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동 266 "우린 빈곤없는 세상을 꿈꾼다"

넝마주이 부부 1주기 추모제... 토지변상금 철회 등 촉구

등록 2005.07.05 04:41수정 2005.08.0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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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멈춰진 시간 속에 짐승들이나 살 법한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자살로, 질병으로, 빈곤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 서울 강남의 '외딴섬' 포이동 266번지 사람들이 그들이다. 최소한의 인권과 좀 더 나은 주거환경 개선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든 행정폭력 앞에 오늘 우리는 강철같은 투쟁을 선언한다. 우리는 빈곤없는 세상을 꿈꾼다."

섭씨 30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에 정태춘의 명상곡 <더 이상 죽이지마라>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가난과 질병의 질곡에서 신음하다 지난해 여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포이동 넝마주이 고 김천복씨 부부 제단에 꽃을 바쳤다. 이들 부부가 생전에 남긴 절규는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였다.

빈곤의 절망에서 숨진 넝마주이 추모

a 포이동 266번지 주민 등 300여명은 4일 낮 서울 강남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강남구가 지난 1990년부터 포이동 주민들에게 물리고 있는 토지변상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 등 300여명은 4일 낮 서울 강남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강남구가 지난 1990년부터 포이동 주민들에게 물리고 있는 토지변상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 빈민해방철거민연합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는 4일 낮(오전 11시~오후 4시30분) 서울 강남구청 앞에서 빈민해방철거민연합과 공동으로 '고 김천복 임정숙 부부 1주기 추모제 및 포이동 주민 주민등록 등재 촉구 결의대회'를 열어 "강제로 없애버린 주민등록을 복원하고 죽음의 고리 토지변상금 부과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1일부터 노점과 쪽방촌 등을 돌며 빈민현장을 체험하고 있는 '2005 여름 빈민현장 활동 실천단' 소속 대학생과 빈민 등 300여명은 이날 집회에서 ▲불법적인 토지변상금 철회 ▲포이동 266번지 주민등록 등재 ▲집단 강제이주 및 인권유린 사실 인정 ▲서울시장과 강남구청장의 사죄 등을 요구했다.

조철순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자식에게만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발버둥치다 끝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김천복씨 부부가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처지를 얼마나 서러워했겠느냐"며 "포이동 주민들은 이들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노수희 전국연합 공동의장은 "박정희 시절의 공화당-전두환 시절의 민정당-3당 야합의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져온 반민중적인 정당의 역사가 이 땅의 민중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똑똑히 알려주고 있다"면서 "주민의 죽음을 방치한 강남구와 보수 정치권에 맞서 노동자·빈민·청년학생이 함께 분노하고 싸워나가자"고 격려했다.


a 한 시민이 포이동 넝마주이 부부의 추모제를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한 시민이 포이동 넝마주이 부부의 추모제를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진용석

참가자들은 또 "지난 24년간 포이동 주민들은 국가폭력에 떠밀려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짐승처럼 살아왔다"며 "국가 행정폭력이 강제로 빼앗아간 주민등록을 되돌려줘 포이동 주민들이 대한민국의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소 없는 포이동 주민은 '기타 국민'?


1989년 서울시의 구획정리에 따라 당시 200-1번지가 266번지로 바뀌었음에도 포이동 주민들은 여전히 지번이 없어진 200-1번지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구에 살면서 주소는 달나라인 일종의 유령 인간인 셈이다. 이처럼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지번'에 살면서 주민들은 각종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출입과 시민권이 보장되는 실제 거주지 주소로 주민등록을 등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박동식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 공동위원장은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치르며 온 국민이 스포츠에 열광하고 있을 때 포이동 주민들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바깥에 나다닐 수도 없었다"며 "구청 공무원과 경찰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지옥같은 나날을 보냈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박 공동위원장은 "그때는 관이 시키면 무조건 따라야 되는 줄 알고 따랐지만 이제 더 이상 부당한 행정폭력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며 "주민들에게 한마디 통보도 없이 구획정리라는 이름 아래 행정폭력을 동원하여 빼앗아 간 주민등록을 당장 내놓아라"고 목청을 높였다.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는 "농촌에서 가축을 기르다 보면 소, 돼지에게도 고유번호가 주어지는데 아직도 주소가 주어지지 않는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기타 국민'인갑다"며 특유의 입담으로 현실을 풍자했다. 이어 그는 "역대 못된 정권들이 기어코 포이동 266번지를 국가도 통제할 수 없는 '중립국'으로 만들었다"고 가시돋힌 독설을 퍼부었다.

김흥현 전국빈민연합 의장은 "제대로 국민 취급도 안하면서 포이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군대 보내고 세금 받아가고 감옥 보내는 일은 잘도 하더라"며 강남구를 정조준했다. '유령 인간'으로 만들어 의료보험 혜택 등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는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토지변상금 물리고 감옥 보내는 못된 짓만 골라 한다는 것.

강남구 "강제이주 근거 찾을 수 없다"

a 강남구청장의 사죄를 요구하며 구청 진입을 시도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강남구청장의 사죄를 요구하며 구청 진입을 시도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빈민해방철거민연합

이에 대해 강남구는 현재 포이동 266번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과거 정부에 의해 강제로 집단이주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고, 또 1989년 이전 지번인 200-1번지와 지금의 266번지가 일치하는지도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이날 주민들과의 면담에서 이같은 입장을 전달하고 여러 가지 정황을 꼼꼼히 따져본 다음 주민등록 등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구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5일 "지난 88년 12월 31일 서울시가 구획정리를 확정하면서 없어진 200-1번지는 당시 하천부지였고, 지금의 266번지와 일치한다는 근거가 없다"면서 "불특정 번지수에 살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이곳으로 와 살고 있으니 주민등록을 이곳 주소로 해달라는 것은 행정자치부 규정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악착같이 단결하여 포이동을 사수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강남구청 진입을 시도하다 이를 막는 경찰과 대치하며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기동타격대 3개 중대를 현장에 배치하여 강남구청을 경비했다.

한편 닷새째 빈활 일정을 이어가고 있는 '2005 여름 빈민현장 활동 실천단'은 오는 8일 오후 포이동 266번지에서 '절망의 빈곤, 희망의 연대'라는 이름의 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유의선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빈민현장의 작은 실천을 통해 희망의 연대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이번 빈활의 취지를 설명했다.

덧붙이는 글 |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 홈페이지 바로가기     

전화 (02)574-7185

덧붙이는 글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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