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지금 아바타 속의 내가 보이니?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분투기(18)

등록 2004.08.10 07:07수정 2004.08.10 13:3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민망한 속옷차림의 아바타


a 한 포털 사이트의 아바타몰,  내 아바타 옆의 새로운 옷과 액세서리들이 구입해달라는 표정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 포털 사이트의 아바타몰, 내 아바타 옆의 새로운 옷과 액세서리들이 구입해달라는 표정으로 자리잡고 있다. ⓒ 김정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내 분신이라는 아바타가 항상 하얀색 속옷차림으로 나타나 메일을 보내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아바타란 단어에 호기심이 가서 클릭한 게 문제였다. 그 후부터 별 생각없이 무심코 메일을 보낼 때면 그 예의 속옷 입은 내 아바타가 찰거머리처럼 메일에 첨부되어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메일의 종류가 사적인 내용이 아닌 업무와 관련된 메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메일을 보낼 때면 나름대로는 아바타를 제거하여 보내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 뒤에 보내곤 하지만 어쩌다가 깜빡 잊어버리면 그 민망스러운 속옷차림의 내 분신은 낄 때 안낄 때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도대체 별 쓸모없이 자리만 자리잡고 있어서 성가시기만 한데다가 매우 소비지향적이기까지 한 이 디지털 콘텐츠는 왜 만들었을까?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상만 해도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넘쳐나는데 사이버 세계에서까지 이럴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마냥 투덜거려봤지만 더 이상 흰색 속옷차림의 민망한 아바타를 그냥 두기 뭣해 할 수없이 간단한 옷 몇 가지를 구해서 민망함만 면케 만들어놓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고, 속옷형태의 민망했던 예전 내 아바타와 약간의 배경과 새로운 옷으로 바꾼 최근의 내 아바타는 우선 시각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새로 꾸민 내 아바타를 접한 상대방이 새로 꾸민 아바타처럼 내 모습이 아름다우리라고는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 꾸민 아바타의 모습보다는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의 이미지에 보다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아바타라. 원래 인도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 '아바따라(avataara)'에서 따왔다는 생소한 이 단어는 지상에 강림한 신의 화신을 뜻한다. 지금이야 각종 블로그와 미니홈페이지에 기상 천외한 아바타와 스킨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무턱대고 생긴 이 영문 모를 아이콘이 이상할 밖에.


예전의 그림인형놀이와 아바타

그 뿐인가? 거의 속옷차림의 아바타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옷과 액세서리를 사이버머니로 구입하기를 은근히 강요하는 이 맹랑한 아이콘을 보며 마치 어렸을 적 나를 포함한 어린 여자친구들이 재미있게 놀았던 그림인형 옷 입히기 놀이가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옛날 어린 여자아이가 현실에서 입을 수 없었던 예쁜 옷들을 그림인형에게 입힘으로서 대리만족을 주던 예전 그림인형과 지금의 아바타는 그 옷이나 장신구들을 돈으로 사거나 교환하거나 선물 받는다는 면에서 얼핏 그림인형놀이의 디지털화로 보일 만큼 비슷하다.


그러나 이 둘 중 그림인형은 그냥 내 소유물 중의 하나인 인형일 뿐이지만 아바타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에서 유일하게 남에게 보여지는 또다른 나라는 사실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인형과는 달리 아바타에는 무의식적으로 나의 감정과 사고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디지털이라는 코드는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상공간에서의 나를, 현실의 내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나로 만들 수 있게 되지만 그렇다 해도 본인의 진실이 투영되지 않고 100% 허구로 만들어진 아바타의 수명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바타 또한 가상공간에 있는 또 하나의 나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아바타 꾸미기 열풍을 보면 사이버상의 나의 분신이라는 본래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영악한 상업성에 휘둘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몰개성의 화려한 겉치레 꾸미기에 치우쳐 있는 듯하다.

화려함은 더더욱 화려한 것을 찾기 마련이고 사이버상에서 매시간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아바타를 위한 보다 화려한 옷과 소품, 배경 등은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해 이와 관련한 옷과 소품 구입은 늘어나는 반면 부족한 사이버머니의 충전을 위해 쌓이는 건 나날이 늘어나는 카드요금과 휴대폰요금 명세표 뿐이다, 오죽하면 얼마전 뉴스시간에 사이버머니 충전을 위해 학교 친구들을 협박해서 강탈하는 사례가 발생하기까지 했을까?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된다. 사이버상에서 나만의 아바타로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나를 가꾸려는 욕구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아름다움이라는게 콘텐츠 제공업체에서 일괄적으로 만들어내는 몇백원짜리 기성복이나 액세서리 만으로 결코 채워지는 성질의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나만의 개성이 넘치는 아바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화려한 기성 콘텐츠들을 얼마나 잘 조합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아바타를 이용하여 나만의 매력과 개성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나타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의 분신인 아바타, 아니 나는 아바타를 통해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넌 지금 아바타 속 내가 보이니? 보인다면 겉모습보다 그 속에 담긴 나의 본모습을 봐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