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처' 기소권 불인정에 안도하는 검찰

시민단체 "기소권 없으면 제 역할 기대할 수 없어"

등록 2004.06.30 16:21수정 2004.07.01 16:27
0
원고료로 응원
"중수부 수사 지탄받으면 내 목 먼저 치겠다."

지난달 14일 송광수 검찰총장이 법무부의 중수부 폐지 움직임에 대해 강력 성토하면서 토해낸 발언이다. 결국 송 총장은 중수부의 기소권을 사수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이하 고비처)는 '이빨 빠진' 볼품없는 기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고비처에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부정책이 선회하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고위 공직자 비리 척결과 부패 추방이 가능할지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가진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 산하에 설립을 추진중인 고비처에 검사의 기소독점주의를 인정,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고 불기소 처분시 재정신청권을 부여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또 협의회에서 고비처의 법적 지위는 노 대통령의 직속기구인 부방위 소속의 독립기구로 설치 운영하되 고비처의 수사 업무에 대해서는 일체의 간섭을 배제키로 했다. 아울러 부방위는 고비처의 일반사무를 지휘·감독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고비처 설치·운영계획안을 잠정 정리했다.

정부가 이같이 잠정 결론을 내린 데에는 검찰의 견제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고비처가 신설된다면 검찰과 고비처 사이에 누가 수사의 '우선권'을 갖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쉽게 말해 검찰의 역할을 고비처에게 뺏기냐 안뺏기냐다. 고비처가 생김으로써 검찰의 힘이었던 중수부나 특수부 기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한다. 이 우려가 '위기감'으로, 나아가 '두려움'으로 까지 나타났다. 검찰이 고비처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검찰내 의견 "고비처 설립 근본적으로 반대"

검찰 고위 간부의 말과 그동안 열린우리당과 부방위 당·정간에 고비처의 기소권 부여를 놓고 논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검찰의 고위간부 및 일선 검사들을 통해 흘러나온 검찰 내부의 의견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고비처가 검찰과 같은 일반적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된다면 검찰 수사권을 뺏기게 된다는 우려감이다. 만약 고비처가 독자적인 수사권 보장을 위해서 고비처 특별사법경찰관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받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명예를 중시하는 고위공직자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다.

②고비처가 설립되면 검찰과 '정보'와 '수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이때 검찰은 고비처에 정보의 우위권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있다. 나아가 정보가 앞서면 수사경쟁력도 앞서고 검찰기능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③고비처의 수사대상 중에는 3천여명의 검사와 1500여명의 판사 등 법조인이 포함된다. 검찰은 '조직 길들이기'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수사 영역을 빼앗긴다는 '위기감'을 넘어 검찰이 '두려움'까지 느끼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밖에도 한 일선 고위 검찰간부는 "송 총장은 남은 7개월여의 임기 중에 고비처가 생기는 것을 꺼릴 것"이라며 "남은 자신의 임기에 고비처가 만들어지면 소위 '치욕'의 경력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 검찰 수뇌부의 단순한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송광수 총장 "중수부 폐지 발언은 오해에 의한 해프닝 아니었다"

실제 송광수 검찰총장도 고비처 신설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중수부 수사 지탄받으면 내 목 먼저 치겠다."

지난달 14일 '대검 중수부 폐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송 총장의 도발적인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을 격노케했고, 16일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청-검 갈등을 임시로 봉합됐지만 불씨는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이후 25일 송 총장은 점심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 발언'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해에 의한 해프닝이라고 하면 안된다. 해프닝이나 오해라면 얼마나 좋겠나. 그 이후의 상황이나 앞으로의 상황을 예의 주시해봐라. 정치권에서도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었고) 논의하고 있으니 두고 봐라. (이후 강금실) 장관도 생각을 많이 하고 한 말이다."

이에 대해 정동민 대검 공보관은 "(송 총장이) 대검 간부 전임식장에서 한 말이 어떤 의도나 복선을 깔고 한 이야기가 아닌데, 이 발언을 놓고 식사 중에 '해프닝 아닌가'라고 질문을 받아 그렇게 답한 것 아닌가"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송 총장의 속내를 내비친 말로 받아들여진다.

관련
기사
- "중수부 수사 지탄받으면 내 목 먼저 치겠다"


"검찰은 고비처 설치로 자신들의 밥그릇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할 뿐"

검찰은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의 결정으로 다소 여유를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 내부의 의견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고비처에 기소권을 주고 검찰과의 상호 견제 및 균형을 통해 수사를 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라며 "고비처의 철저한 검찰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기소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고비처가 생겼다고 해서 검찰의 중수부나 특수부 부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데 반대를 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밥그릇'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할 뿐"이라며 "고위공직자들을 대상으로 검찰과 고비처가 함께 수사를 펼쳐 앞으로 우리 사회의 고위공직자들의 비리가 없어진다면 자연스럽게 고비처는 임무를 다하고 사라질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기소권 없는 고비처 결코 제 역할 기대할 수 없어"
[주장] 참여연대·민변, '고비처' 독립 설치 및 기소권 부여해야

참여연대(공동대표 박상증·이선종·최영도)는 30일 정부가 부방위 산하의 고비처에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방침을 정한 것에 대해 '고비처 설립의 취지와 의의가 사장돼 채 과연 고위공직자의 비리 척결과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실망감을 표현했다.

참여연대는 또 "정부가 제시한 공비처안은 '제도화된 사직동팀'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검찰 조직의 반발을 무마하는 선에서 적당하게 타협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과연 고위공직자 비리 척결과 부패 추방이 가능할 지 의심스럽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 참여연대는 "(기소권을 부여치 않은 것은) 어떻게든 검찰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여실하다"며 "고위공직자의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의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논의한 것이 고비처인데, 과연 독자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지 않고 어떻게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고비처에 기소권이 부여되지 않으면 검찰에 의한 통제와 간섭이 불가피해지고 종속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 고비처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뿐만 아니라 검찰로부터의 독립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변 "부방위 산하의 기소권 없는 고비처 설립 정부안 재고돼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이석태, 이하 민변)도 논평을 통해 고비처를 독립된 관청으로 설립하고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며 정부안은 마땅히 재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변은 "기소권을 갖지 않은 상태의 고비처는 제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고비처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하더라도 영장청구권과 수사종결권이 여전히 검찰에게 남아있어 수사의 점에서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또 민변은 "피의자의 구속이나 압수수색, 계좌추적 등과 관련된 영장의 청구여부는 수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만약 고비처의 영장신청을 검찰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수사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고 검찰이 고비처에서 사건을 송치 받아 다시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사결과가 왜곡될 여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5. 5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