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시장... 기자들은 지금 입 다물고 있다

[기자협회 40주년 특보] 우리 회사를 살찌워 한푼 더 받자?

등록 2004.08.18 12:15수정 2004.08.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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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사회가 다시 태어날 것인가. 한국 기자사회를 대표하는 '기자협회'의 최근 자기성찰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기자협회가 16일 발행한 창립 40주년 기념 특보에 기자로서 삶을 냉철하게 돌아본 중견기자 3인의 글이 실렸다. <오마이뉴스>는 현직 기자들의 솔직한 고민을 전하기 위해 세 편의 글 전문을 싣는다....편집자 주

기자협회 40주년 특보.
기자협회 40주년 특보.기자협회특보
적어도 기자라면 그들이 소속된 언론사와 언론계가 잘못된 길을 갈때 침묵하면 아니된다. 현재 한국 언론시장과 언론계는 오히려 이런 교과서같은 명제가 매우 절실할 만큼, 이 땅의 기자들이 매일 부르짖어도 모자랄만큼 이끼가 켜켜이 끼어있다. 아니 맑은 계곡물의 흐름이 방해받고 차단될 만큼 각종 쓰레기로 널부러져 있다.

그런데도 그 많은 이 땅의 기자들은 대부분 숨을 죽이고 있다. 경륜을 자랑하는 선배그룹부터 후배그룹까지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그간 언론개혁을 외치는 일부 중소언론사 기자들의 목소리는 의미는 있었지만 다른 한쪽의 외면으로 미명에 그쳤다. 이처럼 힘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은 데는 언론사별로 상충되는 상업적 이해관계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건전한 언론문화 육성을 위한 자구노력은 없고 `우리 회사를 살찌워 한푼 더받자'는 천박한 논리에 몰입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주체제 언론사의 기자들은 한국언론의 산적한 문제에 대해 애써 눈을 감았고 당연한 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언론개혁에 대해서조차 방어적 물타기를 위해 그 반대 논리 개발에만 앞장섰다. 기자사회는 없고 회사원들의 집합체만 존재하고 있는 딱한 한국 언론계의 현실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어언 40년을 맞이했다. 한국기자협회는 단도직입적으로 한국의 기자들에게 묻는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신문시장의 독과점 구조와 만연한 불공정 행위, 일제시대에 머물러 있는 신문유통구조, 그리고 도가 지나친 방송의 상업주의와 방만한 경영 등 산적한 언론계의 문제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인가.

그리고 죽는 날까지 자사이기주의에 매몰돼 헤어나지 못할 것인가. 이렇게 날을 세워 묻는 이유는 이 땅의 기자들이 방송이건 신문이건 선배그룹이건 후배그룹이건, 각기 자사의 임원이나 간부로, 전략가나 행동가로 막중한 권한을 갖고 엄연히 활동 중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는 강자일수록 사회적 책무에 민감하지만 우리나라 언론계는 강자일수록 외려 사익만 지키려는 움직임이 더 강하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나에게만은 예외인 공허한 메아리인 것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언론사들이 과연 먼저 나서서 시장질서를 건전하게 바꾸는 작업을 선도한 적이 있는가.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양보와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인 적이 있는가. 의견과 이해가 대립할 때마다 `이에는 이, 공격에는 더 치명적인 보복'으로 대응했을 뿐이다.


언론개혁국민행동 주최로 지난 6월 16일 열린 신문시장 정상화 및 언론개혁 쟁취대회.
언론개혁국민행동 주최로 지난 6월 16일 열린 신문시장 정상화 및 언론개혁 쟁취대회.오마이뉴스 김태형
글쓰는 회사원으로 전락

1980년대 초반까지 8면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신문들은 각종 특혜를 받아 성장하면서 사세를 과시하듯 경쟁적으로 20년만에 6~8배 이상 지면수를 늘렸다. 취재인력이 똑같은 비율로 늘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그것이 이른바 `증면 경쟁'이고 `독자확대 전쟁'이며 그것은 결국 `신문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투는 오직 `승리'가 목적이었기때문에 신문값의 수백배에 이르는 경품이 폭탄으로 대량 투하돼 구독시장 석권의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 신문전쟁기에 언론인들이 살인적인 노동을 애써 눈감고 치열한 전투를 치른 배경이 더욱 기가 막히다. 승전의 전리품으로 쏟아지는 상대적으로 넉넉한 보수를 통해 승리와 독식의 쾌감을 맛보기위한 것이었다니. `우리만 잘되면 그만이다'는 자사이기주의. 그것이 오늘날 한국 언론시장을 병들게 한 주요 요인이었다.

과연 그 결과가 기자의 자존심을 내던지고 순응하는 훈련된 `회사원'으로 충실했던 것만큼 보람이 있었는가. 단연컨데 누구도 긍정할 언론인이 없을 것이다. 그 시절의 피와 땀이 훌륭한 신문, 존경을 받는 방송, 후세가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매체를 육성하기 위한 전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지금 우리 언론계가 그런 취급을 당했을까.

그 모든 전투의 중심에 기자들이 있었다는데 핵심이 있다. 오늘날 한국 언론시장의 굴절된 모습은 다름아닌 오늘날 우리 기자사회의 자화상과 다름없다. 우리의 거울이다. 고집이 남달라서 아니라고 부인할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그것은 자기 맹신일 뿐이다. 부끄럽다. 이제 인정해야 한다. 기자, 대단히 중요하고 신성한 직업일진데 어찌하여 이렇게 자본과 사주의 머슴이 되었는가 하는 개탄의 목소리에 이제는 주목할 때이다.

언론인들은 이제 한국 언론계와 언론시장을 냉철하게 돌아 보라. 언론사의 소속을 버리고 이해관계를 떠나라. 기득권을 내던져라. 기자의 양심으로만 가슴에 손을 얹혀 생각해보라. 후세들에게 과연 당대의 자랑스러운 언론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다른 업계의 불공정 거래행위는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정작 신문의 무분별한 경품과 무가지를 없애자고 하니 여기엔 눈을 감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의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한다. 마치 정부가 끼기만 하면 언론의 자유가 금방이라도 훼손되는 것처럼 현혹한다.

일제 이후 한번도 개선되지 않은 전근대적인 신문 유통구조. 그래서 공동배달제도 시도해보고 유통비용도 줄여서 신문사의 경영 몸집을 가볍게 하고 현대화된 사업구조를 만들자고 하니, 언론탄압 논리가 숨어 있어 안된단다. 소유주의 지분을 제한하자고 하니 자본주의에 반하는 논리라며 워싱턴 타임즈, 뉴욕타임즈 사례를 들먹인다. 주식시장 상장을 통해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는 그런 신문들의 사주와 한국언론사 사주들의 언론관 수준이 어디 똑같은가.

자사 이기주의에 매몰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의 요체인 여론이 다양하게 존재해 균형있는 사회가 되도록 하기위해 신문사 점유율 상한선을 법으로 정한다고 하니 당장 손해보는 쪽은 `사회주의 발상'이라고 몰아부친다. 우리나라는 이미 사회주의의 많은 요소를 받아들인 `한국식 시장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그 전제 조건도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과 충분한 기회보장이란 사실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냉전의 아픔을 겪은 보수 중장년층의 뇌리를 자극해 `색깔론'으로 방패를 삼겠다는 심산이다.

이제 한국언론이 앞서 제기한 수많은 문제점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다시 살아나려면 언론인들이 먼저 솔직해져야 한다. 그 자세로 서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기자들이 자사이기주의를 버리고 양심의 둥지를 되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것 밖에 정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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