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동 266 "우리를 주민등록 등재해달라"

6일 주민 100여명 강남구청 앞 집회...강남구 "우린 법대로 할 뿐"

등록 2005.10.06 21:12수정 2005.10.07 16:41
0
원고료로 응원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강남구청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강남구청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석희열

포이동 266번지. 양재천 너머 타워팰리스가 보인다.
포이동 266번지. 양재천 너머 타워팰리스가 보인다.포이동 266 사수대책위
지난 24년간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살아온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이 또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빼앗아간 주민등록을 되찾기 위해서다.

포이동 주민과 대학생 100여명은 6일 낮 서울 강남구청 앞에서 '포이동 266번지 주민등록 등재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강남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5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81년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당시 포이동 200-1번지 황무지로 강제이주당한 포이동 주민들은 그동안 국가 공권력의 관리를 받으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촌락공동체를 형성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런데 89년 서울시가 난데없이 주민들이 살고 있던 땅을 용도 변경하고 주민들을 '불법 점유자'로 몰아 주민등록을 박탈하고 토지변상금을 물리기 시작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이들은 "주거지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면 가까운 학교에 아이들을 입학시킬 수 없고, 우편물을 제 때에 받지 못해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벌금을 물어야 하고, 수도와 전기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며 주민등록 즉각 등재를 촉구했다.

조철순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장은 "강남구 공무원들은 주민들을 마치 세살 먹은 아이 다루듯 막 대하고 무시한다"며 "너무도 분하고 억울해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으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위원장은 "강남구가 우리를 불법 점유자로 몰아 쫓아내려는 의도는 그 자리에 초호화 건물을 지어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한 것"이라며 "타워팰리스에 사는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주면서 가진 것 없는 빈민들한테는 고리의 변상금을 물리는 강남구는 부자들만을 위한 행정관청"이라고 비난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결의대회를 마친 뒤 강남구청 앞을 출발하여 청담동 네거리와 봉은사로를 돌아 강남구청에 이르는 2.8km를 행진하며 거리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강남구청으로 들어가려다 경찰이 제지하자 정리집회를 가진 뒤 해산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의 주민등록 등재 요구에 대해 개포4동사무소는 강남구의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강남구는 포이동 266번지에 대한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덕하 강남구 자치행정과장은 "우리는 법대로 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요구한다고 해서 우리 맘대로 주민등록을 등재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저 분들이 고생하는 것은 알지만 현 주민등록 관련 법으로는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포이동 주민들은 20여년 전에 강제이주를 당했다고 하지만 우리 입장은 다르다, 20여년 전 일어난 일을 알 수도 없고 주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관련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며 "현행 법(규)으로는 안되니 다른 구제방법을 찾아보라고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또 지난해 10월 행정자치부의 '빈곤층 주민등록 전입관련 지침'에 대해 "그 공문은 주민등록 말소자들에 대한 구제지침이지 포이동 266번지와 같은 체비지 주민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포이동 266번지의 기막힌 인생유전

▲ 1980년대 초 포이동 266번지의 모습
ⓒ포이동 266 사수대책위
1979년 7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시는 거리를 떠돌던 부랑아와 넝마주이, 구두닦이 등 도시빈민들을 한곳에 모아 이른바 자활근로대를 만들었다. 서울시는 자활근로대 1000여명을 환경 미화라는 이름으로 81년 3월 현 서초동 정보사 뒷산으로 강제 이주시켜 정착하게 했다.

이후 서울시는 공공 부지 재활용과 도시 재정비 정책에 따라 1981년 12월 이들을 다시 10개 지역으로 분산 이주시켰다. 이들 가운데 150여명은 서울시 체비지인 포이동 200-1번지 일대 3800여평의 하천 공유부지에 강제로 집단 수용됐다. 86년 아시안게임 이전까지 이들은 치안본부(현 경찰청)의 관리·감독 아래 군대식 내무생활을 하며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주민들은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도시 환경을 해치고 국제 망신을 시킨다는 이유로 거주지역 바깥으로 나오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24년이 지난 현재 주민 수는 104가구 400여명으로 늘어났다. 대부분 달개집에서 고물 수집 등으로 팍팍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1988년 12월 서울시가 이곳에 대한 구획정리를 확정하면서 기존의 200-1번지가 266번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주민등록이 주어지지 않았다. 실태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주민들은 주민등록 상으로 '유령주소'인 200-1번지에 17년째 살고 있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주민들은 각종 사회보장 혜택은커녕 서울시가 90년부터 해마다 물리고 있는 토지변상금으로 수천만원씩의 빚더미에 앉았다. 주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서울시민으로서 전출입 및 시민권이 보장되는 실제 거주지 주소인 266번지 주민등록 등재를 해달라는 것.

6.0 이상의 강진에도 견딘다는 한 채에 수십억씩 하는 펜트하우스 타워팰리스가 있는 곳. 우리나라 고급 외제차의 절반이 굴러다닌다는 최고의 부자동네 강남구. 그 속에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오늘도 고물더미를 뒤지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 사람들의 기막힌 인생유전이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