왔다(웃음)."

"자본 상대한 25년 짬밥으로 재경위에서 뺑이 칠 각오"

심 당선자는 "뺑이 칠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부각론이나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해도, 돌파해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경제학 이론 가지고 나라경제 책임진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왜 이렇게 됐겠나. 이론은 뒤질지 몰라도 밑바닥 삶을 바꾸는데 있어 경제정책의 번지수는 정확히 따지고 길을 제시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

a 지난 5월 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석한 심상정 당선자.

지난 5월 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석한 심상정 당선자.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진중공업, 두산중공업 등 대공장 노조가 소속된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오래 일하면서 야전사령관이니, 인민무력부장이니 하는 소리를 들었던 심 당선자는 책에서 배울 수 없는 현장지식이 풍부하다.

"노동조합하면서 자본을 상대로 교섭을 상당기간 해왔는데 우리의 요구만을 주장해서는 관철이 안된다. 자본의 약점을 간파하고 돌파했을 때 우리 요구의 정당성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어디를 치고 나갈 것인가에 있어 우리는 경험적인 성과를 가지고 있다."


어떤 상임위 보다 남성 중심인 재경위. 묵과할 수 없는 법안이 통과되려고 한다면 위원장 자리라도 박차고 앉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전술을 어떻게 할 건지는 봐야 하지만, 노동자·서민의 삶과 절박하게 연계되는 일이라면 비타협적으로 싸울 것이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상생'을 얘기하지만, 국민이 국회의 싸움박질을 싫어하는 것은 국민의 삶과 무관한 혹은 더 어렵게 만드는 '정쟁'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상을 주문했다고 생각한다."

관련해 그는 원외에 광범위한 지지그룹을 형성하려고 한다. 당원뿐만 아니라 조세, 금융, 경제정책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운동가로 구성된 '심상정 정책서포터즈'를 만들어 상임위 활동에 전문성과 지지기반을 넓혀갈 계획이다.

구로공단 미싱사로 출발한 노동운동....손에는 결혼반지 아닌 전노협 반지

78학번인 심상정 당선자는 소위 대학 때 '언더서클' 활동을 하면서 여학생을 배제하는 운동논리에 반기를 들고, 여성문제연구회를 만들었고, 그 역시도 한계를 느껴 구로공단 미싱사로 현장취업을 시도했다. 그것이 노동운동의 시작이었다.

이후 해고, 수배, 재취업의 반복. 그러다가 85년 구로동맹파업, 87년 노동자대투쟁에 이어진 90년 전노협(쟁의국장), 95년 민주노총, 96년 금속연맹(사무처장) 등의 결성과정에서 굵직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렇게 결혼도 늦어졌고, 서른 중반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심 당선자는 최근 서울대 총동문회가 주최한 '17대 국회의원 당선 동문 축하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단지 서울대 출신이라고 하는 학벌을 중심으로 한 친교의 자리이고 세 과시의 자리였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정신과 위배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청송 심씨' 종친회에서도 전화가 오지만, 학연, 지연, 혈연의 초청은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다.

a 4월 15일 당사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심상정 당선자가 아들 이우준 군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4월 15일 당사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심상정 당선자가 아들 이우준 군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의 손에는 결혼반지가 아닌 '전노협 반지'가 끼워져 있다. 단병호 당선자도 같은 반지를 끼고 있다. 노동운동계에는 '단문심 라인(단병호, 문성현(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대표), 심상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병호 당선자와는 오랜 동지적 인연을 맺어 왔다.

그가 정치인으로 살겠다는 결심은 그리 오래지 않다. 작년 말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운동이 시작될 즈음 진로를 두고 "민주노총이냐, 당이냐" 갈등이 적지 않았다. 결국 당을 선택했고, 여성 후보 중 최다득표자로 비례대표 1번이 되었다.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동운동을 비정규직, 중소사업장을 포괄하는 산별노조운동으로 한 단계 높이는 작업이 얼추 마무리되었고, 또 금속노조 사무처장 임기도 끝나는 시점이라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마침 여성할당 비례대표가 제도로 생겼고, 또 민주노동당이 창당기에서 발전기로 가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경험이 깊이 있게 접목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당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 주변의 열에 아홉은 당으로 가라고 하더라. 개인의 의지라기 보다는 조직이 부여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심상정 당선자는 '조직'적인 사고와 행동에 익숙했다. 25년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그의 삶이 그렇다. 하루 3시간 밖에 못 자는 당선자로서의 일상에서 가장 힘든 점은 몸의 피로보다 "행동보다 말이 앞선다"는 점이었다. 몸이야 금속노조 사무처장 시절, 잦은 지방출장과 밤샘회의, 철야농성으로 잔뼈가 굵은 터였다.

"노동조합 일하면서 원칙 중의 하나가 행동보다 말이 앞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때 활동의 원칙은 행동을 하면 그 결과가 객관화되는 식이었는데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워낙 크다보니 말로 치고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언론이 앞서나가니 심리적인 부담이 크다. 특히 카메라에 익숙치가 않다."

국회의원 피로도, 행동보다 말이 앞서야 하는 점이 가장 힘들어

심상정 당선자는 민주노동당이 현재 소수당이라는 점, 하지만 미래 집권당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인물보다는 시스템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원활동을 당에 복속한다는 원칙, 그리고 공직·당직을 분리한다는 당원들의 결정을 '통제' '발목잡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상당한 갑갑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균형을 맞추려다 보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하지만 원내라고 하는 제도정치권, 또 소수파라는 조건에서 끊임없이 원칙을 확인하지 않으면 현실 속에서 급속하게 함몰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더 크다. 특히 언론공학에 정치공학에 함몰될 가능성이 높다.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일정하게 담당하면서 당세를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현장에 토대를 두고 그 관점으로 밀고 나갈 것인가 사이에 진보정당의 역사가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전자를 선택한 경우, 진보정당의 생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의 5만5천 당원의 보폭과 함께 가는 것이 중장기적인 진보정당의 미래를 담보한다."


심 당선자는 의원 개인의 독자적인 전략, 당내 민주주주의, 그리고 각종 시민단체, 대중조직과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민주노동당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점에서 200만원도 안되는 의원월급, 각종 특혜에 대한 엄격한 거부 등은 민주노동당 1기 의원단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은 전국구지만 다음엔 지역구를 한번 노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현재 육아문제로 경기도 평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심 당선자는 "이미 열심히 지역운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며 "그 문제는 2년 후에 고민해 보려고 한다"고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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