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52일... 지율 스님이 동생에게 남긴 당부

"내가 죽으면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고 네가 꼭 가족장으로..."

등록 2004.08.20 15:51수정 2004.08.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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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
지율 스님김태형
궂은비가 갠 맑은 하늘에 제법 신선한 바람이 부는 20일(금) 청와대 앞. 단식 52일째를 맞은 지율 스님에는 검버섯 같은 까만 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스님은 떠나고 계십니다."

천성산 대책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 제목이다. 19일 지율스님을 찾은 여동생은 "언니는 '내가 죽으면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고 네가 꼭 가족장으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여동생은 "바짝바짝 말라가는 언니를 보면 애가 타지만 겉으로는 웃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언니가 얼마나 천성산을 사랑하는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피나게 노력하며 싸웠는지 잘 알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율 스님이 동생에게 한 당부

이날 오전 11시 지율스님과 함께 천성산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도롱뇽 친구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위해 최소한 6개월만이라도 공사를 중단해달라"고 청와대에 또다시 호소했다.

이들은 현재 부산고법에서 진행중인 '도롱뇽 소송'에 힘을 싣기 위해 벌이고 있는 100만인 소송인단 모집 활동도 보다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병상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는 "천성산이 살고 지율이 살기 위해서는 생명의 소중함을 함께 하는 이들의 간절한 뜻이 들불처럼 일어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며 절박한 심경을 피력했다.


모두 49개 단체가 '도롱뇽소송 시민행동'에 동참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명단을 들여다보면 어찌된 일인지 불교환경연대, 청년환경센터, 참여불교재가연대,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등 헌신적인 활동을 보여왔던 몇몇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생소한 이름들이다.

내로라 하는 환경단체들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고, 스님의 단식이 시작된지 50일이 넘었건만 논평 하나 내놓지 않고 침묵하는 단체도 있다. 그나마 녹색연합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천성산 문제에 나서고 있는 정도다.


20일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발표한 조계종 총무원은 "정부당국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뼈저린 반성을 촉구"하긴 했지만 "지율스님 역시 '극단적인 방법을 지양하라'는 종단 제방의 염려에 귀를 기울이라"며 단식 중단을 촉구했다.

"더이상 메이저 단체들을 믿지 않는다"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천성산 대책위 관계자들은 이른바 '영향력 있는' 단체의 지원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지 여부를 놓고 난상토론에 들어갔다. 그늘 밑에 앚아 지친 몸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율 스님은 "그들의 침묵에 면죄부를 주지 않겠다"며 "더이상 메이저 단체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을 살리는 것은 나 지율이 아니다"며 "천성산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절규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이 지금 비구니 한명의 목숨을 놓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며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율 소식이 아니라 생명과 아이들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지율 스님이 건낸 동영상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죄도 없이 저항도 없이 죽어가야 할 그 꽃들 풀들 다시 만나면 이 부끄런 얼굴 쳐들고 뭐라 할 건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단식농성 52일째인 지율스님이 청와대 분수대 앞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단식농성 52일째인 지율스님이 청와대 분수대 앞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도롱뇽 친구들

"저는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전문] 지율스님 여동생의 호소

▲ 지난 16일 청와대 앞 단식 현장의 지율 스님.
ⓒ권우성
다음은 지율 스님 여동생이 19일 천성산 대책위 홈페이지에 올린 호소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저에게는 언니가 둘이 있습니다. 사실 말이 언니지, 나이 차이가 많은 언니들은 저에게는 엄마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한 언니는 저를 먹이고 입혀서 키웠고, 다른 한 언니는 제게 산과 강으로 여행을 시켜주며 자연을 보여주고, 어린나이에 이해하기 힘든 문학과 음악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 엄마 같은 언니가 지금 50일이 넘는 단식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언니가 얼마나 천성산을 사랑하는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피나게 노력하며 싸웠는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바짝바짝 말라가는 언니를 보면 애가 타지만 겉으로는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속상해하면 저를 집으로 보내려고 할 것이란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설마 죽게까지야 놔두겠냐고 생각하면서 버티기를 50여일, 속살에는 여름장마에 습기가 차 생긴 피부병과 영양부족으로 검버섯 같은 까만 점들이 수없이 박혀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걷고 말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사람은 뒤에서 뭘 먹고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30일 정도만 단식을 하고 바로 다른 음식을 삼켜보라고. 아마 죽지 않으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3번의 단식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단식을 하는 것보다 단식이 끝난 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식이 끝나도 바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여러 잡곡을 푹 끓여서 꼭 짜내고 국물만 먹었습니다. 제철에 나는 채소와 다시마 끓인 국물 정도로 일주일정도는 속을 다스려야 죽이라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긴 단식 중에는 물 종류 이외에는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단식을 해본 분이라면 잘 알 것입니다.

언니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억지로 등을 떠밀어 집에 오기는 했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속상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맡겨놓은 아이들을 데려올 생각도 않고 펑펑 울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울만큼 울면 속이 시원해지는데, 왜 울면 울수록 답답해지는 것일까요? 누구를 원망할까요? 단식을 하는 언니를 원망할까요, 아니면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는 청와대를 원망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하늘을 원망할까요?

제게 언니는 내가 죽으면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고 니가 꼭 가족장으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저는 알았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기가 막혀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이없는 환경영향평가로 산과 계곡을 마구잡이로 훼손시키는 사람은 죄가 없고,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은 죽음 앞에 서야하는 게 우리의 자연보호 현실이었습니다. 지키는 것 역시도 우리의 몫입니다. 모든 분들이 공이 적고 많음을 따지지 말고 한마음으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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