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할머니가 인터넷 신문에 빠진 이유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3)

등록 2004.05.27 03:20수정 2004.05.2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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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은 소멸할 것인가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주요 신문들의 기사를 읽는 버릇이 들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종이신문을 읽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종이신문 구독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요즘은 여유가 있더라도 종이신문을 펴서 차분하게 읽기보다 웹 사이트에서 기사를 찾으려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굴리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2005년도에서 2010년 쯤에는 종이신문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거라 주장했던 신문 위기론자들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모든 일반인들이 내 행동 같다면 종이신문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말 것이다.

"과연 종이신문의 시대는 소멸하고 말 것인가?"

지하철 안에서 발견한 종이신문의 가치

바로 그날, 퇴근시 지하철 좌석에서 우연히 누군가가 놓고 간 스포츠신문을 발견하고 무심코 집어 들었다. 이상하게도 손끝 촉감에서부터 매우 친근하고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다.


신문학자 레오 보가트(Leo Bogart)가 니만 리포트(Nieman Report)에 발표한 논문 'Newspapers's Fate Tied to Revival of cities'(1996)에서 언급한 '종이신문이 생존할 수밖에 없는 5가지 이유' 중 "독자들은 편안히 앉아 신문을 보려고 하지 컴퓨터 키보드를 잡고 긴장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첫 번째 내용이 부지불식간에 떠오른다.

'그래 맞아, 아무리 인터넷신문이 발달하더라도 아직까지 화장실이나 전철 같은 곳에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종이신문의 심적, 효용적 가치를 따라오기에는 인터넷 신문이 부족한 것은 사실 아닌가'


역시나 하는 결론을 내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신문을 읽으려 했건만, 신문기사가 나를 실망시킨다. 분명 내일자 신문이건만 내용은 이미 좀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진과 글자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레이아웃만 달리해 신문지면에 올라 있었던 것. 방금 느꼈던 편안함이 또다른 위기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보니 내 칠순 모친은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이 새는 줄 모른다더니 요즘 막내딸이 올린 기사를 직접 읽겠노라며 인터넷 사용법을 배운 어머니가 <오마이뉴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하이퍼 텍스트와 인터랙티브에 빠져들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눈 아프지 않아요?"
"아니, 처음에는 눈이 아프고 불편했는데 지금은 습관이 돼서 그런지 괜찮더라."
"왠만하면 신문 읽으시고 인터넷 너무 오래 하지 마세요. 눈에 무리가 오니까요."

그랬더니 어머니한테서 경천동지할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아니야, 오히려 돋보기 안경으로 작은 활자의 신문을 보는 것보다 더 편하더라."
"뭐가 그렇게 편해요?"
"신문은 이 기사 보다가 다른 기사 보려면 일일이 종이를 넘기며 찾아야 하는데, 인터넷 신문은 그럴 필요없이 이 기사를 보다가 또 다른 제목을 클릭하면 그 기사가 금방나오니 얼마나 편리하니."

아, 어머니는 벌써 인터넷 웹 환경의 가장 중요한 장점인 하이퍼텍스트(HyperText) 기능을 몸소 체험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뿐인가? 어머니는 기사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의 반응을 보면서 인터넷 환경의 특성인 '인터랙티브(interactive)'의 매력 또한 느끼고 있었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마지막 충격의 한 마디를 던지셨다.

"이제 종이신문 구독 끊을까?"
"왜요?"
"인터넷으로 보고 방송들으면 다 알 수 있는데 종이신문이 무슨 필요가 있니?"
"그래도 아직까지 종이신문은 필요해요. 만약 전기가 끊어지거나 컴퓨터가 고장나면 인터넷으로 신문을 볼 수 없잖아요. 허리 아플 때 누워서 보실 수도 있구요. 안 그래요?"
"하긴, 종이신문을 끊으면 세일 알려주는 찌라시(?)도 안 들어오지?"

이걸로 어머니와의 대화는 끝났고, 여전히 종이신문은 계속 배달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의 변신을 보고 종이신문의 소멸 위기를 더욱 절감한다.

종이신문 끊을까?

사실 종이신문 가독성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노인들도 인터넷 시대에 나름대로 적응하고 장점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니 다른 세대의 사람들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인터넷신문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콘텐츠의 미흡한 수익 구조, 불분명한 저작권 문제 등이 점차 해결될수록 그나마 지탱해오던 종이신문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즉 근본적인 혁신 없이는 종이신문의 미래는 암담하다는 뜻이다.

결국 미디어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종이신문이 사라지지 않고 인터넷 미디어와 공존해서 살아갈 길은 자신만의 특성을 극대화시키는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득, 새벽 대문 밖에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싱싱한 종이신문이 그리워진다. 이 종이냄새가 더 이상 추억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떠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까?

다시 레오 보가트의 '종이신문이 생존할 수밖에 없는 5가지 이유' 중 '전자정보는 무형적이지만 종이신문은 유형적이다"라는 4번째 항목이 떠오른다. 종이신문의 권위있는 이 특성을 잘 이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이신문사들의 뼈를 깎는 체질 개선과 사고의 변화, 행동의 개혁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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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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