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 남짓한 방 안에 김씨에게는 생명줄과 같았던 산소통과 라디오 등이 놓여져 있다석희열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지난해 11월 ㅅ의료원에서 그동안 고물 수집 등으로 발병한 진폐증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즉각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입원비가 없어 월 23만원을 주고 빌린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집에서 투병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김씨의 두 아들은 지난해 여름 자원 입대하여 현재 군 복무 중이다. 이 때문에 부인 임씨가 건물 청소 등의 막노동을 하여 남편의 병치레를 보살펴 왔다. 임씨가 한달에 버는 돈은 50여만원. 남편의 약값을 대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다.
이를 보다 못한 주민들이 개포4동 사무소에 직접 찾아가 김씨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부인이 남편의 생활을 돌볼 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씨 가족은 지난 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포이동 266번지로 강제 이주당한 뒤 지금까지 서너 평 됨직한 판자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아 왔다. 김씨는 고물 수집 일을 하며 근근이 가족의 생계를 꾸려왔지만 90년부터 강남구가 해마다 부과해온 토지 변상금을 내지 못해 빚더미에 시달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임씨는 "자식들에게만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남편이 그토록 몸부림을 쳤지만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면서 "병원에서는 입원을 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남편은 집안 살림에 부담을 주기 싫어 입원 권유를 끝내 뿌리쳤다"고 애닯아했다.
그는 이어 "강제로 이주당한 것도 억울하고 서러운데 20년 넘게 한곳에 살면서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병만 얻은 채 남편을 쓸쓸히 떠나보내야만 하는 이 꼬이고 뒤틀린 현실이 너무도 원망스럽다"며 울먹였다.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동사무소를 방문해 김씨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몇 번이고 사정을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방치한 책임이 국가에 있는 만큼 김씨의 죽음은 개인적 자살이 아닌 국가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