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액세서리는 '이빨걸이'

[오클랜드 하늘에 뜨는 무지개16] 치열 교정기 한 딸아이

등록 2004.05.28 06:18수정 2004.05.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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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어때? 색깔 예쁘지?"


치열 교정 전문의원의 문을 나서며 딸아이 동윤이는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습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브래킷들이 하나씩 붙어있는 딸아이의 이빨들이 내게는 안쓰러워 보이는데, 동윤이는 치열 교정기가 무슨 장신구라도 되는 듯 좋아합니다.

"그래, 참 예쁘구나. 그런데 아프지는 않니?"

처음에는 조금 통증이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걱정이 되어 묻는 나의 질문에 딸아이는 고개를 흔들며 콧노래를 부릅니다.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자기 반에도 치열 교정기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몇 명 있는데, 갖가지 색깔의 브래킷들로 장식된(?) 이빨을 교실에서 자랑하곤 했다고 하더군요. 이제 자신도 그 대열에 끼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딸아이의 치열 교정기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편치가 않습니다. 적지 않게 드는 치료비도 그렇지만 앞으로 2년 동안 치열 교정기를 달고 지내면서 딸아이가 겪을 불편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금은 마치 장신구라도 되는 것처럼 치열 교정기를 단 것을 좋아하지만,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는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어서 딸아이의 마음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도 걱정스러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걱정스럽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니 아내는 동윤이가 치열 교정기를 달게 된 것이 자기 책임이 크다고 느끼고 있어서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나보다 훨씬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동윤이가 치열 교정을 하게 된 것은 위쪽 송곳니가 옆으로 비쭉 삐쳐 나온 덧니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으로 입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정면에서 볼 때는 괜찮지만 옆에서 보면 입이 튀어나온 것이 확연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제법 많이 돌출해 있기에 치열 교정이 불가피한 상태입니다.

a 위 송곳니가 덧니이고 입이 앞으로 튀어나왔지만 딸아이의 웃음은 언제나 싱그럽다.

위 송곳니가 덧니이고 입이 앞으로 튀어나왔지만 딸아이의 웃음은 언제나 싱그럽다. ⓒ 정철용


동윤이의 입 모양이 이렇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엄지손가락을 빨았기 때문입니다. 하도 빨아서 엄지손가락 첫째 마디가 짓무를 정도였습니다. 가까스로 손가락 빠는 버릇을 고치기는 했지만 손가락을 빤 그 동안의 세월은 앞으로 쑥 튀어나온 동윤이의 입 모양으로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아내가 자책하는 것은 동윤이가 손가락을 빨게 된 것이 바로 자기 탓이라는 거지요. 동윤이가 아주 어렸을 때조차도 어르고 토닥거리며 잠을 재우는 대신 그냥 자기 방에 혼자 놔두고 불을 꺼준 채 나와 자기 할 일을 하는데 더 골몰했기 때문에 동윤이가 애정 결핍으로 손가락을 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늘 웃는 얼굴이고 명랑해서 학교에서도 ‘해피 걸’이라고 불리는 걸 보면, 동윤이가 ‘애정 결핍’이어서 손가락을 빨게 되었다는 아내의 생각은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아내의 건강상의 이유로 모유를 먹지 못하고 자라난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간에 손가락을 빠는 버릇 때문에 튀어나오게 된 입을 바로 잡기 위하여 앞으로 2년 동안 딸아이가 불편한 이빨 교정기를 달게 되었으니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편할 리가 없습니다.

치열 교정기를 달기 1주일 전쯤, 이빨을 가지런하게 자리 잡게 하기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하여 딸아이의 아랫니와 윗니를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생니를 뽑아낼 때 아내는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며칠 전에 미리 부착해 놓은 브래킷들을 와이어로 연결함으로써 치열 교정기 장착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6주에 한 번씩 학교 수업을 빼먹으며 점검을 받으러 다니는 일도 수고로운 일이 되겠지만 매일 매일 깨끗하게 관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거리입니다.

그 만만치 않음은 치열 교정기를 부착한 첫날부터 확인되었습니다. 치열 교정기 부착을 마치고 웃는 얼굴로 학교로 돌아간 동윤이가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울상이 된 것입니다. 이물감 때문에 점심도 못 먹어 허기도 지고, 이빨에 조금씩 기분 나쁜 아픔도 느껴지니 얼굴 표정이 찌그러질 수밖에 없지요.

그래도 자기의 치열 교정기를 구경한 반 친구들이 다들 색깔이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고 좋아합니다. 누구는 보라색으로 했고, 또 누구는 빨간색으로 했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자신이 고른 분홍색과 파란색이 훨씬 더 예쁘다고 합니다.

a 알록달록한 색깔의 치열 교정기는 딸아이의 장신구이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치열 교정기는 딸아이의 장신구이다. ⓒ 정철용


“아빠, 저 말이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빨간색과 초록색 브래킷으로 바꿀 거예요. 초록색은 꼭 이빨에 낀 시금치처럼 보이고 빨간색은 고춧가루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잖아요. 빨간색과 초록색은 크리스마스 색깔이잖아요.”

어이구 맙소사! 이빨이 아프다면서 벌써 크리스마스 무렵에 바꿔 끼울 브래킷 색상까지 궁리하고 있다니. 이 말을 듣고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동윤이에게 한마디합니다.

“그래, 아주 맘에 드는 액세서리가 생겼구나. 때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색깔도 바꿀 수 있으니… 너무 비싼 것이 흠이지만 말이야.”

“맞아. 이건 내 액세서리야!”

아내와 나에게 씩 웃어주는 동윤이의 이빨에서 와이어로 연결된 분홍색과 파란색의 브래킷들이 예쁘게 반짝입니다. 귀걸이도 아니고 목걸이도 아니지만 딸아이에겐 치열 교정기가 멋진 장신구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 장신구는 이빨에 부착했으니 이빨걸이(?)쯤 될라나요. 그 이빨걸이가 딸아이의 이빨을 정말 아름답고 가지런하게 바로 잡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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