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진정 2만건 돌파]통계로 본 우리 시대의 인권

인권 피해는 '일상적 현실'

등록 2004.07.30 10:21수정 2004.07.3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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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권위 전화 상담실

인권위 전화 상담실 ⓒ 국가인권위

2001년 11월 26일.

이 날은 국가인권위원회 직제령, 법, 시행령 등 새로 탄생할 조직의 권한과 규모, 업무 범위를 둘러싼 관련 부처와의 갈등으로 사무처를 구성하지도 못한 채 국가인권위원회법의 법정 시행일에 맞추어 진정 접수를 시작한 날이다.

당시 임시로 설치한 진정접수처에는 새벽 6시부터 진정인들이 몰려들었으며 오전 9시에 문을 열자 접수처는 몰려온 진정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를 두고 혹자는 그동안 쌓여 있던 사건이 밀려드는 ‘일시적 현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2년 반이 지난 지금,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일상적 현실’이 되었다. 2004년 5월 28일 국가인권위에는 1만 번째 진정이 접수되었다. 5월 말 현재 진정 건수가 1만247건, 상담건수는 1만672건, 민원회신 처리 등 안내는 2만4450건에 이르면서 국가인권위의 총 민원이 4만5369건에 달했다.

국가인권위 발족 초기에 밀려들었던 상담·진정 등은 2002년 6월까지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이는 관련 부처의 협의지연 및 갈등으로 인해 국가인권위의 사무처가 4월에야 구성되고 직원 채용이 지연되면서 접수된 진정사건의 처리도 함께 늦어진 데 그 원인이 있다.

게다가 6월에는 월드컵까지 겹쳐 상담과 진정 등은 계속 감소했다. 그러나 2002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국가인권위의 활동이 정상화되고 누적되어 있던 진정사건들이 처리되어가자 접수되는 민원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에는 2002년에 비해 진정 36.7%, 상담 83.4%, 안내가 36.8% 증가하면서 국가인권위 발족 직후의 수준에 육박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사건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총 진정건수 1만247건 중 인권침해 사건이 8439건으로 82.4%, 차별행위 사건이 698건으로 6.8%, 기타가 1110건으로 10.8%를 차지하여 차별 관련 사건보다 인권침해 사건이 다수를 차지했다.


인권침해 사건은 국가인권위법 제30조 제1항에 의해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또는 구금·보호시설의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헌법 제10조 내지 제22조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받은 것으로, 주로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여기에 속한다.

인권침해 사건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억압적인 정치 상황과 오랜 관료주의에 의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 취약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 기관별로 살펴보면 교도소 등 구금시설을 상대로 한 것이 42.1%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이 경찰(21.4%), 검찰(6.3%), 기타 국가기관(21.1%)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구금시설 수용자의 진정은 외부진료 및 기타 진료권 제한 등 의료문제와 관련한 진정이 구금시설 진정 총 3557건 중 21.3%를 차지하였으며 부당징벌 및 조사수용에 대한 진정이 14.5%, 화장실 및 거실 등 수용환경 문제에 관한 진정이 12.7%, 교도관 혹은 수용자간 폭행·가혹행위가 9.4%를 차지하였다.

반면 차별행위 사건의 경우 2002년에 4.9%에서 2003년에는 9.4%로 증가하였으며, 2004년 현재 6.8%를 차지하고 있다. 차별행위 사건은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 20.8%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 장애(11.0%), 성별(8.2%), 나이(7.6%)에 의한 차별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차별의 경우 초기에는 주로 장애, 출신국가,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사건이 주를 이루었으나, 비정규직 문제, 노조원·비노조원 간의 차별적 처우 등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사건이 20.8%로 급증하고 있으며, 성별에 의한 차별도 초기에는 5.1% 정도에 머물렀으나 현재에는 8.2%에 이르고 있다.

나이에 의한 차별도 2001년에는 2.9%에 머물렀으나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여 현재 7.6%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주로 채용 및 퇴직과 관련한 연령제한 및 고령차별 등의 문제다.

기타 사건의 경우는 사인간 침해 혹은 재산권 문제 등 대부분 국가인권위의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사건이거나 동일한 사건을 반복하여 진정한 경우 등이다.

a 재중동포들의 집단진정 모습

재중동포들의 집단진정 모습 ⓒ 국가인권위

‘면전진정’은 활동의 자유가 제한된 시설 수용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규정한 획기적인 제도다. 이에 따라 수용자들이 진정을 원할 경우 국가인권위 직원들이 직접 시설을 방문하여 상담 및 진정접수를 받고 있다.

면전진정 신청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신청건수가 월평균 218건이며, 2004년 3월과 5월은 신청건수가 월 300건을 넘었다. 폭주하는 면전진정 신청에 응하기 위해 국가인권위 전 직원이 순환제로 접수 업무를 하고 있으나 인원 부족 등의 한계로 인해 200여 건 이상이 미처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인권위의 면전진정 제도가 갖는 의미는 인권침해나 차별을 당한 시설 수용자가 시설의 비개방성(혹은 폐쇄성)으로 인해 권리구제 기회를 차단당하지 않도록 국가인권위 직원과 직접 만나 상담하고 진정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장치다.

진정사건으로 접수되지 않고 상담종결된 사건은 모두 8428건이다(2002년 1월 이후를 대상으로 하되, 면전진정의 상담종결은 제외함). 진정을 접수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거나,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거나, 진정 여부를 신중히 고려하기 위한 사전 문의를 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인권침해와 관련된 사건이 3405건으로 40.4%, 차별행위가 731건으로 8.7%, 기타 4292건으로 50.9%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인권침해 상담사례를 살펴보면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을 상대로 한 것이 가장 많으며 그 다음이 지방자치단체 등 국가기관, 구금·보호시설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진정사건에서 구금시설 수용자들의 진정이 많았던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다. 구금시설 수용자들은 전화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므로 주로 우편으로 진정을 하거나 면전진정을 통해 상담과 진정을 하기 때문이다.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에 대한 상담은 편파, 불공정 수사, 폭행·가혹행위, 과도한 신체검사 등 인격권 침해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 등 기타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는 위법·부당한 처분, 욕설·폭언 등 인격권 침해와 관련한 사례가 많았다.

또 구금·보호시설의 경우 의료조치 미흡, 폭행·가혹행위에 대한 상담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신보건시설, 장애인 시설 등 다수인 보호시설의 경우는 강제수용에 대한 상담이 가장 많았다. 군사기관의 경우는 의문사 등 생명권 침해, 폭행·가혹행위가 다수를 차지했다.

차별행위와 관련한 상담의 경우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문제제기 등 국가인권위법이 정한 18가지 사유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사회적 신분, 장애, 나이에 의한 차별이 그 다음을 차지하였다.

피진정인에 해당되는 기관별로 보면 국가기관이 51.4%, 법인·단체·사인이 38.9%, 교육기관이 9.7%를 차지하였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 상담사례의 경우 진정사건과 마찬가지로 노조원 혹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처우 및 채용시 과거 비정규직 경력 불인정 등과 관련한 것이 많았다.

기타 상담은 형사 절차나 다른 권리구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인간 인권침해, 재산권 문제 혹은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정보나 상담을 원하는 경우 등 이었다.

국가인권위를 찾아 상담을 하는 사람 중에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경험하고 이에 대한 합법적인 구제와 회복을 위해 해당 국가기관에 호소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행정 및 사법 절차 과정의 불공정한 처분으로 인해 분노와 상실감을 안고 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인권상담은 상처 받은 이들의 주장과 하소연을 성의 있게 듣고, 법적·제도적 해결을 위한 절차와 정보를 제공하며,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는 설득을 통한 이해를 끌어내어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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