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경중 떠나 수해민 지원대책 세워야

노인들만 사는 화순군 동면 신운마을, 복구지원 제외돼 발 '동동'

등록 2004.08.23 16:28수정 2004.08.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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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태풍 '메기'는 화순군 도곡면의 파프리카시설 하우스 등을 비롯해 화순군 곳곳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수해 피해현장에는 피해 복구를 위해 하루 1000여명 씩 인원이 지원 되는 등 각계에서 지원의 손길이 답지하고 있다.


그러나 화순군내 한 편에선 피해를 입고도 지원의 손길도 받지 못한 채 힘겹게 복구를 위해 애쓰고 있는 주민들이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a 물이 들어와 바닥까지 내려앉은 최형채씨 집

물이 들어와 바닥까지 내려앉은 최형채씨 집 ⓒ 박미경

화순군 동면 신운리에 살고있는 최형채(66)씨는 지난 18일 저녁을 생각하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회상한다. 저녁 무렵 갑자기 들이닥친 물이 순식간에 집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고 부인과 함께 다급하게 집 밖으로 대피했다.

"물이 마당으로 들이닥치기에 설마 했는데 자꾸 불어나더라니까.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는 데 물이 허리까지 차고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가 둥둥 떠 다니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니까."

다음날 아침 돌아온 집은 온통 쑥대밭이었다. 집안까지 들이닥친 물로 가재도구며 가전 제품이 모두 젖었고 창고에 쌓아둔 쌀 3가마와 아직 방아를 찧지 않은 벼 4가마가 고스란히 물에 떠내려 갔다. 창고에 쌓아둔 연탄 3000여 장도 물에 젖어 쓸 수 없게 돼 전부 버려야 했다.

a "내가 저 벽에 매달려서 살았다니까요."

"내가 저 벽에 매달려서 살았다니까요." ⓒ 박미경

옆집에 사는 최영숙씨(74)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갑자기 닥친 물에 놀라 지대가 높은 가게집 옥상으로 피했다.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길 건너 식당으로 가려는 걸 가게주인이 큰일 난다며 말려 함께 대피한 것.

"너무 놀라서 얼른 나갔지. 어찌나 놀랐는지…. 백구도 놔두고 혼자 나갔는데 나중에 아들이 집에 와 보니까 이 녀석이 벽에 다리를 올려놓고 지도 살겠다고 얼굴만 내밀고 있다고 하더라니까. 저 녀석도 그때 놀랐는지 내가 대문밖만 나서도 못나가게 짖고 난리여."


a 적십자에서 지원받은 구호물품

적십자에서 지원받은 구호물품 ⓒ 박미경

동면 신운리에서 주택이 침수된 곳은 모두 16가구. 그러나 군에서 직원 2명이 나와 피해조사를 한 것외에 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다. 적십자에서 나눠준 한 사람 몫의 담요와 치약, 칫솔, 속옷이 들어있는 상자 하나가 지원 받은 물품의 전부다.

엉망이 된 집을 치우는데 일손이 없어 일당을 주고 사람을 쓰고, 물이 들어간 가전제품과 보일러 등은 급한 대로 말리고 있지만 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미 상당수 주민들은 사용을 포기하고 컴퓨터며 전기밥솥, 냉장고 등을 밖으로 내다 놓았다. 수리를 해야하지만 집안을 치우기 바빠 수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나이든 노인들만 사는 농촌이라 달리 지원된 인력이 없다보니 타 지역에 사는 자식들이 내려와 복구를 돕고 있다.

a 유일용(65)씨네 창고에도 젖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유일용(65)씨네 창고에도 젖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 박미경

비가 많이 내리자 어머니가 걱정돼 벌교에서 급히 달려온 아들의 도움으로 대피했다는 김의순 할머니의 눈물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집안에 가득 찬 물 때문에 냉장고며 세탁기 등 가전제품도 수리기사를 불러 고치고 보일러도 쓸 수 없게 돼 새로 놓아야 했다.

"우리 아들이 일하다 말고 와서 엄니, 집이야 어떻게 되든 괞찮으니까 사람이 먼저 살아야 된다고 얼른 피하자고 해서 피했는데 자식들한테 미안해서 어쪄."

다른 곳에 비하면 이 정도는 괜찮다며 취재를 사양하는 아들 옆에서 이런 일로 자식들에게 부담을 줘서 미안해 어쩌냐며 언뜻 스치는 김할머니의 눈물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더 많은 물적 인적 피해를 입은 곳도 있지만 피해가 적다고 수해로 인한 고통이 없고,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원에서 제외된 채 복구를 위해 애쓰는 지역 주민들을 한번쯤 돌아보는 배려가 아쉽다.

a 무너지기 직전인 최영숙씨네 창고. 안에 있던 것들은 다 떠내려가고 없다.

무너지기 직전인 최영숙씨네 창고. 안에 있던 것들은 다 떠내려가고 없다. ⓒ 박미경

피해의 경중을 떠나 수해를 당한 아픔은 함께 나눠야할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수해를 입었지만 복구지원에서 소외된 채 마음 아파하는 우리의 이웃들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는 관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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