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은 우리 가슴에 난 구멍이다"

[둘째날] DMZ 남방한계선 돌파 반쪽이들, 체력한계선 넘다

등록 2004.07.29 18:08수정 2004.07.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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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Demilitarized Zone)에서 지난 27일부터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생태·역사 체험 캠프가 열리고 있다. 5박 6일 동안 DMZ를 횡단하는 이번 행사에서 참가 학생들은 중요지점은 도보로 나머지는 차량을 이용, 이동하면서 평화와 역사 그리고 생태의 현장을 경험한다. 이 행사는 피스DMZ(www.peacedmz.net), 고양파주환경운동연합, 평화네트워크, <오마이뉴스>가 공동 주최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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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쪽이들의 온전히 하나되는 연습


아이들은 커지고 있습니다 - 전재명(peacedmz.net 대표 반쪽이)

a 양구통일관 관장의 특강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반쪽이들

양구통일관 관장의 특강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반쪽이들 ⓒ PEACEDMZ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청소년 평화-생태-역사 체험캠프 진행팀입니다. <아!, 여기는 D.M.Z.> 둘째날의 현장보고를 기다리시는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께 '용감한 반쪽이'들의 두번째 날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한계상황, 그 불편의 바다를 건넌다는 게 아이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같이 느낀 2일차 하루였습니다. 두번째날, 반쪽이들은 땡볕이 내리쬐는 양구 펀치볼의 하늘로 난 길을 걷고 또 걸어 제4땅굴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출발 전, 반쪽이들은 정신을 다잡으며 "땅굴은 우리 가슴에 난 구멍이다. 너희들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 아픔을 느끼고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를 마음으로 기록해 두어라"고 주문했었습니다. 빙하지대의 구멍같은 땅굴 속으로 들어간 반쪽이들은 쪼그려 앉는 작은 궤도열차를 타고 지하 분단선의 끝을 보았습니다. 음습한 막장에 북녘의 사람들이 적어놓은 절규를 읽었습니다.

우리 군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설명하는 병사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아직도 대치적 용어였지만 그들이 선 자리를 좀더 이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반쪽이들에게 점심을 좀더 근접 지원하려는 진행팀의 생각이 과했는지 땅굴 앞에서 배식하려던 계획은 잠시 위기를 맞습니다.

분단선인 그곳은 퍼질러 앉아서 단체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나른한 공간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나 현장의 병사는 사정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지친 아이들에게 오이냉국을 곁들인 점심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사소한 듯하지만 분단선에서 이뤄진 군의 유연한 대민지원에 감사드리며 안보를 확대 재생산 않는 분위기를 반깁니다.

을지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반쪽이들에겐 말 그대로 고행이었습니다. 아스팔트의 지열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습니다. 지친 아이들의 입에서는 "이런 고생 처음이야"란 말이 쉬지 않고 튀어나왔습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얼마나 남았어요"라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초-중-고-대-일반인이 섞인 행군팀은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현지의 철책선 경비를 담당하는 민정경찰 덕에 냉수로 목을 축일 수도 있었습니다.


반쪽이들의 1049m의 고지점령은 이렇게 격전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팔짝 건너뛸 거리에 있는 북녘의 산하를 눈에 담아두었습니다. 천방지축일 것만 같았던 초등학생들도 눈을 반짝거리며 현장 안내원의 말을 따라 망원경으로 농사 짓는 북한 병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제 반쪽이들에게 북녘의 땅은 무지와 무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저녁, 양구학생야영장에 도착한 아이들은 각자가 기록한 2일차 'My DMZ Story'를 발표했습니다. 1일차보다 사뭇 진지해졌고 무엇보다 재미있어했습니다. 중1인 동하는 땅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도 얘기했습니다. 이어 DMZ 호랑이 전문가인 임순남 선생의 특강이 이어졌습니다. 임 선생은 반쪽이의 요청에 밤길을 내달아온 터였습니다. 어릴적 별밤 아래, 마당의 까칠한 멍석에 누워 할머니께 듣던 '호랭이 얘기'를 들었던 것처럼 반쪽이들은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특강 뒤 우리 호랑이 '고려범'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도 있었습니다.


오늘 3일차는 말 그대로 '지옥행군'입니다. 어제보다 곱절은 더 걸어야 합니다. 감기 걸린 아이도 있습니다. 양구 읍내 피씨방으로 내려오며 감기약을 사려고 했으나 그냥 두려고 합니다. 처음 제가 부모님들께 말씀드린 '야성을 기르는 계기'를 떠올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믿어주십시오. 지쳐 퍼지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올리는 순간 이른 아침을 먹은 아이들은 지옥행군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렇게 분단선에 선 아이들은 성장통을 딛고 커가고 있습니다.

"전쟁은 과연 기념할 만한 것인가?"- 박수빈

a 건봉사에서의 아침식사. 반쪽이들은 밥 한톨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동기만 충분하다면 이렇게 알아서 잘합니다.

건봉사에서의 아침식사. 반쪽이들은 밥 한톨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동기만 충분하다면 이렇게 알아서 잘합니다. ⓒ PEACEDMZ

드디어 행군 시작이다! 아침 5시 40분쯤 일어난 반쪽이들은 허겁지겁 세수를 하고 아침 6시쯤에 건봉사에서 아침을 먹었다. 반찬은 어제 저녁과 같았지만, 여전히 다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아침 7시 15분, 반쪽이들은 펀치볼, 양구군을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들 피곤했는지 버스 안은 곤히 자는 반쪽이들로 조용했다.

펀치볼 지역에서 반쪽이들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바로 양구 해안 통일관의 건물 중 하나인 전쟁기념관이었다. 전쟁의 참상에 대해 표현해 놓은 박물관이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관람을 하면 할수록 기분이 묘해졌다.

해안 통일관 건물 중에 북한관이라는 건물이 통일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제 불신과 갈등의 시대에서 평화와 대화의 시대로 변화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아마 명칭을 바꾼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도 평화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는 것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전쟁은 기념할 만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전쟁기념관을 나온 반쪽이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4땅굴을 관람하기 위해서 행군을 시작했다. 초록빛 풀들과 노란빛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주위 경관과는 다르게 반쪽이들은 길을 걸을 때 매우 조심해야만 했다.

전재명 대장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풀을 밟지 말라"고 강조했다. 정말 길로 닦아 놓은 지역이 아니면 어디든지 지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땅굴을 보기 위해서 걸어가는 동안 반쪽이들은 섬뜩한 표지판을 많이 보게 되었다. 군인 아저씨들이 검문을 쉽게 하기 위해서 써놓은 명령조의 표지판부터, 걸어가던 길 곳곳에 붙어 있던 역삼각형 안에 쓰여진 '지뢰'라는 글자, 또 '이 지역은 지뢰로 인하여 실제로 인명피해가 난 지역이니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쓰여진 것까지 가지가지 표지판들이 반쪽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땅굴을 보기 전에 안보교육관에서 영상을 통해 교육을 받았는데 땅굴을 가리켜 '지하의 도발'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정말로 우리는 반쪽이구나!하는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통일전망대에서 느꼈던 평화통일과 화합의 정신의 이면에 남북이 실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재인식을 해야만 했다는 게 너무 서글펐다. "어제만 해도 통일이 진짜 가까이 와 있는 거 같았는데"라고 말한 고2인 하윤이의 말이 왠지 가슴에 와 닿는다.

"이거 어디 쓸 데도 없을 거 같은데..."라고 어린 반쪽이가 이야기했다. 남과 북은 어린아이의 눈에 쓸모 없을 거 같은 일들을 50년 동안 계속 하면서 여태까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땅굴을 구경한 반쪽이들은 취사반이 준비해준 맛있는 점심을 배가 터질 만큼 든든히 먹고 나서 드디어 을지전망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전망대를 가기 위해 반쪽이들이 가야만 했던 그 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산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철조망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철조망 너머의 산들이 보였다. 겨우 저만큼 떨어져 있는 곳이 북한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싸해져 왔다. 마음대로 사진조차도 찍을 수 없는 곳, 단지 언젠가 그곳을 밟을 날을 기약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곳이 너무도 서글프게 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강행군, 등산을 시작하자!

전망대를 향한 길은 끝이 없었다. 햇살도 따갑고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몸이 지쳐갈 때 즈음 반쪽이 한 명이 죽어 있는 무당개구리를 발견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죽은 개구리들이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더운 날씨 때문에 말라 죽었거나, 운이 나쁘게 도로로 나와서 차에 깔려 죽었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박평수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왜 그렇게 도로에 개구리의 시체들이 많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 놓은 산 위의 길 때문이었다. 도로 위로 올라오게 된 개구리들이 아무리 높이 뛰어서 산으로 돌아가려 해도 산으로 나가는 턱이 너무 높아서 개구리들이 산으로 갈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그렇게 많은 개구리들이 깔려 죽었거나 산으로 나가지 못해서 말라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개구리들을 애도하면서 산을 오르다가보니 어느새 거의 다 온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 그곳은 겨우 중간지점 정도였다. 그곳에서 반쪽이들은 헌병(민정경찰) 아저씨에게서 철조망을 찍은 사진이 있다면 삭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순간 헌병아저씨들과 사진과는 인연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도 사진 때문에 헌병아저씨가 버스에 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통선을 통과할 때 찍은 사진 때문에 겁을 먹은 기억이 있는 반쪽이들은, 철조망을 찍지 못하는 현실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진기를 스스로 단속해야 했다. 그리고는 오랜 이야기 끝에 헌병아저씨 세 분의 안내를 받아 을지전망대까지 또 다시 걸어가게 되었다.

이 코너만 돌면 전망대겠지, 이 코너만, 이 코너만

분명히 붉은 벽돌의 저 건물이 내 눈앞에 보이건만 어찌하여 가도가도 가까워지지 않는 것인지 정말 마음이 상했다. 기분이 정말 바닥으로 돌진하려 할 때 즈음! 드디어 정말로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그냥 '산'이었다. 망원경을 통해서 북한군들이 밭을 갈고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글쎄, 그걸 본 사람은 없는 거 같았다. 게다가 썩 그 광경을 봐야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차라리 휴전선 철조망이 더 인상적이었다. 정말 내가 남한 최북단에 서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해주었다고나 할까. 그냥 육안으로도 보이는 저 너머 북한,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저 땅이 이토록 가까운데 이리도 멀 수밖에 없는 것일까.

머리가 멍할 정도로 힘든 행군이었다. 우리가 오른 산은 해발 1049m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약 14km를 걸었다. 산을 빙빙 둘러가면서. 다행이도 내려갈 때는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다들 피곤했는지, 맨 처음 양구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숙소는 양구 청소년 야영장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이곳에서 하루를 마감할 걸 생각하니 그나마 하루동안 슬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던 마음들이 다 풀리는 거 같았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우리나라 호랑이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에 우리의 백두산 호랑이는 시베리아의 호랑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비단 호랑이뿐만이 아니다. 분단 50년 동안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는데 모든 시간을 빼앗겨 중요한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분단 50년 동안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현실에 지나치게 안주하여 중요한 많은 것들을 잊어가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제는 다시 되찾고 다시 기억해내서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 화합의 시대가 열렸으면 한다.

2004년 7월 29일 새벽 1시 06분
알리미 박수빈(예문여고 2학년)


"뇌가 익었나?'- DMZ Story 두번째 날의 기록-

a 제4땅굴로 올라가는 중턱 풀숲에 있는 남방한계선 표지판. 이곳은 지뢰지대여서 특히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당부했습니다.

제4땅굴로 올라가는 중턱 풀숲에 있는 남방한계선 표지판. 이곳은 지뢰지대여서 특히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당부했습니다. ⓒ PEACEDMZ

오늘은 DMZ Story 두번째 날입니다. 어제까지가 통일 전망대에서 금강산 비로봉과 해금강을 보며 통일의 가까움을 볼 수 있었던 날이었던 데 반해 오늘은 제4 땅굴을 들어가보고 분단의 섬뜩함을 느낄 수 있어 아직도 통일로 향하는 길은 멀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다음은 양구청소년야영장의 강당에서 반쪽이들이 쓰고 발표한 작품들 중 일부입니다.

1조 류원하 : 오전 5시40분경 형들의 흔듦과 외침으로 인해 잠을 깼다. 나는 늦잠을 자는 편이라 일어나는 데 힘들었고 밥을 먹은 후까지 비몽사몽이었다. 버스를 타서 골아떨어진 후 도착지에 왔다. 잠을 깨고 대열을 맞춘 후 양구전쟁기념관을 갔다. 이 곳에서는 일어난 전쟁을 요약해 놓은 듯했으나 나는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 힘든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나는 제4 땅굴을 향해 갔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고 사진기까지 반납했다. 촬영을 못하니 정말 아쉬웠다.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곳을 가는데 뜨거운 햇볕과 급한 경사가 우리의 도보를 힘들게 하는 듯했다. 제4 땅굴 안에서는 밖과 달리 추웠다. 또한 전동차로 구경도 하고 물도 떠서 갔다. 다음, 맛있는 점심을 먹었는데 힘들게 걷고난 후의 밥이라 그런지 두 배로 맛있었다.

이곳에서부터 을지 전망대까지는 정말 충격이었다. 금방 갈 것 같은 거리처럼 보였는데 가다보면 길이 끝이 없었다. 정말이지 13km보다 두 배는 되는 거리인 듯했다. 하지만 전망대에 도착하니 해냈다는 만족감에 내가 자랑스럽고 기뻤다. 전망대에서 영상을 본 후 일정시간이 빡빡해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양구 해안 통일관을 들러 북한에 대해 보고 다시 버스를 탔다. 몇 시간이 지나고 양구청소년야영장에서 푹 쉬었다.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훨씬 힘들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훨씬 힘들지만 기죽지만 말고 힘을 내야겠다.

2조 이동수 : 오늘은 절에서 나와 양구통일박물관에 갔다. 솔직히 아침에 일어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겨우 일어났다. 양구 통일박물관에 가서 박물관장님께 설명을 들었다. 양구는 남과 북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라는데 지역 일대가 치열한 전투로 2m쯤 낮아졌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 있던 전쟁박물관에서는 우리가 당한 아픈 상처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병사, 기울어진 건물 등의 모형이 있었는데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우리는 제4 땅굴로 향했다. 처음엔 가뿐했던 발이 족쇄라도 채인 듯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팠다. 뇌가 익어버렸나?

그래도 노래도 하고 물도 마시며 가다보니 드디어 제4 땅굴에 도착했다. 먼저 전시관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땅굴 속으로 들어갔다. '땅굴은 총 4개가 있다고 하는데 이 땅굴 4개는 북한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오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진짜 올까봐 조금 무섭다. 땅굴 속은 10도여서 추웠다. 그 안엔 전동차가 있었는데 타보며 둘러보았다. 땅굴을 그렇게 보니 신기했다. 땅굴을 나왔더니 또 걸어야 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 거의 사선을 걸을 정도로 이를 악물고 갔다. 그렇게 가고가서 을지 전망대에 도착했다.

정말 북한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뛰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가로막힌 곳이었다. 결국 힘도 들고 해서 내려왔고 양구청소년야영장으로 왔다. 오늘은 힘이 너무 들었다 그만큼 내가 편하게 살았다는 거겠지. 그리고 통일이 정말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절실히 든 하루였다.

3조 양한별 : 오늘은 DMZ Story 두번째 날이다. 건봉사에서 오전 5시 40분쯤에 기상해서 밥을 먹고 씻고 갈 준비를 했다. 버스를 타고 2시간쯤 자면서 도착한 곳은 양구통일관. 양구통일관은 금년 6월 25일부터 북한관이라는 이름대신 통일관으로 바뀌었다. 통일관을 둘러보고 드디어 힘들고도 힘들게 걸어서 15km를 걸었다. 걸어서 1시간 반쯤. 그래서 도착한 게 제4 땅굴.

제4 땅굴은 넓이와 높이가 각각 1.7m다. 거기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되기 때문에 사진기를 압수당했다. 땅굴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이제 제4 땅굴을 빠져 나와 1.2km라는 을지 전망대를 가게 되었다.

정말 힘들다. 에휴. 물도 이제 거의 없고.그런데 1.2km라는 게 뭐야! 정말 끝이 안 보인다. 거의 4.5km 정도나 되는 것 같았다. 정말 힘들다. 그냥 쓰러져서 실려갈까 생각도 했었다. 다리가 잘려나갈 것만 같았다. 드디어 4시간? 그쯤 걸어서 을지 전망대에 도착했다.

4조 김민선 : 아침 건봉사에서 긴장했던 탓인지 아침 5시 30분쯤 핸드폰 알람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새벽같이 일어나 공양을 했다. 어제와 반찬은 같았지만 배고플 때 먹는 밥이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양구전쟁기념관으로 향했다. 침대차를 탄 듯 나는 물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정말 곤하게 잤다.

양구 전쟁기념관에 도착해서 을지 전망대에서 설명을 들었다. '펀치볼' 재미있는 별칭이었다. 양구전쟁기념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편지를 읽으며 눈물 바다를 만든 군인이었다. 조금만 무서워도, 혼자 떨어져 있어도 난 금방 울어버릴텐데. 군인은 외로이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 있으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또 부모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비록 석상이었지만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13km 도보의 첫걸음을 내디딘 곳은 양구전쟁기념관이었다. 출발 직전 을지 전망대 직원인 듯한 언니가 을지 전망대까지 걸어가면 하루종일이나 걸린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이 되었다. 13km라는 거리는 처음 걸어보는 거리라 많이 걱정됐다. 처음에는 걸을 만했다. 그러나 옷이 점점 땀으로 젖어갈 때쯤 헌병들이 눈에 보였다.

찌는 듯한 더위와 뜨거운 햇빛 때문에 졸아서 안보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제4 땅굴로 들어갔다. 땅굴은 어찌나 시원하던지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으나 탄성은 곧 '추워'라는 소리로 바뀌었다. 만화의 탄광 속의 부실한 기차 같은 전동차를 타고 총알구멍을 봤다. 어디선가 북한군이 땅굴을 파서 침략하고 있을 것 같아 좀 오싹했다.

암반수를 마시고 다시 따뜻한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정말 기다렸던 밥! 카레라이스가 정말 맛있었다. 행복한 식사시간이 끝나고 다시 괴로운 도보가 시작되었다. 잠깐씩 쉬어가면서 걸어나갔다. 차가웠던 물이 완전히 끓을 것만 같았다.

'망초'라는 일명 '계란후라이' 꽃을 아스팔트에 놓으면 익어버릴 것 같은 더위였다. 코너를 돌 때마다 계속 되는 길, 을지전망대가 보이리라는 희망은 500번은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을지 전망대에 도착하니 지쳐버렸다. 도착하니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거의 죽어서 영상 교육을 받았다.

버스에 타서 양구전쟁기념관에 도착했다. 지겹도록 봤던 북한 사람들이 입는 옷들과 6.25전쟁 이야기, 난 거의 죽어 있어서 사진도 못찍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양구청소년야영장에 도착하니 예쁜 집들이 보였다. 어색하게 샤워도 하고 밥을 먹었다. 군것질없이 고생하다 먹는 밥이라 너무 맛있다.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힘껏 박수를 칩니다, 들리시나요?
DMZ 스토리 참가 학생들에게 보내는 학부모들의 격려문

부모들과 친구들이 사이트를 통해 비무장지대로 보내온 격려문은 아직 반쪽이들에게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두타연 계곡 코스를 행군하다 지친 반쪽이들에게 프린트된 격려문을 꺼내들고 힘을 북돋울 생각입니다. 아래는 부모들의 격려문 내용이다.

현병순(양한별 어머니)

오늘 엄마는 하루종일 바빴단다. 그 걸음 뒤로 하고 집으로 들어와서는 한별이랑 다른 반쪽이 친구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궁금함에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켰지. 비록 사진은 없었지만 시시각각 올려진 알림글을 보았단다. 지치고 바쁜 와중에도 반쪽이들의 동향을 일일이 올려주시는 선생님들이 참 고맙구나.

어제는 박수빈 누나랑 다른 반쪽이들의 글들도 읽었지. 너무도 대견해서 보고 또 보고 그랬다. 오늘은 무지 덥고 지친 일정이었던 모양이지. 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거지 뭐. 이 엄청난 더위. '생태'의 소중함을 깨닫고 여기서 저기서 노력하고 있으니 시간은 걸리더라도 뒤틀리고 있는 상황을 되돌릴 수 있겠지. 길 위 개구리들의 떼죽음.

비록 보지는 못해도 느낄 수는 있구나. 주로 사람들로 인하여 지구상 생물들이 1년에 4만여종씩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 죄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암산 용늪이나 양구 펀치볼도 마음에 잘 담아뒀는지. 캠프 내내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생명들이 살아 뛰노는 곳이 얼마나 보배로운 것인지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땅굴은 너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엄마와 같은 어른 세대에게 땅굴은 '증오'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단다. 그 땅굴로 해서 머리에 뿔달린 북한군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올 것이란 상상을 어린 시절 오래도록 했었지. 그런 교육을 받았었고. 이제 더 이상 그런 두려움은 없지만. DMZ를 걷고 있을 우리 반쪽이들은 그 땅굴 앞에서 두려움과 미움 대신'분단의 아픔'과 '대결이 주는 두려움'을 새삼 느끼고 '평화'와 '통일'을 그리고 있었겠지.

광주에는 저녁 5시경에 약 40분 정도 엄청난 소나기가 내렸단다. 어찌나 매섭게 쏟아지던지 길에는 물이 흥건하고, 더위도 한 풀 꺾이는 듯 했단다. 지금은 다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말이야. 하지만 너희에 비하면 이 더위는 아무 것도 아니지. 내일도 열심히 걷자.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선생님께도, 조장 언니, 형들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안녕.

안현숙(류원하 어머니)

힘껏 박수를 칩니다. 들리시나요? 진행하시느라 애쓰는 선생님들, 이렇게 속속 소식까지 올려주시니 넘 고맙습니다. 하나하나 읽고, 보며 우리 친구들이 대견해서 함박함박 웃었습니다. 저도 같이 행군한 기분 들어 찬물 한 바가지 들이켰답니다. 오늘은 더욱 맛난 저녁밥 드시고 즐거운 마무리 하시고 푹 쉬세요.

아~~부럽당!!!

원하야. 멋있는 원하야. 착한 원하야. 사진 속에 언뜻언뜻 등장하는 네 모습 너무 멋있다. 사실 조금 힘들지? 그래도 잘 견디며 힘내자고 결심하고 있을 네 모습이 보이는 거 같어. 기억할지 모르지만, 너 어렸을적 댕겨온 곳도 꽤 있을 것인데. 그때는 그냥 놀러가는 줄 알고 따라나선 길이었지만. 이젠 너의 마음으로, 눈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됐구나.

무엇이 느껴졌니?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철조망이 답답했겠지. 열받았지? 통일은 왜 안되고 이 모양인지. 마음 아프기도 했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엄마도 미안하게 생각해. 앞으론 함께 잘해보자.

원하야, 말로 표현하지 못할 느낌이 많을 거야. 잘 설명해 주시며 도와주시는 선생님들, 또 친구들과 원하의 방식대로 느낀 거, 궁금한 거, 열받는 거, 너의 생각 있는 그대로 묻고 얘기하며 결론도 내보고. 차근차근 나름껏 풀어보고 정리하길 바랄게. 알아서 잘 하고 있더라고! 알았어. 걱정은 붙들어 매놓을게.^^

원하야. 부디 몸 건강, 마음 건강하길, 마구 응원한다네.

박승흡(박동하 아버지)

동하야, 갑작스런 아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돌아가신 친할아버지를 너는 보지 못했지만, 그분은 고향인 평안도를 너무도 그리워하셨지. 분단 2세대인 아빠와 큰 아빠들 모두는 이런 할아버지의 가슴 아픔을 느끼면서 커왔단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생긴 너와의 적지 않은 갈등과 다툼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 행진이 끝나면 더 넓어진 마음과 따스하게 주위를 배려하는 멋진 동하가 우뚝 서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함께 하는 모든 분들에게 격려와 지원의 박수를 크게 크게 보내드립니다. 힘내라! 힘!

재경,재윤이에게

재경, 재윤아 오늘 하루 날씨가 더워 많이 힘들었겠다. 호수공원에서 너희 형제가 떠나는 차량을 보면서 이제는 다 컸나보다 하는 대견함에 엄마 맘이 뿌듯하기도 하면서 재경이 팔다친 것 때문에 조금은 걱정이 되었단다. 재윤이는 아직 어린 막내 5학년인데 정해진 일정이 너무 힘들지는 않을까 또 걱정이란다.

엄마 맘이 너무 나약한 것일까? 그래도 너희 형제사진을 보니 잘 지내고 있구나 싶기도 하고 갑자기 보고 싶어지기고 하고. 아직 엄마, 아빠도 가보지 못한 우리의 땅 DMZ에 우리 두 아들이 갈 수 있다는 게 참으로 가슴벅차기도 하고 철조망으로 나뉘어 고통받고 있는 우리 땅의 현실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올까 궁금하기도 하단다.

사실 너희들이 떠나는 것을 보면서 엄마도 함께 가고 싶었단다. 언젠가 평화롭게 소풍가듯이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싶다. 그땐 우리 너희 형제가 엄마, 아빠에게 이번 캠프에서 보고 배운 것, 느낀 것에 대해서 설명도 해주고 이야기도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아빠도 너희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있단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DMZ story에 들어와서 너희 이야기를 읽고 또 읽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재경이는 팔 다친 거 치료 잘 하고, 그리고 두 녀석들 형제애도 단단하게 두터워지길 바란다. 밥 잘 먹고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 그리고 함께 떠나신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 전합니다. 늦은 밤 피곤할텐데도 밤잠을 못자면서 pc방을 찾아 글을 올려주시고 뭐라 감사인사를 전해야할지...

미래세대, 통일 세대를 열어갈 우리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채험이며 기억에 영원히 간직될 캠프가 되리라 확신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병곤 (이진우 아버지)

벌써 네가 떠난 지 이틀이 흘렀구나. 일정을 보니 오늘은 많이 걷는 날이던데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었으면 좋겠구나. 사람이 걷는 걸음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그처럼 단순한 일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본다. 나도 책에서 읽은 것인데, 왼발이 오른발에게 물러서고, 오른발이 왼발에게서 물러서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 서로에게 물러서고 양보하는데도 네 몸은 앞으로 전진하는 것 아니겠니?

아빠의 경험으로 보건대 몸이 고단하면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더라. 이번 민통선 기행에서 네 몸에 대한 생각,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체험에 대한 생각, 너와 내가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걸으면서 깊이 사려해 보길 바란다.

아빠가 세심하게 돌보아주지 못하지만 늘 바쁜 일 가운데서도 진우에 대한 사랑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검게 그을린 얼굴로 일요일에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랄게. 함께 참여하는 형들, 동생들과 어울려 깊은 정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내일 다시 편지 띄우마. 힘을 내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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