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학원에 꼭 가지 않아도 된단다

학원을 고집하는 아이를 도서관에 보냈습니다

등록 2004.07.06 14:58수정 2004.07.06 16:1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모는 누구나 자라는 자식들을 보며 힘과 용기를 얻는다. 나의 큰아이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이고 작은아이는 초등 3년 딸이다. 큰아이는 작년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어린아이 같더니 이젠 자기 주장도 편다.


살기 힘들고, 세상이 모두 어려워 보여도 ‘자식들 보고 산다’는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도시에 산다고 하지만 IMF 이후 복잡한(?) 사정으로 거주지가 아닌 가게 건물 2층에 살게 되는 바람에 둘 다 학교까지는 약 3~4km가 되었다. 등하교시마다 아이를 태워 주지만 하교 시간에 가게일이 바빠 데려올 수 없을 땐 아이들에게 걸어 오라고 한다. 특히 요즘 같은 무더위에 아이들에게 걸어오라고 하는 날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하게 길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덮어 버린다.

a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 ⓒ 김만옥

공중전화로 학교가 파함을 알린 아이들이 각각 30여분 후 걸어 들어 오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보다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은 아스팔트 지열에 불끈 달아 올라 벌건 채 땀을 훔쳐내기 바쁘고 상의가 다 젖어 있다. 하지만 얼굴은 무언가 해낸 표정으로 냉수를 두어 잔 벌컥 들어 마시고 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두 달 전 큰아이는 저조한 성적이 나온 과목에 대하여 나에게서 책망을 듣게 되었는데 아이는 해결책으로 학원 수강을 원하였다.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들어 보니 반 아이들은 대부분 학원이나 과외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득, 공교육의 위기를 알리는 TV 프로그램 중 교사의 강의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과목 책을 펴고 공부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교사도 아이들이 듣는지 마는지 자신의 강의만 맥없이 하는 모습이었다. ‘학원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고민 끝에 애비로서 제안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학교 옆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찾아 자습을 2시간 정도씩 하라고 큰아이를 설득했다. ‘공부를 스스로 하면서 어느 순간 다가오는 공부 맛을 느껴라!’라는 내 주장을 반복하였다. 하지만 옆에서 듣던 아내는 나의 말에 동조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 놓았고 아이 역시 별 효과 없어 보이는 제안에 반론을 폈다. 그러나 결국 강압적인 나의 말에 따르기로 했는데 세 달 후에도 효과가 없으면 학원 등록을 한다는 조건이었다.

결국 아이는 낯설은 도서관에 등록을 하고 열람실에 앉아 두 시간 억지춘양 식으로 때우다 귀가한다. 얼굴을 보니 불만 투성이다. 아이의 바람을 무시한 아비의 마음도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참아 보기로 했다.


약 보름째 되던 날 아이에게 도서관 분위기를 물어 보았는데 답변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왔다. 넓은 열람실에 에어컨은 시원한데 몇 사람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는 사람들 중 어른 두세 분은 공부를 열심히 하며 학생은 서너명뿐인데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자기는 공부하면서 모르는 문제는 바로 풀어 알고 싶은데 그게 아쉽고 그러나 무슨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며 헤쳐 가는 모습이 느껴졌다. 아이에게는 자신이 최대한 여러 참고서를 보고 해결하여 보고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선생님과 급우의 도움을 받아 보라고 말했다.


방과 후 도서관 출입이 두 달이 되어 가는데 다행히 표정은 밝다. 지난 주엔 2~3일 방과 후 집에 곧장 오더니 밥을 챙겨 먹고 도서관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느즈막까지 해야 하니 배를 단단히 채우려 왔다고….

미련해 보이고 시대에 뒤져 보이는 아비의 강압에 순종하는 아들을 보며 과연 나의 방법이 옳은가 생각하여 본다. ‘아들아! 공부 좀 못하면 어떠냐 네 자신이 최선을 다하였다면 그것으로 아비는 너를 인정하마….’ 저녁에 돌아오면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부디 스스로 공부의 맛을 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