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62

악인은 지옥으로 (10)

등록 2004.08.16 11:34수정 2004.08.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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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공자, 뭘로 올립깝쇼?”
“으음! 전에 마셔보니 천지차가 괜찮더군. 그걸로 주시게.”

“예! 알겠습니다. 헌데 여긴 선불제라는 것은 아시죠?”
“물론이네. 자, 이 정도면 되겠는가? 흐음! 남는 게 있다면 그건 자네의 수고빌세.”


“헉! 이렇게나 많이…? 아이고, 고맙습니다요. 공자께선 분명 천복을 누리실 겁니다요.”
“하하! 고맙네. 자네의 말대로 천복을 누림세.”

이회옥과 점소이의 대화는 지극히 평범하였다. 그렇기에 주변의 그 어느 누구도 이들의 행동에서 관심 갖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상대가 말을 할 때 입술이 슬쩍 슬쩍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무림의 고수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전음밀입(傳音密入) 수법이 시전된 것이다. 이들의 전음은 이러했다.

“단주, 총단에서 알려오길 왜문 문주 고이주 및 일부 수뇌를 제외한 전원을 처결했다고 합니다.”
“오오! 그렇소? 반가운 소식이오. 수고했다 전해주시오.”


“존명!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흠! 이 밀지는 군사에게 전하시오.”
“존명!”

이회옥은 품에서 꺼낸 작은 은덩이와 밀지를 함께 건넸다. 이것을 확인한 점소이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굽신거렸다.


“헤헤! 이제 잠시만 기다리시면 천하 일품인 천지차를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요. 헤헤! 그럼 소인은 이만…”

돌아서는 점소이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 짓고 있었다. 백악루의 점소이가 이처럼 굽신거리는 경우는 님으로부터 적지 않은 수고비를 받았을 때뿐이다.

점소이의 이런 행동에 사람들은 궁금하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수고비를 주면 그 사람은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손님들은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점소이들이 더 불친절해지기 때문이다.

백악루는 유명한 곳이기에 워낙 찾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점소이의 숫자를 늘려 이에 대응해야 하나 루주는 은자를 버는 재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덕분에 점소이들만 죽어났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날라다 주는 틈틈이 설거지를 해야할 뿐만 아니라, 닦아도 닦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탁자 청소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분명 짜증스러운 일이다. 하여 점점 더 불친절해졌다.

그렇기에 수고비를 주는 손님들의 수요는 줄고, 이는 빈곤의 악순환처럼 점점 더 점소이들을 불친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결국 약속이라도 한 듯 백악루에서는 수고비를 주지 않는 것이 관례가 되어버렸다.

이런 관례를 깨고 누군가가 수고비를, 그것도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많이 주었다면 분명 지탄의 대상이 된다. 하여 시끄럽게 떠들던 주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회옥에게 쏠렸다.

마주치기만 하면 한 마디 쏘아붙이려는 마음이 담긴 시선이었다. 그러나 무엇에 놀란 듯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점소이에게 은자를 주어 마음 불편하게 만들었던 건방진 놈의 좌측 가슴에 자색 구름을 뚫고 금빛 검이 치솟는 문양이 선명하게 수놓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하제일문파인 무림천자성의 당주급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지엄한 존재를 째려봤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얼른 고개를 돌린 것이다.

무림천자성에는 정확히 여덟 명의 당주가 존재한다. 이들 가운데 약관을 갓 넘긴 나이에 당주가 되어 이미 전 무림의 신화가 된 사내는 철마당주 이회옥뿐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성주의 여식인 형당주 빙화 구연혜가 연모해마지 않는 단 하나의 사내이며, 그녀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콧방귀 한 번 뀌지 않는 강심장이라 하였다.

게다가 정의수호대원들 조차 감당해낼 수 없는 신기에 가까운 무예의 달인이라 소문나 있었다. 그런 그를 째려봤으니, "어마 뜨거워라" 하며 얼른 시선을 돌린 것이다.

무림천자성에는 불경죄(不敬罪)를 저지르면 엄히 다스린다. 이는 향주급 이상 고위직 인사에게 불경을 저질렀을 때 처하는 벌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꽤씸죄가 있다.

당주급 이상만이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누구든 눈 밖에 나면 다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형벌이다. 둘 다 권위를 세우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거의 행사되지 않는 것이지만 지목되면 즉각 형당으로 끌려가 작살이 난다.

오늘 이회옥에게 잘못 보이면 괘씸죄로 다스려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형당 당주가 빙화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인에게 불경을 저지른 자에게 관대할 여인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따라서 오늘 잘못 걸리면 최하가 중상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얼른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입마저 다물었다. 숨소리라도 들려 시선이라도 마주치면 큰일날까 싶었던 것이다.

시끌벅적하던 주청이 일순간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정도로 조용해지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던 이회옥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여 가볍게 포권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하! 소생 때문인 모양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깬 것은 아닌가 싶어 미안하군요. 여기 천지차가 맛이 좋다 하여 잠시 들른 것이외다. 차만 마시면 갈 것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조금 전처럼 일행과 담소를 나누십시오.”
“……!”

주청에 있던 사람들은 이회옥과 시선이 마주치면 얼른 고개 숙여 절을 하였다. 불경죄나 괘씸죄 때문이 아니었다.

지극히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아랫사람들에게 항상 예절바른 행동을 하기에 모든 이들로부터 추앙을 받는다는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침묵을 깬 것은 눈치 없는 점소이였다.

“어엇! 손님, 소인이 차를 늦게 가져와 일어서 계신 겁니까? 헤헤! 여기 대령했으니 이제 앉으셔도 됩니다요. 헤헤!”
“하하! 고맙소이다. 잘 마시겠소.”

찻잔이 내려지고 향긋한 다향을 음미하는 이회옥을 본 사람들은 다시 대화를 시작하였다. 물론 칭찬일색이었다. 다시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이회옥은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이곳이 희망의 땅인 줄 알고 오는 부나비들이 너무 많군.’

손님들 대부분은 무림천자성 구경을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뜨인 인물이 있었다. 우람한 체격을 한 장한이었다. 보아하니 제법 힘 깨나 쓰게 생겼는데 아무리 보아도 유람 나온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일행과 술을 마시면서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수상해 보였다.

‘흐음! 누구지? 누굴까? 그나저나 오늘 어머니를 뵈러가야겠다. 아, 참! 그걸 깜박했구나.’

차 맛을 음미하던 이회옥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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