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 40주년 특보.기자협회특보
얼마전 주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언론홍보대학원의 강의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언론 매체의 변천사를 강의하던 교수가 갑자기 수강생중 현직 신문 기자만을 불러 세웠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정신들 차리십시오. 이제 신문은 완전히 사양길에 접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신문 기자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까. 더 늦기 전에 하루 빨리 다른 살 길 찾으십시오"
신문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 들었다는 건 당사자인 신문 기자들도 진즉부터 체감하고 있던 터.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인 언론학 교수로부터 공개적으로 '시대의 지진아'로 지목을 받고 보니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는 것이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
굳이 이 교수의 지적을 들 필요도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자들, 특히 신문 기자들은 일종의 아노미 상태로 빠져 들고 있다. 당장은 살기가 힘들다. 오랫동안 '동업자'였던 방송과 신문, 신문과 신문의 대립 양상에다 갈수록 심해지는 ‘지면의 상업성화’와도 싸워야 하다보니 정체성도 헷갈린다.
그렇다고 뾰죽한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와 미래, 육체와 정신적인 혼란을 나타내는 이 세 가지 문제-근무조건 악화, 정체성 혼란, 비전 부재-로 인해 신문기자들은 존재의 위기까지 느끼고 있다.
매체의 상업주의 악화일로
그렇다고 방송기자및 인터넷 매체의 기자들은 예외라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메이저 신문사’의 기자들이 이런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요즘처럼 기자들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적도 드물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방송보다는 신문, 신문사중에서도 중소형 신문사의 밥을 먹고 있는 기자들이 더욱 그렇다. 근로 조건이 나아진 건 없다. 오히려 악화일로다. 시도 때도 없이 일해야 한다. 툭하면 불려 나가고 휴일 반납과 야근을 밥먹듯 해야 한다. '3D업종'이 된 지도,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지’도 이미 오래다.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정작 자신들은 '주5일 근무제'가 어떤 것인지 체감하지도 못하면서도 주5일 근무제의 장단점을 그럴듯하게 써대는 것이 바로 기자들이다. 웰빙(well-being)이 뭔지도 모르면서 웰빙을 시대의 화두로 만든 것도 다름아닌 기자들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느다. 최근엔 생계의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경기 침체로 신문업계가 어려워지면서 상여금은 물론 본봉마저 깎는 신문사도 나타나고 있다. 지면 축소와 함께 인원을 정리하려는 신문사도 생긴다. 알량한 생활터전에서마저 쫓겨나야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날들이다.
다음은 정체성의 혼란.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지는 문제다. 기자들이 극도의 정신적 혼란을 겪는 요인이기도 하다. 필자의 최근 경험 한 토막. 얼마전 20여년전에 같은 대학을 다녔던 현직 기자 20여명이 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다. 구성은 다양했다. 메이저신문 기자도, 이른바 독립언론 기자도 참석했다. 방송 기자도 있었고, 이른바 친정부 매체와 비판언론의 기자도, 경제지나 스포츠지 등 전문지 기자도 있었다.
4시간여를 만나는 동안 우리는 2시간을 공감하는데, 2시간을 논쟁하는데 허비했다. 공감대는 쉬웠다. 언론과 권력, 언론과 언론이 대립각을 세우면서 언론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데 우선 공감했다. 이런 흐름과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언론의 상업성에 맞서 기자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데도 쉽게 뜻을 같이 했다.
그러나 화제가 정치 사회 경제 문제로 옮겨지면서 공감은 논쟁으로 변했다. 표현은 달랐지만 골자는 최근 시중의 논쟁과 비슷했다. 요약하자면 ‘보수와 진보’,‘성장과 분배’ 이런 류였다. 한참 논쟁속으로 빠져 들었던 우리는 깜짝 놀랐다.
바로 얼마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언론사의 논조를 비판하던 기자들조차 논쟁이 심화되면서 소속 회사의 논리를 그대로 읊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방송과 신문 기자가 언쟁하고, 메이저 신문과 마이너신문 기자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체성의 혼란은 다름 아닌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처음에 맘 먹었던 기자로서의 포부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몸담고 있는 회사의 논리에 억지로 꿰맞춰져서 또 다른 부속품으로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기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의 문제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답은 ‘아니다’로 나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비전의 부재. 올들어 언론계를 떠나는 기자가 유난히 많다. 다른 언론사로 전직하는-예컨대 신문사에서 방송사로 옮기는 기자는 그래도 괜찮다. 잘 나가는 기자중 천직인양 여겼던 기자직을 벗어던지고 다른 업종을 찾아가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표표히 떠나는 기자들
이들이 내뱉는 전직의 변은 ‘비전이 없다’다. 사실 기자가 되고자 했던 것은 직업의 자유로움도 있었지만,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어두운 부분들, 소외된 사람들,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감시자의 역할을 하고픈 마음일 절실했다. 이 포부가 어쩌면 지금까지 기자직을 유지하게 만든 동력이었다면 동력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과연 우리가 처음 품었던 뜻과 의지가 펼쳐지게끔 언론 환경이 조성돼 있는가. 불행히도 아니다. 지면은 ‘주의주장’과 ‘상업성’으로 넘쳐 난다. 팩트는 별로 없다. 맘에 쏙 드는 팩트 하나만 있으면 이것만 갖고도 한 면을 거뜬히 꾸리는 게 현실이다.
상업성은 또 어떤가. 경영을 위해서라는 명분아래 얼마나 많은 기사들이 휴지통에 쳐박히고, 왜곡되고 있는가. 이런 현실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저항할 수 있는가. 사양산업에 몸담고 있다는 원죄만을 탓하면서, 그저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는 월급쟁이로 만족하고 있는게 아닌가.
문제는 앞으로다. 통신 기술의 발달은 기자를 단순한 콘텐츠 공급업자쯤으로 만들고 있다.‘올드 미디어’인 신문은 그렇다고 치자. 잘 나간다는 방송은 과연 천년만년 지금의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을까. 인터넷에다 케이블, 위성방송으로도 모자라 위성 DMB까지 나올 예정이다. 이런 식이라면 방송사가 통신업자에게 종속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기자’는 없고 ‘콘텐츠 생산업자’만 존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그러니 비전이 없을 수 밖에.
우리는 기자가 지금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믿는다. 사회가 복잡다기해질수록 어쩌면 기자들의 존재 가치는 더욱 더 필요해질 것으로 본다. 그런 만큼이나 우리는 기자답게 일하기를 원한다. 권력과 사주(社主)와 광고주의 필요에 의해 편가르기와 침소봉대와 폄하왜곡하는 선봉대가 아닌, ‘진정한 선수’로 남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동안의 안이함, 나태함, 편향성, 이기주의와 의타심 등을 진심으로 반성한다. 그런 만큼이나 우리의 ‘쟁이 기질’을 방해하는 모든 외부 주체들도 기자를 기자답게 놓아 주기를 희망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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