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구로동맹파업 동지들을 찾습니다"

해방 이후 최초의 정치적 동맹파업...정신계승 대토론회 등 각종 행사 열려

등록 2005.06.08 15:00수정 2005.06.08 15:28
0
원고료로 응원
a 85년 6월 25일 민통련 사무실에서 열린 구로동맹파업 지지대회.

85년 6월 25일 민통련 사무실에서 열린 구로동맹파업 지지대회. ⓒ 구동파추진위

"8백만 노동자가 민주노동운동의 깃발 아래 모이는 그날까지 선봉에 서서 굽힘없이 싸워나갈 것을 선언한다.", "노동자를 영원히 노예로 부리려는 독재정권과는 한치의 타협도 있을 수 없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폭력정권은 물러나라."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85년 6월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외친 구호이다. 당시 노동자, 학생, 민주인사들은 군사독재정권의 감시와 통제를 뚫고 6.25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이자 사회민주화 투쟁을 감행했다.

전두환 정권은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한 노동자·학생·운동가 등 43명을 구속했으며 370명은 구류를 살렸다. 특히 동맹파업의 진원지였던 '대우어패럴' 공장이 폐쇄되면서 2000여명의 노동자들은 강제해고 당해야 했으며 블랙리스트의 멍에를 안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구로동맹파업 2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구동파추진위)'가 동맹파업 20주년을 맞아 정신계승과 역사적 평가를 위해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파업에 동참한 노동자를 비롯해 연대·지지투쟁에 나섰던 학생과 민주인사들도 찾고 있다.(문의 ☎ 02-851-0908·홈페이지 www.kuro85.org)

이와 함께 ▲구로동맹파업 20주년 정신계승 대토론회 = 18일 오후 1시 고대구로병원 대강당 ▲구동파 주역들의 만남, 20년만의 해후 '아름다운 만남' = 25일 오후 2시 가산종합사회복지관 ▲20주년 기념문화제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 = 25일 3시 구로2공단 사거리 등의 행사와 백서발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윤혜련(45·당시 가리봉전자노조 사무장·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 공동집행위원장은 8일 "파업 지도부들은 구속되고 조합원들은 구사대에 짓밟히고 가족에게 끌려가야 했다"며 "독재정권에 의해 빨갱이로 매도당한 노동자들의 명예회복과 역사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지난 2000년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판정한 바 있다.


구로동맹파업은? 6.25 이후 최초의 정치적 동맹파업

a 구로동맹파업에 동참한 여성노동자.

구로동맹파업에 동참한 여성노동자. ⓒ 구동파추진위

대우그룹 계열의 의류봉제 수출회사인 대우어패럴노조는 84년 전두환 정권의 유화국면을 활용해 노조를 결성했다. 노조 결성 다음 해인 85년 봄, 임금인상 투쟁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선도 역할을 해나갔지만 공안당국은 방치하지 않았다.


이 해 6월 22일 경찰은 쟁의조정법 위반 등으로 김준용 노조위원장 등 노조간부들을 연행하면서 공안탄압의 신호탄을 올리자 노조는 24일 파업농성에 돌입했다. 이날 가리봉전자, 효성물산, 선일섬유 등은 '구속자 석방', '노동3권 보장', '노동악법 철폐' 등의 구호를 내걸고 동맹파업에 결합했다.

이어 25일에는 구로 3공단의 세진전자노조, 27일에는 성수동의 삼성제약노조, 28일 구로3공단 부흥사노조 등이 지지농성에 돌입했다. 26일 저녁 가리봉 오거리와 공단입구 등지에서 노동자·학생 수 백명이 참여한 가두시위가 벌어졌고 효성물산과 청계피복노조원 등 100여명이 노동부 중부지방사무소에 몰려가 노동부장관 면담을 요구했다.

민통련, 민청련,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등 22개 민주·민권운동단체 대표 50여명은 26일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지농성에 돌입했다. 또한 경찰의 봉쇄로 농성에 합류하지 못한 민주 인사들은 종로5가 기독교회관을 비롯한 소속 단체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대우어패럴 사측은 29일 구사대 등을 동원해 닷새 동안 물도, 전기도 끊긴 상태에서 파업농성을 전개하던 노동자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동맹파업에 나섰던 효성물산과 선일섬유노조는 26일 밤 농성을 풀었고 가리봉전자노조는 27일 관리직 남성에 의해 강제 해산 당하면서 동맹파업은 일단락 됐다.

대우어패럴에 위장 취업해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구로동맹파업'을 해방 후 최초의 정치적인 동맹파업이자 노동자들의 주체선언이었다고 정의했다.

심 의원은 8일 "70년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노동자의 인권선언이었다면 80년대 구로동맹파업은 노동자가 사회·역사발전의 주체임을 선언한 것이었다"며 "기업별 체제와 노사협조주의를 극복한 동맹파업은 노동운동의 가야할 길이었으며 현재의 노동운동 또한 연대투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로동맹파업 동지들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니"
당시 가리봉전자노조 사무장이었던 윤혜련씨의 편지

85년 가리봉전자노조 사무장으로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했던 윤혜련(45)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이 20년 전에 뿔뿔이 흩어졌던 동맹파업 참가 노동자들을 찾고 있다. 다음은 구로동맹파업 당시의 노동자들을 찾는 윤 회장의 편지 '전문'이다.

동지들아 잘 있었니?
맑은 하늘 아래 초여름의 초록이 짙어져 간다.

오늘 방송에서는 80년 광주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축제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 당시 억압에 울부짖으며 민주화를 염원했던 투쟁에 노래를 신세대 가수가 나와 편곡을 하여 요즘시대의 음률로 너무도 부드럽게 노래를 했다. 가사는 그때 그 시절 가사였지만 너무도 낮선 노래로 들리더라.

또, 6월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6월이지만 오늘의 6월은 가슴한 쪽에서 다른 6월을 떠오르게 한다. 어디선가 흐릿하게 들려오는 투쟁의 노래와 구호 그리고 동지들의 아우성이 잠자던 몸 속 세포 하나 하나를 깨우고 있다. 20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동지들아 기억하니?
나는 14살 산업일꾼으로 칭송 받으면서 국가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고들 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공순이로 기계의 일부분으로 취급받으며 살아야 하는 세월이 있었다. 우리는 가난한 집을 위해서, 회사의 사장을 위해서, 나라의 산업경제발전을 위해서 인간이 아닌 기계와 같이 감정이 없는 듯 시키면 시키는 데로 밤낮없이 그렇게 일해야 했던 세월이 있었다.

그런데 인간다운 삶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그 분노는 내가 일하는 노동현장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것으로 활동하게 되었지. 노동조합활동을 통해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까막눈이 빚을 보듯 사회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 모순을 바꾸고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생겨서….

그러나 민주노조활동이라는 염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군사정권의 강한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라던 우리의 구호가 힘없이…. 그때 죽음까지 불사하며 함께 싸웠던 동지들에게 구속과 폭행, 블랙리스트라는 커다란 멍에를 지우게 하고 우리는 싸움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강구한 단결만이 살길이라던 믿음이 권력 앞에 무너지면서 우리는 이렇듯 뿔뿔이 헤어지고 만 것이지.

언제, 어디서 또 그렇게 든든한 동지를 만날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 또 이렇듯 피보다 진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날까?
동지들아 어디 있니?
보고 싶구나.
그때 끝까지 우리의 약속을 지켜내지 못한 게 정말 미안하구나.
그때 당시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는 폭언을 당하고, 커다란 각목과 남성 구사대의 구둣발로 사정없이 짓밟히던 몸은 지금 어떤지 궁금하구나.
지현이는 2층에서 떨어질 때 다친 발목이 아직도 비가 오면 쑤신다는데 너희들은 어떠니?

생각나니? 위원장이었던 진선자, 부위원장이었던 서혜경 언니, 쟁의부장이었던 양용자, 임신 중에 관리자의 폭행으로 2층에서 떨어졌던 이지현, 편집부원 유시주, 그리고 열성조합원 성훈하, 한순복은 가끔 만나고 있단다.

그런데 구로 지역에 후배들이 구로동맹파업 연대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찾아왔단다. 우리도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20주년을 후배들이 기억하고 그때 우리 동지들을 찾아 아팠던 가슴을 서로 매만져주고 자랑스러웠던 우리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

이혜영, 박유복, 조금자, 이정숙, 김형수, 최부희, 엄현영, 김추현…. 아∼또 누가 있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동지들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니?
구속되고 해고되면서 경황없이 뿔뿔이 헤어졌는데 우리들 꼭 만나서 지난 이야기 좀 나누어 보자.

2005년 6월 윤혜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